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칼럼](3) 혹한의 제주경제, 희망의 시간 얼마 없다

제주의 빈곤화와 저성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구조화된 빈곤화와 저성장은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며 심각한 사회문제를 노출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제주본부장이 ‘빈곤화 성정과 가난의 땅, 제주의 생존존략’이란 제목으로 장문의 칼럼을 보내오셨습니다. 빈곤화의 원인에서부터 한국과 제주의 문제점, 이를 탈출하기 위한 제주사회의 해법, 특히 리더십과 공직사회의 자세에 대한 조언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5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Ⅳ. 가난 극복을 위한 제주경제의 과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012년엔 세계의 종말이 임박한 것 같은 느낌이 종종 들 것”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던 제주인들에겐 이제 혹한의 매서운 시련이 보다 더 심하게 다가 올 것이다. 열악한 사회기반구조, 인구고령화 심화, 정책역량의 후진성 등을 감안할 때 제주경제에 희망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미래 제주를 아시아 최고의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참으로 어렵지만 극복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해외시장개척을 통한 수출촉진과 향토제품 개발, 주력산업의 질적 고도화, 각종 지역개발사업의 성공적 추진, 신성장동력산업의 육성, 영세상권 활성화 등을 통한 균형발전 도모,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따른 새로운 기회의 활용, 공직사회의 혁신, 추가적인 제도개선 노력 등등.

  이것들은 제주 주민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소득증대에 기여하며, 관광객들에게는 쾌적하고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행복지수 최고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제주 지역사회는 이를 위해 공공 및 민간부문이 일체가 되어 모든 역량과 지혜를 결집해야 할 것이다.

  # '가난한 제주' 탈출 위해 제주사회에 던지는 11가지 제언

  첫째, 지금까지의 외자유치 중심의 지역개발 정책에 더하여 제주기업의 해외진출과 향토상품의 해외수출을 지원하는 데도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외수출시장 개척을 통해 수요의 안정을 기한다면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국내경제 성장이 수출 및 IT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소비비중이 높은 제주경제가 이러한 성장혜택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경제성장세 둔화 등 지역발전에 많은 어려움이 초래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경제가 정부의 수출지원정책과 궤도를 같이 한다면 국내경제 성장에 따른 많은 성과들을 함께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향토자원을 이용한 향토상품의 개발과 이의 수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면 도내 산업기반이 취약한 제조업의 발전을 통해 주민들의 고용증진과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고용없는 성장으로 실업률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독일과 일본이 고용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강력한 제조업의 힘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수출 1조원 시대를 반드시 달성해야 할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도내 소비자를 희생시키거나 시장을 왜곡하면서까지 수출에 특혜를 주는 수출지상주의 정책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기존 주력산업인 농수축산업 및 관광산업부문의 고부가가치화를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농수축산업은 첨단기술과의 융·복합을 통하여 고품질 상품의 생산력을 신장시키고, 관광산업도 연계형 마이스(MICE)산업 육성 등 질적 고도화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만 한다. 특히 제주의 특출한 브랜드인 자유와 청정의 두 개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올레길을 세계적 걷기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청정 농축산물을 세계 제일화하기 위한 전초단계로 제주를 무농약·무화학비료 지역(zone)으로 선포하여 관리하는 것도 요구된다.

# 프로젝트보다 저출산고령화 FTA 대응한 미래시장적 비전과 전략 시급
 
  셋째, 그동안 진행해 온 각종 지역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함과 아울러 지역특성에 적합한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특히 교육, 의료, 첨단기술, 신재생에너지, 고령친화산업 등 새로운 산업의 육성은 지역사회의 기초인프라 확충은 물론 지역경제의 장기적인 성장력 강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신성장동력산업 육성은 최근 제주경제의 주요 현안이 되고 있는 고용부진 문제를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프로젝트형 개발사업에 우선하여 경제의 중장기적 활력을 높이는 거시정책에 대한 혜안과 대책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 한‧미, 한‧EU FTA 체결, 복지제도의 확충 등에 대비한 미래지향적 비전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은 위대한 지도자의 첫 번째 자질에 대해 “매일 벌어지는 오늘의 일과 문제들을 뛰어넘어 내일 이후를 바라보며 가능성과 잠재력을 분별해내는 비전”이라고 말했다.

