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죽었단 사람 '쯔루하시'오니 살아있더라
제주에서 죽었단 사람 '쯔루하시'오니 살아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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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쯔루하시 역. ⓒ신재경
쯔루하시에 관광온 관광객들. 가이드의 깃발이 보인다. ⓒ신재경
쯔루하시 야끼니꾸 골목. 수십집의 야끼니꾸 식당이 모여있다. 여기서 맛이 없으면 곧 도태되고 만다. ⓒ신재경 <제주의소리DB>

[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일본 오사까 쯔루하시' 가 아닌 '한국 제주도 쯔루하시'

 교토(京都)시내에 있는 대학에서 여학생이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집은 오사까 어디에요?'
'오사까 쯔루하시(鶴橋)'
'아... 짝퉁 동네'


 깜짝 놀랐다. 김치에 야끼니꾸(불고기) 동네라는 대답이 나올거라고 상상했는데, 짝퉁 동네란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은 교토후(京都府) 후쿠치야마시(福知山市)에 있다. '후쿠치야마'까지는 오사까역에서 특급으로 1시간40분이나 걸리는, 오사까에서는 아주 먼 동네다. 한국이라면 서울과 대전의 거리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 남학생이 나에게 어디에 사냐고 묻는다.

 '오사까 쯔루하시'
 남학생 입에서도 '아.. 짝퉁 동네'


 짝퉁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 입에서 짝퉁이란 단어가 나왔다면 그래도 이해가 좀 될만도 하지만. 관심이 없어 보이는 남학생 입에서 나온 소리이다. 특급기차로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아주 먼 동네에서도 이런 말이 나왔다니. 쯔루하시가 어지간히 짝퉁으로 유명한지를 말해주고 있다.

▲ JR 쯔루하시 역. ⓒ신재경



 나는 쯔루하시를, '일본 오사까 쯔루하시' 가 아니라, '한국 제주도 쯔루하시' 라고 불러서 사람들을 웃긴다.

  제주도 밖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이 어디일까? '쯔루하시' 다. '부산 영도' 도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쯔루하시 근처도 못 온다. 서울은 더욱 더 이렇게 제주도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없다. 1960년대 70년대, 제주도 인구 30만명일때 제주도 출신 재일동포는 10만명 이였다. 이때 7만∼8만명 제주도 출신 동포들이 쯔루하시를 중심에 두고 살았다.

 '쯔루하시' 란 본래 어떤 동네인가?

 쯔루하시에서 걸어서 10분이면 조선시장이다. 조선시장에 가면 여긴 동문시장보다 더 제주도다. 할머니들의 옛날 제주도 말이 그대로 살아있고, 제주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러가지 음식들이 여기에는 남아있다. 얼마나 제주도와 관계가 깊었으면, "제주도에서 죽었다고 소문 난 사람이 쯔루하시 조선시장에 왔더니만 살아있드라"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렇게 일본속에 있는 한국동네이고 제주도 동네이다.

 쯔루하시에 오면 김치 냄새에 불고기(야끼니꾸)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배가 고플때는 더욱 더 코를 찔러 고통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 보다 더 고운 치마저고리 상점이 우리 눈을 반긴다. 한국보다 색상이 더 화려하다. 김치를 파는 식품가게에 지지미에 떡볶기 등 음식가게도 즐비하다. 여기에 오게 되면,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구별을 못한다. 틀림없이 일본속에 있는 한국이다.

  요즘은 한류붐 속에 살고 있다. 일본속 한류1번지가 오사까 쯔루하시다. 일본 사람들은 쯔루하시에 가면 한국에 간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한국 어느 시장에 간 것과 같은 기분을 만들어 준다. 한국 포장마차와 같은 가게에서 떡복이에 지지미를, 여기에는 막걸리가 딱 어울린다. "おいしい おいしい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옆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잘들 먹고 있는 풍경이다. 연령층도 다양하다. 아줌마부터 아저씨, 젊은 여성과 남자 애인, 중·고등학생, 초등학생까지도 있다.

▲ 쯔루하시 야끼니꾸 골목. 수십집의 야끼니꾸 식당이 모여있다. 여기서 맛이 없으면 곧 도태되고 만다. ⓒ신재경 <제주의소리DB>
▲ 쯔루하시에 관광온 관광객들. 가이드의 깃발이 보인다. ⓒ신재경

  관광안내 가이드 깃발까지 보인다. 관광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토요일 일요일날은 쯔루하시 역까지 걸어나가는 것이 고역이다. 폭이 좁은 길을 온통 사람들이 덥치고 있으니, 그 사람속을 헤쳐야만 앞으로 전진 되니 고역이다. 시간에 쫒길때는 신경질이 날 때도 있다.

