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와 이형상은 제주의 오름을 설명하면서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한 방선문계곡이다. 방선문계곡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바닥이 말라버리는 건천이다. 제주도의 하천 대부분이 건천인 것은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다공질 현무암이 빗물을 쉽게 지하로 침투시키기 때문이다.

 ② 제주섬 탄생, 설화와 과학이 답하다

▲ 병와 이형상은 제주의 오름을 설명하면서 "산봉오리는 뾰족한 것이 없고 꼭대기는 고인 물이 많으니 평지가 솟아올라 산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제주도는 도처에 오름이 널려있는데, 이는 제주섬이 형성되는 전 과정에서 수백 차례의 화산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해안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는데, 이들 섬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대부분 조선전기 이후의 일이다. 당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피해 달아난 사람들은 대부분 관리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섬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면 관리들은 도망자들을 찾아 섬으로 들어오고, 그러면 주민들은 다시 관리들을 피해 또 다른 섬을 찾아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악순환 속에서 왕조가 ‘원악지’로 방치했던 수많은 섬들은 백성들이 모여 사는 ‘국토’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남해안의 많은 섬들과 다른 방식으로 개발되었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섬에 살고 있었고, 공식적으로는 고력 숙종 10년(1105년)까지 ‘탐라국’이라는 독립된 왕국을 유지하였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제주도에는 섬의 창조를 내용으로 하는 독특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설문대할망’이라는 여신이 그 설화의 주인공이다.

설화에 등장하는 설문대할망은 옥황상제의 세 번째 딸인데, 몸집이 거대한데다 성격 또한 활달하였다. 할망은 호방한 성격 탓에 천상계의 무료한 생활에 실증을 느낀 나머지 천상계의 바깥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할망이 옥황상제 몰래 들여다본 바깥세상은 하늘과 땅이 맞붙어 있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

할망은 곧 그 답답한 세계를 열어놓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하늘을 받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짓누르니 하늘과 땅이 서로 분리되었다. 하지만 할망은 이 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땅의 세계로 쫓겨나고 말았다.

할망은 천상계에서 내려올 때 치마폭에 흙을 담고 왔는데, 이 흙을 남쪽 노인성이 비치는 곳을 찾아가 내려놓으니 제주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밋밋한 섬의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흙을 몇 차례 떠 놓으니 한라산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물론 설문대할망의 설화는 지리적 제약과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민초들이 의지할 대상으로 만들어놓은 ‘아이돌’에 다름 아니다. 척박한 환경과 맞서며 제주섬을 개척했던 여성들의 강인한 생활력이 설문대할망이라는 아이돌에 반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7세기 말에 제주목사에 부임했던 병와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말년에 제주목사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환박물(南宦博物)>(1704)을 저술하였다. 이형상은 <남환박물>에 제주도의 역사와 물산 등을 기록하였는데, 제주의 지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산천의 형국이 육지와 크게 다르다. 표면 지세는 평평히 구부러져 전부 산기슭과 등성마루가 없다. 아득하게 음사(陰沙, 검은 돌이나 자갈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필자)가 깔리고, 그 사이에 언덕과 골짜기가 형성되었으니, 그것을 오름이라 칭한다. 산봉오리는 뾰족한 것이 없고 꼭대기는 고인 물이 많으니 평지가 솟아올라 산이 된 것 같다.

하천은 모두 물이 스며들어 새는 듯하다. 갑자기 내리는 비로 물이 넘칠 때가 아니면 모두 말라 버린다. 이 골짜기 물이 기슭 밖으로 멋대로 흩어져 버린다. 대개 돌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으므로 조략하게 갈색의 비옥한 흙이 있을 뿐이다.'

▲ 제주시 오라동에 위치한 방선문계곡이다. 방선문계곡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바닥이 말라버리는 건천이다. 제주도의 하천 대부분이 건천인 것은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다공질 현무암이 빗물을 쉽게 지하로 침투시키기 때문이다.

병와가 기록했던 했듯이 제주도에는 평지가 솟아올라 산이 된 오름이 도처에 널려있고 오름의 꼭대기엔 어김없이 분화구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 하천은 비가 내려도 물이 스며들어 새어 버린다. 이렇듯 제주도의 산천이 육지와 크게 다른데, 그 이유는 제주도가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날마다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도 병와가 서술한 그 독특한 풍광을 맛보기 위함이다.

제주의 독특한 지형에도 불구하고, 섬의 형성과 관련하여 과학적인 조사가 진행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제주도의 지질학적 연구는 1925년에 나카무라라는 일본인 지질학자가 처음 진행했고, 국내인들이 연구에 참여한 것은 1960년대에 남기영과 김동숙 등 국립지질조사 연구원들이 제주도의 지질과 지하수 보존상태에 대해 조사한 것이 처음이다.

제주학의 선구자 석주명 선생이 이미 1940년대에 제주방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과 비교해보면, 화산학의 보고인 제주섬에 대한 국내 과학자들의 연구가 너무 늦게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70년대에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제주도는 한라산 백록담에서 용암이 분출하여 형성된 섬”이라고 가르쳤다. 어린 마음에 저 산이 다시 폭발하여 용암이 다시 우리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그 당시만 해도 제주도의 형상과 관련하여 축적된 지식이 많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앞서 언급한 학자들의 연구에 이어 지금까지도 제주도의 지질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이어져왔다. 그리고 그간의 연구에 의해 제주도는 신생대에 형성된 화산섬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제주도의 나이와 관련해서는 신생대 3기에 화산활동이 시작되어 나이가 180만년에서 250만년 정도일 것이라는 학설이 오래도록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도내 곳곳에서 진행된 시추결과는 섬의 나이가 100만년이 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밝혔다. 따라서 기존의 학설이 전면 수정되어야할 처지에 놓였다. /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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