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석일 작가의 '다시 오는 봄(도서출판 산책)'. ⓒ제주의소리
제주 출신 재일 동포 2세 양석일 작가 '다시 오는 봄' 출간
▲ 양석일 작가의 '다시 오는 봄(도서출판 산책)'. ⓒ제주의소리

어떤 공식적인 기록도 문서도 자취도 없다. 직업을 얻을 수 없었다.
눈물 가득한 방에 갇혀 있었다. 팬티 입을 시간도 없었다.
우리가 해야 할 것들, 이름을 바꿔야 했고,
너무 많은 사람과 해서 걸을 수 없어도 해야 했다.
...
우리에게 남은 것들, 지워지지 않은 충격, 자식도 집도 없는 텅 빈 자궁.
우리에게 붙여진 이름들, 위안부, 타락한 여자들.
우리는 지금 팔십삼 세, 구십사 세,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 당장 우리의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에 말하라!
- 1000번째 수요집회에서 연극 '버자이너 모노로그' 배우들이 낭독한 시 중에서

지난해 12월 14일,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수요 집회가 1000번째를 맞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본체만체 외면하는 일본 정부 탓에 할머니들은 하염없이 속만 태우고 있다. 

이 가운데 ‘위안부’의 참혹한 진실을 그린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피와 뼈' '어둠의 아이들' 등의 소설로 이름을 알린 제주 출신의 재일 교포 2세 양석일(76) 작가의 ‘다시 오는 봄’이다.

1936년 오사카에서 나고 자라 우리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작가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일본인 위안부 지원 활동가 등을 인터뷰하고 현지 취재 등을 거쳐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다시 오는 봄’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 여성 김순화씨의 일대기다. 열일곱의 나이에 상하이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첫날부터 쉿 여섯 명의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렇게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 난징, 싱가포르, 미얀마 양곤, 라시오 등 전장을 돌며 성적 학대를 당한 과정이 참혹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일본군의 일상적 성적 학대, 살인으로 치닫는 폭력에 노출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가슴을 저며 와도 쉽게 책장을 덮을 수 없다.

이 소설은 단지 한 사람 ‘순화’의 일대기가 아닌, ‘조선’이라는 처녀성을 지닌 집단적 신체가 강간당한 역사의 증언이다. 일제에 꽃같은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수많은 순화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작가 양석일이 겨냥하는 비판의 대상은 일본을 비롯한 전범국가에 다름 아니다. 성범죄란 자고로 침략행위의 일종으로, 제국주의가 낳은 최대의 반인륜적 죄악에 속한다. 바로 이 연장선에서 ‘다시 오는 봄’을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소개했다.

도서출판 산책. 1만4천800원.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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