  쯔루하시는 어떻게 생겨난 곳일까?

   1945년 일본이 전쟁에 패망했고, 곧 쯔루하시에는 야미시장(암시장)이 생겼다. 물자가 부족해서 통제경제를 할 때, 암시장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또 쯔루하시는 이꾸노구(生野區) 히가시나리구(東成區) 텐노지구(天王寺區)가 만나는 곳이다. 이꾸노구(生野區)는 일본에서 제일 우리 한국사람,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내이다. 이 쯔루하시는 지하철, 긴테쓰(近鐵), 간죠센(環狀線) 3개 역이 옆에 옆에 붙어 있는 오사까 동쪽의 교통 요지이다. 이런 교통의 요지에 암시장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상하다.

  옛날 물자가 부족했기에 우리 한국사람 음식인 내장을 구워서 파는 '호르몽'이란 불고기가 판을 치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에 한복집이 생기며, 한국 식품의 대표 김치가게 한국식품 상점가가 생겼다. 이곳에서 먼동네를 사는 한국사람들도 1년에 몇번 제사 명절때는 꼭 쯔루하시에 와야만, 제사 명절 음식 재료를 사가야 제사를 지낼 수 있다.

  재일동포의 메카가 되었고, 일본사람들에게는 '쯔루하시 = 한국동네'라는 인상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 동네다. 이런 일본 속 한국이 되여 버렸으니, 한국을 또 한국사람을 우습게 볼려는 덜 떨어진 일본 우익계 사람들은 배가 아프다. 그래서 쯔루하시역에는 절대로 내리지 말라고 교육까지 한다. "쯔루하시에서 잘못 어슬렁 대다가는 한국놈 불량배에 걸려 얻어터지고 돈까지 뺏기니까, 절대로 가면 안돼"라며 일본 우위사상 교육에 힘을 올린다.

  천만의 말씀이다. 쯔루하시처럼 친절하고 치안이 좋은 동네도 없다. 쯔루하시를 모르는 일본 사람들이 처음으로 쯔루하시에 왔더니만, 너무 친절하고 좋았다는 이야기만 잘 듣고 있다. 이제 덜 떨어진 일본 우익계 친구들의 말에 설득력이 없어지고 있다. 가서 먹어보니 맛 있고 재미있고 친절한 동네에 가지 말라고 역설 해 본 들 누가 그 말을 듣겠는가.

  이렇게 우리의 혼이 일본속에 남아있는 곳이 오사까 쯔루하시 이다.

  한류붐으로 더욱 더 사람들이 모이며, 그 모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장사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옛날에는 '마늘냄새가 난다'며 싫어하던 척 하던 김치가 요새는 일본사람들이 더 잘 먹는다. 맛있고 몸에 좋은 것을 지금에야 알았을까? 아니다. 옛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한국놈들 먹는 거라고 얍잡아 볼려고 내숭 떨었지만, 이젠 입이 그 내숭을 참지 못하게 한 것이다. 김치가 이렇게 홈런을 치고 있으니, 다른 한국식품들도 히트를 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음식 가게, 옷가게, 한류숍(Shop), 가방가게가 눈처럼 불어나고 있다.
   가게들이 이렇게 늘어나고 있으니, 쯔루하시에서 가게 임대료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목 좋은 가게가 나오면 바로바로 계약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점포 임대료가 내려가질 않고 올라가고 있다. 집주인들은 웃음이 저절로 나오고 있다.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주로 New Comer 비행기 1세들이다.
  나는 한국에서 일본에 온 1세대를 3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해방전 1세, 밀항 1세, 비행기 1세로 구분해서 이름 붙였다. 해방전 1세란 식민지 시대때 일본에 온 사람들이다. 밀항 1세는 해방후 여행자유화가 되기 전에 밀항으로 일본에 온 사람들이다.비행기 1세란 여권을 자유롭게 만들수 있는 1988년이후에 여권을 가지고 비행기 타고 온 사람들이다.

   쯔루하시엔 해방전 1세들과 비행기 1세들이 어울려져 장사를 하고 있다. 특히 늘어나고 있는 가게는, 한류 스타들 사진이 들어간 물건을 파는 한류숍과 포장마차처럼 한국음식을 파는 음식가게들이다. 이상하게 가방가게가 많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 /신재경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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