  다섯째, 세계적인 경영대학 INSEAD의 교수인 안토니오 파타스(Antonio Fatas)와 일리안 미호프(Illian Mihov) 등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수준, 경제의 개방성, 부정부패의 수준 등으로 측정한 사회기반구조(social infrastructure)의 질적 수준이 국민소득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고 한다.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양적 증가가 과거처럼 수월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호간의 신뢰를 핵심요소로 하는 사회적 자본은 경제 전반의 고비용구조를 완화하고 갈등을 낮춰 성장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제주사회가 편법과 불공정을 타파하고 보다 더 정의롭고 공정한 선진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기반구조의 확충과 질적 향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특히 제주경제가 저성장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지속성장 궤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 제주사회 전반에 걸쳐 실질적인 법치주의의 강화와 함께 각종 부정과 부패를 차단하고 양극화의 해소를 통해 세대간‧계층간 사회적 신뢰를 높여나가야 한다.

  여섯째, 경제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제원리에 충실한 내용을 갖추는 것은 물론 각 경제주체의 역량을 한 데 모으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책수립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경제주체의 에너지를 결집함으로써 정책의 성공이 더 크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 도정은 비전과 원칙과 철학이 빈곤한 상태에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정책의 구심점을 찾기 어렵고 상황에 따라 정책이 조변석개하면서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자연히 편법과 미봉책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는 지역 현안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난마처럼 꼬일 수밖에 없다.

# 로마제국의 비결은 합리적 ‘집단결속력’...일방통행 리더십은 제주사회 ‘적신호’

  그 결과 영리의료법인 도입, 강정 해군기지 건설, 7대 자연경관 선정 등 굵직굵직한 과제가 장기간 표류상태를 보이면서 도정의 권위 추락과 함께 지역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7대 자연경관 선정 결과는 우리가 잘 활용한다면 제주사회의 강렬한 공동체 목표의식으로 승화되어 지역사회의 역량 집결과 도정 운영의 강력한 구심점이 될 수도 있을텐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과거 로마가 변두리 작은 도시에서 제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집단 결속력이었으며 역으로 집단 결속력의 고갈과 해이가 제국의 몰락으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집단 결속력은 국가의 성쇠까지도 좌우하게 된다. 최근 제주사회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도정의 리더십이 실종되면서 도 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급전직하함으로써 집단결속력이 약화되고 있는 점은 심각한 적신호다.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논리에 따라 차근차근 해법을 제시해 왔더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꼬이진 않았을 것이다. 향후 도정은 전문가의 객관적 분석과 평가를 중시하여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배제해야 하며, 도정과제에 대한 필터링을 강화하여 지사의 일방통행식 도정과제 추진과 선심성 사업의 남발을 막아야 한다. 이제라도 도정과제에 대한 전략을 새로이 가다듬어야 한다.

# 도지사 되면 정책 뒤집고, 4년 후 다시 바꾸고...쌓고 허무는 ‘바보들의 행진’  

  일곱째, 소비 의존적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는 제주경제의 장기성장 기반강화를 위해서는 생산 못지않게 양질의 소비활성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경제주체의 긍정적인 소비심리 형성이 중요한데 언론의 보도자세와 도정의 정책방향이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 등 각종 현안과제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 보다 도정의 정책방향이 소비심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도정은 정치·사회의 안정을 도모해 나가면서 분명한 정책의지 표명과 일관된 정책시행을 통해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예측력을 높일 수 있는 경제환경을 지속적으로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바보는 처음에 샤워꼭지에서 찬물이 나오면 뜨거운 물로 돌린다. 그러다 뜨거워지면 다시 찬물로 돌리고, 그걸 반복하다 결국은 망한다"며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안된다. 최선의 경제 정책이 뭔지는 모를 수 있지만 확실한 차선(次善)의 정책은 경제주체들에 예측 가능성을 줄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정책'"이라고 했다.

  그러나 제주사회는 도정이 바뀌면 기존 정책을 몽땅 뒤집고, 다시 뒤집힐 것을 새로 쌓는 모순을 부끄럼 없이 저지르고 있다. 쌓다 허무는 짓을 4년마다 반복하고 있으니 제주사회가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땅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덟째, 고령화 시대에 따른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하며 저출산·고령화에 수반되는 성장잠재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출산 및 육아 지원 강화, 고령친화산업의 육성, 고령자 및 여성인력의 활용 증대, 외부인력의 유입 촉진 등을 위한 사회경제적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아홉째, 2012년은 특히 안정적 성장기반 확보를 위한 경제정책의 수립·집행이 매우 긴요한 시점이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 지속과 신용등급 하락, 총선·대선 등 국내 정치일정,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긴장도 고조에 따른 석유파동까지 겹치면 올해 안에 우리나라의 경기가 회복되는 전환점을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더구나 올해는 현 정부의 마지막 해로 위기가 닥쳐도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시기이다. 따라서 제주 도정은 정치권 등과 자주 소통하며 경제위기에 범도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정책플랜을 따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4회로 이어집니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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