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I-강정]⑥ 해군기지로 공동체 깨진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
"오손도손 마을평화도 못지켜주면서 무슨 안보고 국책사업입니까"

▲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이 모친과 부인 등 가족 얘기에 울컥했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이 "큰 아들놈 장가보내야 할텐데, 여자가 어성(없어서) 걱정이우다"라며 크게 웃는다. 모처럼 보는 그의 파안대소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시뻘겋다 부쳐서 새하얘진 눈물을 하염없이 토해내기를 무려 5년. 이젠 그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여전히 머리와 입으로는 화해와 상생, 그리고 평화를 부르짖지만 사실 가슴 저 깊숙이는 아직도 분노와 억울함이 켜켜이 쌓여 있다.

지난 5년 세월…. 엄동설한 몸뚱이 베어갈 칼바람 같은 그 모진 시간을 견뎌온 것은, 그래도 아직 쓰러질 수 없었던 것은, 내 새끼가 살아갈 강정 땅이고, 내 조상이 묻힌 강정 땅이기 때문이란다. 무엇보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단다.

강동균(55) 제주 강정마을 회장을 지난달 31일 강정마을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450년 역사의 평화로운 마을공동체가 두 동강 나버린 제주 강정마을에서 벌써 두 번이나 주민대표로 유임됐다.

▲ 강정마을에서 올려다 보이는 한라산 백록담의 설경이 아름답다. 누가 이 풍광만 보고 이 작은 마을에 이토록 커다란 고통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랴.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강 회장님, 마을회장에 또 유임됐다면서요? 독재 아닌가...

임진년 1월1일 강정마을 해돋이 축제 준비로 한창 정신없던 강 회장은 기자와 만나 몇 마디 말문을 열다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해군기지 예산삭감을 요구하며 국회를 방문하고 내려온 직후라 성과도 있었지만 앞으로 전개될 마을의 불확실한 미래가 그를 짓누르는 모습이다. 이내 “그릅써. 밖에 강 담배나 하나 피우게 마씨”(가시죠. 밖에 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죠)라며 마을회관 밖으로 이끌었다.

회관 입구 1층 계단에서 강 회장과 마주 섰다. 잠깐 사이에 그의 오른 손 검지와 중지 에서 담배 두 개비가 금세 꽁초로 타들어갔다. 하루에도 몇 십번씩, 지난 5년을 헤아려 수만 번씩 시커멓게 타들어갔을 그의 가슴도 저랬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밀려왔다.

순간, 하노라고 했지만 그동안 강정주민들의 눈과 입 역할을 충분히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자도 가슴이 저며 왔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그에게 ‘마을회장에 유임됐다면서요?. 독재 아닌가. 하하’라고 화제를 바꿨다.

그러자 강 회장이 다시 회관 사무실 안으로 걸음을 옳기며 “경 됐수다. 누군가는 해사될 일이곡, 내가 시작해시난 제가 끝을 봐얍주. 근데 독재라고? 허허”(그렇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고, 내가 시작한 것이니 제가 끝을 봐야죠. 허허)라며 헛헛한 웃음소리를 냈다. 웃지만 웃는게 아니다.

▲ 강정마을에 시집와서 11년째 마을회 일을 맡고 있는 현영희 사무장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교도소, 거기 우리 같은 사람 갈데 아닙디다"

강 회장은 지난해 8월24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발해 건설사업 현장에서 집회를 여는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징역형을 구형받아 구속됐다가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아 풀려나기까지 약 3개월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난생 처음 교도소 생활을 경험했다.

“푹 쉬당 나왔수다(푹 쉬다가 나왔습니다). 여름 내내 해군기지 공사 막느라고 구럼비 바당(바다)에서 새카맣게 탄 거 싹 벗겨ㅤㄷㅝㅇ(벗겨두고) 나왔수다. 삼시세끼 밥 잘 먹여주고 몸은 더 좋아졌수다. 하하하” 모처럼 그의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실은 거기(교도소) 우리 같은 사람들 갈 데 아닙디다(갈 곳 아니더군요). 그래서 아들 두 놈(31살, 27살)도 절대 면회 오지 못하게 했수다. 집사람만 면회 왔지, 어머님도 오시지 못하게 했수다”라며 “저 때문에 모두들 고생입니다. 특히 집사람이…”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강 회장에겐 부인 정순선 (56)씨와 모친 고병현(79) 씨가 가장 든든한 ‘빽’이다. 부인은 지난 5년 동안 강 회장을 대신해 ‘먹고 사는’ 문제를 포함해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왔고, 모친 고병현씨는  팔순 바라보는 연세에도 마을집회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다.

