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따오 항구 전경. ⓒ양기혁
칭따오 여객터미널 앞의 주차장 한쪽에 보따리상들의 짐들이 줄을 서서 세워져 있다. ⓒ양기혁
독일 조차시 지어진 천주교회 전경(위), 천주교회 앞 광장에서 촬영 중인 웨딩커플들(아래) ⓒ양기혁
중국에서 첫날밤을 보낸 Old Observatory 건물 전경 ⓒ양기혁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① 4월 13일 수요일

밤새 황해를 헤쳐온 페리호는 날이 밝으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대륙으로 다가서고 있다. 선내 안내방송이 몇 번 나오고, 승객들이 저마다 내릴 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떤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슴앓이를 하며, 침대칸에 누운 채 머리맡에 놓아둔 생수병의 물 한 모금으로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제 나도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 칭따오 항구 전경. ⓒ양기혁

꺼내놓은 짐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배낭 속으로 집어넣는다. 배낭 속 깊숙이 들어가야 할 것과 가이드북과 같이 자주 꺼내봐야 할 것들을 구분하여 배낭을 챙기고 나자 거추장스러운 짐, 어제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칭다오 사는 화교라며 접근하는 보따리상의 부탁으로 떠맡은 짐 하나가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인천 국제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몇 사람에게서 계속 거절당한 사내는 드디어 나에게 다가오더니 짐 하나를 들어줄 것을 집요하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몇 번 거절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고, 짐을 두고 가라고 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짐을 놓고 사라지고 나서 곧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모질게 거절하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일 없이 통과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 칭따오 여객터미널 앞의 주차장 한쪽에 보따리상들의 짐들이 줄을 서서 세워져 있다. ⓒ양기혁

배가 완전히 멈춰 서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다시 만난 화교 유 씨는 한국에서 쓰던 컴퓨터 세트를 가지 고 가는 것일 뿐이며 거듭 문제없음을 장담하였다. 그리고 세관 밖으로 나가면‘라오량(老梁)’이라는 키가 훌쩍 크고 젊잖은 노인 한 분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에게 전해주면 된다며 지갑에서 1만 원을 꺼내 운반비로 나에게 내밀었다. 간절히 부탁하여 호의를 베푼 것인데 심부름값으로 만 원을 받으라고 하니 우롱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그는 얼버무리듯 돈을 내 손에 쥐여주고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을 따라 배에서 내려 다시 대기하고있는 버스에 타고, 세관으로 향했다. 세관에서는 여러 명의 중국 세관원들이 입국하는 승객들의 짐을 매우 꼼꼼하게 하나하나 뒤져보고 있었다. 내 차례가 오고, 배낭과 또 하나의 짐인 컴퓨터 세트를 엑스레이 검사기의 벨트 위에 올려놓자 기계가 삼켰다가 반대편으로 뱉어냈는데 엑스레이 영상을 분석하는 세관 직원이 일어서서 나를 부르더니 컴퓨터 세트 짐을 들고 건너
편 다른 직원들이 있는 곳으로 가져가라고 지시했다.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마는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반대편에서 검사하는 세관 직원 앞으로 가져갔다. 그 직원은 짐을 살펴보고 새것이냐 쓰던 것이냐, 도로 한국으로 가지고 갈 것이냐 등 나에게 몇 가지 물어보고 난 뒤, 세금을 내야만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며 관세 210원을 내라고 한다. 세금만 내면 되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일순 안도하면서도 세금을 내가 내야 하는지 나에게 짐을 맡긴 유 씨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혼란이 생겼다. 그러나 그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지갑을 꺼내 세금을 내고 세관원이 써주는 영수증을 받고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양 노인은 유 씨의 말대로 훤칠하게 키가 큰 모습으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노인 앞으로 다가가서 짐을 내려놓고 영수증을 제시하며 내가 대신 낸 세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노인은 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영수증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더니 어디론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 오랫동안 통화를 하였다. 얼마후 나에게로 온 노인이 내가 낸 세금 210원을 건네주었다. 다행히 이것으로 이번 여행에서 맞은 첫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여행 중에 함부로 호의를 베푸는 일도 삼가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과 같은 일은 더욱 그렇다.

