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칼럼] (5) 문제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제주의 빈곤화와 저성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구조화된 빈곤화와 저성장은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며 심각한 사회문제를 노출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제주본부장이 ‘빈곤화 성정과 가난의 땅, 제주의 생존존략’이란 제목으로 장문의 칼럼을 보내오셨습니다. 빈곤화의 원인에서부터 한국과 제주의 문제점, 이를 탈출하기 위한 제주사회의 해법, 특히 리더십과 공직사회의 자세에 대한 조언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5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열한번째, 제주 도정은 진정으로 제주도의 미래 발전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국가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기업들도 누가 리더가 되는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국가 지도자를 잘 만나고 잘못 만나는 차이로 과거와 현재의 처지가 바뀐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과 필리핀이 많이 언급된다. 지도자가 신뢰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면 족하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면 제주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도민 간 질시와 갈등의 해소를 통해 지역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런 리더십은 수평적 리더십이다. 나와 다른 생각에 마음을 활짝 열어놓아 자신의 경험과 지식, 고정 관념의 틀을 깨고 남과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한다. 항상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항상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다음으로 이념과 정파를 아우르며 강렬한 통합된 공동체 목표의식을 살리는 리더십이다. 우리 국민은 갈등하고 싸우다가도 공통의 목표만 있으면 한 데 뭉쳐 폭발적인 공동체 에너지를 내뿜는 신비로운 민족이다. 국가부도 위기 앞에서 난동과 방화로 저항하는 유럽 국민의 모습과 IMF위기 때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모았던 우리의 너무 다른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나와 다르지만 도민이 어려울 때 도정이 반드시 도와줄 거라 믿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1957년 미국은 소련이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라는 무인 우주선을 우주에 쏘아 올리자 충격에 빠졌다. 당시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올려놓겠다는 비전을 국가 경영의 중심 콘셉트로 제시한다. 달 착륙이라는 가슴 뛰는 비전은 국가 운영 방향의 구심점이 되어 미국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소련을 앞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지금 제주사회는 지역사회의 역량 집결과 도정 운영에 구심점이 될 강렬한 공동체 목표의식을 찾아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하나의 비전을 향해 나아갈 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적 같은 힘이 생길 것이다.

  또한 각종 현안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제주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도민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도정이 반드시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리더십이다. 지하 700m에 갇힌 칠레 광부들이 끝까지 버텨낸 것은 반드시 구조된다는 믿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국민 한 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포로 수백 명을 풀어준 일도 있다. 그렇게 국민을 소중히 여기는 국가에 이스라엘 국민은 전쟁이 터지면 해외에 나간 청년들까지 귀국해 입대하는 충성으로 화답한다.

  이는 국가가 국민을 대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애국심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경들의 강정마을 진입시에 도정이 보여준 어설픈 동선은 이스라엘과는 극명히 다른 리더십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신뢰의 위기는 권위의 위기로 치닫게 되고 결국에는 사회의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군림이 아닌 공복으로서 봉사하고 투명한 소통과 도민과 함께 하는 리더십만이 도민적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 도민적 신뢰에 기초한 도정의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위와 같은 제반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의적절한 세부추진전략을 수립하여 지역사회와의 공감대 형성 속에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제주경제의 내부환경 요인의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 그리고 외부환경 요인의 기회(opportunities) 및 위협(threats) 등을 잘 분석한 후,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강하며, 기회는 활용하고, 위협에는 대비하는 좋은 전략들을 수립하여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할 ‘과감하고 담대한’ 개혁이 제주도정의 목표가 돼야 한다” 

            Ⅴ. 임진년에 임하는 우리의 다짐

  글로벌 재정위기의 여파로 지구촌 사회는 상당한 기간 동안 낮은 성장에 머무를 것이고, 수출의존형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경제도 저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 제주 역시 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제주는 양극화에 더하여 ‘다 같이 못 사는’ 포괄적 하향화(race to the bottom)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어 향후 제주사회는 질시와 갈등의 증폭으로 사회 활력의 저하와 사회통합에 많은 진통이 수반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 제주도가 가장 가난한 땅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민심의 바닥을 관통하면서 도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따라서 제주 특별자치도의 신천지로의 여정은 더욱 힘들고 긴 터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주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체가 되어 역량과 지혜를 집결할 수 있다면 이제 변방의 시대는 끝나고 대한민국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동해야 할 핵심경쟁력을 찾아 새로운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 제주도에 필요한 과제를 시급히 발굴해야 한다.

  결국 제주발전의 걸림돌들을 제거하기 위한 ‘과감하고 대담한’ 개혁적인 정책 수립과 공감대의 형성만이 위기의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과거 타성을 답습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제주사회는 지구촌의 험악한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더 이상의 진로를 찾지 못해 미로 속에서 헤매다 결국 도태될 수도 있다.

  지금 제주 사회에 진정 필요한 건 구색 맞추기와 생색내기, 분칠(粉漆)한 수사(修辭)로 포장된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상생번영으로 동반성장하는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과감한 선택과 실천만이 필요하다.

  더 잘 사는 제주도를 만들려면, 우리들이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제주는 최근 수년간 여러 정치적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제주도민의 마음이 서로 갈려 있고, 오히려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이에 따라 성장엔진의 동력이 약해졌고, 사회적 목표를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제주도가 ‘특별자치지역’이라는 지위를 획득했지만, 이것이 제주도의 경제력 향상과 도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도움이 된 것은 거의 없다. 경제논리로 풀어야 할 과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타이밍을 놓치고 정치적 비용을 키워 선택 불능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지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제주도민들이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타파하여 도민의 역량을 지역경제 발전에 집중하는 노력이라 하겠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면 안된다. 바로 지금, 과감한 선택과 혁신을 놓치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제주도정은 거시적인 안목과 화합을 바탕으로 한 소통으로 지속적인 성장 비전을 제시하는 도민사랑의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금년은 흑룡(黑龍)의 해, 임진년(壬辰年). 승천하는 흑룡처럼 요동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우리가 작심하기에 달렸다고 본다. 세계 경제가 위기를 거치는 동안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의존성이 커짐에 따라 한 국가의 위기는 다른 지역으로 보다 빠르게 퍼지게 된다. 따라서 대내외 환경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 제주 경제는 최악에 대비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온 도민이 다시 한번 공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것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제주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과 더불어 제주사회의 균열을 아물게 할 처방을 찾아내는 첫해가 되기를 기대해 보자.

‘희망은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모두가 세상을 바꾸어놓겠다는 희망과 의지를 가슴에 품고 한 마음으로 움직인다면, 능히 제주도를 꿈과 번영이 흘러넘치는 땅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끝)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