강 회장은 “우리 집사람은 5년 동안 단 한마디 불평 없이 생계를 책임져 왔수다. 넉넉한 살림도 아니고, 지난 5년 동안 여자 힘으로 가정을 꾸려가기가 힘든 노릇인데도 잘 버텨줬고 마씨. 어머니도 연세가 높으신 데도 ‘아들이 고생허는디 나가 무사 안 나와(아들이 고생하는데 내가 왜 안 나와?)’라며 집회 때마다 꼬박꼬박 자리를 지켜 주십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동안 제일 가슴 아픈 일이 뭔지. 강 회장은 어머니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동네서 어머니하고 친자매처럼 살아오신 친구 분이 계시우다. 근데 그 아들이 해군기지 찬성 측에서 활동하면서 어머니도 그 친구분과 말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누구든 자식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제사 끝나면 아무리 밤이 늦었어도 새벽 1시거나 2시거나 제사밥하고 떡을 나누던 사이인데, 더불어 살던 이웃들이 이젠 마을에서 찬반으로 갈려 아는 체도 안하고…. 형제간, 친척 간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허우다”

▲ 강정마을에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된다는 강우일 주교(천주교제주교구장)의 강론 구절이 마을 네거리에 걸려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해군과 제주도정이 첫 단추 잘못 채워…아직도 길은 있다

속이 다시 답답해진 모양이다. 마을회관 사무실 벽면에 써 붙여진 ‘금연’ 표지를 가리키며 강 회장이 마을회 현영희 사무장에게 “저거 오늘 하루 떼민 안되카 마씨?”라고 칼칼하게 묻는다.

강 회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 사무장이 배시시 웃는 얼굴로 “에이구, 경헙써게(아이고, 그러시죠)”라며 금연 표지를 떼어 버린다. 마을회, 그리고 마을회관 운영 살림을 도맡은 현 사무장은 원래 제주시가 고향이지만 강정으로 시집 온 살림꾼이다.

강 회장은 “현 사무장은 11년째 마을회 일을 맡고 있다. 이젠 마을엔 없어선 안 될 생명평화 강정마을회의 일꾼 중 일꾼”이란다.

강 회장은 정부를 향해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했다. 제주해군기지사업이 국책사업이면 국책사업 다워야 할 것이라고. 국가안보가 중요한 만큼, 국민의 안녕과 해당 지역주민의 행복도 중요하다고 했다. 국책사업이란 미명하에 주민들을 억압과 갈등 속으로 몰아넣고, 마을공동체를 파괴한다면 그것이 무슨 진정한 국책사업이란 말인가. 정부와 해군을 향한 그의 질타가 끝없이 이어졌다. 

“우린 처음부터 해군기지 반대한 게 아니우다. 절차를 지켜달라고 했던 것이지…. 2007년 4월 26일 열린 마을임시총회를 통해 주민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서 유치했다고 하는데, 그거야 말로 새빨간 거짓말이우다. 해군과 김태환 도정이 전 마을회장과 어촌계를 꾀어서 향약에도 위배된 총회를 열고 1200명 주민 유권자 중 단 87명만이 날치기로 비민주적으로 해군기지 유치결정을 한겁니다. 그것이 잘못 꿰어진 첫 단춥니다. 강정은 그때부터 멈춰버려십주”

우근민 제주도정을 향한 쓴 소리도 남겼다. “진정한 도백이라면 안되는 걸 가지고 주민들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것을 알고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도민이 뽑은 민선도지사인 만큼 정부와 해군을 향해 당당히 도민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직도 길은 있다”고.

강정을 빠져 나오면서 오망조망 정겹게 쌓아 올린 마을 안 어느 과수원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흑룡만리로 쌓아 올린 제주 돌담은 성글지만, 태풍에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쌓아 올린 돌과 돌 사이의 숨구멍이 비결이다. 어떤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정사람들을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시리고 세찬 바람이 또 불어오겠지만 저 돌담도, 강정사람들도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더 단단해졌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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