홀가분해진 심정이 되어 가벼운 목례로 노인에게 인사하고는 터미널 밖으로 나왔다.
도로변에 주차되어 있는 택시 몇 대가 배에서 내린 승객들을 맞고 있었다. 우선 중국땅을 좀 걷고 싶었다. 뒤에서 택시기사들이 던지는 소리를 귓전으로 흘려들으며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한낮의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었다. 도로공사로 길주변은 파헤쳐지고 길 건너편 쪽은 대규모 아파트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도 안 되어 있는 길을 차량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갔다. 유럽풍의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진 칭따오의 첫인상은 나에게 매우 황량하고, 스산한 느낌을 갖게 하였다. 두어 정거장을 걸어가다 다시 버스정류장에 몇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이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기로
하고, 정류장 옆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노부부에게 다가가서 버스요금을 물었다
.
“꽁꽁치처페이 둬샤오치엔(버스요금이 얼마예요)?”
“이콰이(1원)”

부부가 합창하듯이 말하며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그런데 버스노선안내 표지판 밑에 잔돈을 돌려줄 수 없으니 미리 잔돈을 준비하고 버스를 타라는 문구가 보였다. 다시 노부부에게 10원 지폐를 잔돈으로 교환해 줄 수 있는지 묻자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사래를 치며 절대 바꿔 줄 수 없다는 단호한 표시를 하였다.

버스가 오자 할 수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기사에게 10원 지폐를 보여주며 요금통 속으로 집어넣으려 하자 기사가 제지하며 뭐라고 말을 하는데,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한국인임을 밝혔다.
“팅부동, 워스 한궈런.(알아듣지 못합니다. 한국사람입니다.)”

기사는 돈을 안 내도 되니 그냥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버스요금 1원, 한국 돈으로 170원 정도인데 중국에서 처음 탄 버스를 공짜로 타게 생겼다. 얼마후 버스는 번화한 도심으로 들어가더니 곧 기차역이 나왔고, 기차역 근처에서 버스를 내렸다.

중국여행에서 다음 행선지의 기차표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던 것이 떠올랐다. 내일 시안(西安) 가는 기차표를 먼저 사고 나서 예약한 유스호스텔로 가기로 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역 주변에 있는 공안(公安)에게 가서 기차표를 어디에서 사는지 묻자 그는 손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계속 더 가라고 한다. 조금 더 가자‘쇼우피아오추’라고 써 있는 표 파는 곳이 나왔다.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면 매표구(賣票口)인데, 20개가 넘는 창구에 각 창구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표를 사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입구에 탁자를 놓고 앉아 있는 공안에게 다가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칭원, 워스 한궈런. 밍티엔 워 야오 취 시안 마이피아오. 저머반.
(말씀 좀 묻겠습니다. 나는 한국인입니다. 내일 시안으로 가는 표를 사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안은 나에게 혼자냐고 묻더니 종이쪽지에 사야 할 기차표의 내용을 적고 나에게 건네주며 맨 끝의 사람들이 적게 줄을 선 1번 창구에서 기다리라고 말한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기로는 쪽지에 써서 내밀면 창구 직원은 표 사는 사람을 벙어리로 안다고 하던데 어쨌든 내 차례가 되어서 그 쪽지를 내밀었다. 창구의 여직원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샹 쭝 시아(上, 中, 下)’중에서 어떤 것이냐고 하는 것 같아서 무심코‘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창구 직원은 컴퓨터에 내용을 입력하고,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화면을 보여주며 돈을 내라
고 한다. 324원. 한국 돈으로 대략 55,000원이다.

기차는 내일 12시 10분 출발, 좌석은 이다. 좌석번호가 있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시안까지는 22~23시간 걸리니 기차가 하루 종일 달려서 거의 모레 점심 때가 되어서 도착할 것이다.

