꿈을 키우고 도전에 나서야할 제주의 청년들이 취업이라는 문턱에서 힘을 잃고 있다. 중학교부터 제주시 평준화지역 고교를 목표로 성적과의 전쟁을 펼친다. 대학에서는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와 수업을 병행한다. 졸업이 앞둔 이들에게 취업은 벽이다. 취업 선택의 폭이 좁은 청년들이 선택한 길은 공무원. 뚜렷한 목표를 잃은 공무원 시험에 빠진 제주청년들. 그럼에도 꿈을 꾸며 달려나가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88만원세대와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88만원 세대의 모습을 4차례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신년특집Ⅲ-88만원 세대] ①허무하기만 한 10년간의 경쟁

올해로 26세인 이모씨는 07학번이다. 군대도 다녀왔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열심히 생활했으나 졸업을 1년 앞두고 뭔지 모를 불안감이 따라다닌다.

중학교때부터 일명 연합고사로 불리는 고입선발 시험을 뚫고 대학까지 진학했으나 취업의 문은 좁기만 하다. 이른바 제주지역 88만원 세대의 현실이다.

88만원 세대는 고용불안으로 고민하는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비정규직 평균 급여 120여만원에 20대 평균급여 75%를 적용하면서 88세대의 단어가 등장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씨는 2007년 자신의 책에서 20대 중 상위 5% 정도만 단단한 직업을 갖고 나머지는 평균 임금의 88%만 받는 비정규직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80년대 학번인 386세대를 넘어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한 88만원 세대는 이씨처럼 취업의 문턱에서 고민하고 좌절하며 20대의 끝자락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중학교에서 상위성적을 거두며 2004년 인문계로 불리는 제주시 평준화지역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주도내 상위 40%의 학생만이 진학할 수 있는 연합고사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 제주지역 학생들은 중학교부터 연합고사의 경쟁을 치른다. 상위 40%만이 제주시 평준화 일반계 고교에 진학할 수 있으며 매해 170여명 내외의 학생들이 탈락을 맛본다.
연합고사에서 탈락한 학생은 연간 170여명 수준. 이씨의 친구는 연합고사에서 탈락하자 서울로 전출 신고를 한 뒤 다시 제주로 돌아오는 방법으로 제주시내 명문고(?)로 다시 진학했다.

오현고와 제주일고 등 평준화고교를 졸업해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생각에 치어, 어린 나이에 위장전입까지 감행해야 하는 세대가 바로 지금의 88만원 세대다.

이씨는 고입경쟁에 지친 친구들이 더 큰 꿈을 품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입수능에서 고득점을 얻지 못했다며 굳이 수도권 대학을 생각치도 않았다. 등록금 부담이 첫째 이유다.

제주도내 대학에 진학한 이씨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친구들과 마주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학점까지 까먹는 동기들도 눈에 들어왔다.

이씨는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장학금을 떠올렸다"며 "차라리 공부에 집중해 장학금을 받는 것이 최고의 아르바이트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08학번인 유모씨(24.여)는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방학이 되면 대형마트와 액세서리점, 영화관, 커피숍 등으로 뛰어 다니며 돈을 모았다.

3학년이 되자 아르바이트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취업이 현실로 다가와서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취업 선택의 폭이 좁다보니 공부의 방향을 잡는데 애를 먹는 동기들이 많았다.

▲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곧바로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다. 고학년 될수록 취업이라는 벽에 막혀 갈팡질팡하는 것이 현실이다. 취업의 범위와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이 88만원 세대의 생각이다.
일부 학생들은 도서관을 오가며 이른바 스펙 쌓기에 열을 올렸다. '차라리 4년제가 아닌 2년제 대학을 나와 취업하는 것이 낫겠다'는 푸념 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유씨는 아르바이트 기간 경험한 항공관련 업무를 내세워 국내 유명항공사를 직장 목표로 정했다. 지금도 모 항공사에서 제주공항 지상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졸업을 1년 앞두고 휴학을 결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졸업 후 취업의 꿈을 이루지 못하자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친구들보다 낫다는 생각도 해봤다.

유씨는 "저학년에는 등록금과 생활비가 걱정이지만 고학년이 될 수록 취업이 현실로 다가온다"며 "막상 꿈을 펼치고 싶어도 제주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넓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치열하게 경쟁하는 육지부 대학생과 비교해 도내 학생들은 제한적 경쟁에 머물고 있다"며 "대학이 취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을 포함해 10년간 경쟁이란 현실에 속에서 제주도내 청년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취업을 위한 경쟁의 기회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청년들이 되묻는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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