▲ 독일 조차시 지어진 천주교회 전경(위), 천주교회 앞 광장에서 촬영 중인 웨딩커플들(아래) ⓒ양기혁

기차표를 샀으니 이제는 천천히 시내구경이나 하면 되었다. 기차역을 벗어나 좀 한적한 길로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시장기가 느껴지기도 해서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중국 서민들이 먹는 현지 음식에 도전해 봐야지 하는 생각에 통 알 수 없는 메뉴판에서 아무거나 찍었다. 그리고 미판(米, 쌀밥) 한 그릇은 따로 주문한다. 쌀밥 한 그릇과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면인지 고기 종류인지 알 수 없는 음식을 몇 번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 먹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배낭 속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포장김치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종업원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혹시나 김치 냄새가 퍼지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김치와 쌀밥만으로 점심 한 끼를 때워야 했다.
가이드북을 살펴보니 독일이 산동반도를 점령하고 있을 당시 지어진 천주교당이 근처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아서 종업원에게 대략 방향을 물어보고 식당을 나왔다. 사
람들의 왕래가 적은 도시의 뒷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점차 도시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갔다.
조금 지나자 성당의 높은 첨탑이 건물들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첨탑을 나침반 삼아 그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성당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넓은 광장이 나타났는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참배객이나 관광객은 없고, 하얀색 혹은 베이지색의 웨딩드
레스와 흰색, 검정색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혼커플과 사진촬영기사, 그리고 촬영을 보조하는 사람들이 그 광장을 가득 메우고 모두가 웨딩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칭따오 사람들에게 그곳은 기독교의 성지가 아니라 단지 웨딩촬영의 성지일 뿐이었다.

성당 옆 골목을 지나 뒤쪽으로 나와서 언덕을 내려오니, 더 이상 딱히 가야 할 곳이 없었다. 칭다오 관광은 생략하고, 숙소로 가기 위하여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 뒷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서 택시기사에게 행선지를 말했다.
“샹산 꽁위엔(상산 공원 가주세요).”
기사는 내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그곳을 모르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어서 나는 거듭 “샹산 꽁위엔”을 외쳤고,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트막한 언덕의 한 공원 입구에서 택시를 멈추고 뒤돌아보더니, “스알.(十二.)”이라고 말하며 택시요금 12원을 내라고 한다. 내가 15원을 그에게 주고 배낭을 챙기는 사이에 기사는 3원의 잔돈을 줘야 할 건지 안 줘도 될지 망설이는 듯하더니 거스름돈을 내밀었다. 잔돈을 받고 택시에서 내려 바로 옆의 공원 안내소에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쩌스 샹산 꽁위엔마(여기가 상산공원입니까)?”
“부스, 쩌스 신하오산 꽁위엔.(아닙니다. 여기는 신호산공원이에요.)”

여자의 말을 듣고 나서, 잘못 왔음을 알고 뒤를 돌아보니 택시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차를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택시기사를 소리쳐 불렀다. 기사가 택시에서 내려 여자에게 가서 몇 마디 물어보더니 나에게 다시 타라고 한다. 택시는 도로 언덕을 내려가서 다른 언덕길을 몇 굽이 돌아 올라갔다. 택시미터기는 돌아가지 않고 멈춰 있는 채였다. 계단이 시작되는 공원 입구에서 기사는 나에게 내리라고 한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에 아까 거스름돈으로 받았던 3원을 그에게 내밀자 그는 웃으며 그 돈을 받았다.

▲ 중국에서 첫날밤을 보낸 Old Observatory 건물 전경 ⓒ양기혁

계단을 다 올라가서 산 정상에 이르자 사람들이 휴식과 운동을 할 수 있게 넓은 공원을 조성해 놓았고, 한쪽 끝에 옅은 하늘색의 3층건물에 둥근 돔을 만들어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하나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입구 문 위에‘Old Observatory’라고 쓴 간판이 보였다. 여기가 중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낼‘아오보웨이터궈지칭니엔뤼서(Old Observatory 유스호스텔)’인것이다.‘ 아오보웨이터’는 Old Observatory의 중국식 음역인 것 같고,‘ 궈지칭니엔뤼셔’는 유스호스텔을 말한다. 번역하자면 ‘옛 관상대 유스호스텔’이라고 할 수 있다.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노자는 어쩌면, 필자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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