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과정서 의견 분분...위원들 함구 '막판 뒤집기'?
 
국무총리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기술검증위원회(검증위)가 활동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총리실 쪽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21일 제주도의회에서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하지만 외압설의 실체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누구 하나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보고서 채택 당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혹을 제기한 인물은 행정자치위원회 강경식 의원(통합진보당, 제주시 이도2동 갑). 강 의원은 이날 민군복합형관광미항추진단(단장 양병식)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최종보고서가 채택되기 전 총리실 인사가 개입해 대폭 수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단호했다. 도청 간부가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듯 구체적인 확인 여부를 묻자 그는 "총리실 차관급 인사"라고 까지 거명했다.
 
회의 직후 <제주의 소리>와 전화통화에서 강 의원은 더 구체적으로 '전해들은 상황'을 설명했다. 얘기인 즉슨, 이미 합의된 내용에 총리실 쪽이 수정을 가하자 일부 위원이 제주도에 이 소식을 전했고, 제주도 관계자가 항의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 의원은 그러나 자신에게 소스를 제공한 이가 누군지에 대해선 끝까지 함구했다. 정부 쪽인지 제주도 쪽인지 구분은 안둔 채 '책임성 있는 고위 관계자'라고만 밝혔다.
 
강 의원은 "총리실에서 보고서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수정을 했다면 최종 결론 부분일 것"이라며 "그래서 공사가 가능한 쪽으로 정리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강 의원이 지목한 부분은 보고서 4쪽의 '최종 검토 결과'. 설계풍속, 횡풍압면적, 항로법선, 선박시뮬레이션 등 4가지 항목에 대해 검토한 결과 '항만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항만 구조물 재배치와 고 마력 예인선 배치를 반영하여 선박의 통항 안전성 및 접안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선박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그 전 페이지에서 4개 항목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놓고 항만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아도 된다니,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않는 어정쩡한 결론이었다. 검증위가 알아서 총리실 눈치를 살폈다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제 입맛에 맞게 수정을 가했을 것이란 의심도 사실은 이 때부터 나왔다. 

도내.외 언론은 물론 곳곳에서 설계 오류가 드러났다고 한목소리를 냈지만, 국방부는 직접적으로 그런 표현이 들어있지 않다며 계획대로 추진하기 위한 구실로 삼았다.   

국회 예결특위 제주해군기지 조사소위 위원인 민주통합당 강창일 의원(제주시 갑)은 20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내용은 설계오류인데 (결론을 보면)압력을 받은게 분명하다"며 "국방부는 한국말도 잘 모르냐"고 꼬집기도 했다. 
          
문제의 보고서는 2월14일 채택됐다. 내용이 공개된 것은 사흘 뒤인 17일이다.

1월26일 구성된 검증위는 2월14일까지 모두 4차례 회의를 가졌다. 마지막 회의는 2월14일 정부중앙청사 별관 회의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장 8시간 동안 열렸다. 그 전 3차례 회의가 길어야 3시간을 넘기지 않은 것을 보면 4차 회의에선 위원들끼리 의견 대립이 팽팽했거나 문구 하나를 놓고 여간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지난19일 검증위의 중립성 논란을 무릅쓰고(?) 국방부 브리핑에 참석한 전준수 위원장(서강대 교수)도 "제주도에서 추천한 위원들과 토의 과정에서 상반된 의견이 있었다"며 위원들간에 이견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검증위는 4차례 회의 결과 도출된 내용을 종합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위원들이 이에 합의한 다음 서명을 남겼다.
 
하지만 위원들이 입을 굳게 닫아버려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날  '총리실 외압설'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이와관련 강창일 의원은 "총리실에서 검증위원들에게 '비밀유지 서약'을 받아 입을 닫게 했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21일 <제주의 소리>와 전화통화에서도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도 위원들이 하나같이 '서약 때문에 밝힐 수 없다'며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고 답답해했다.

강 의원은 "검증위는 만장일치제여서 합의가 안된 부분은 (보고서에)수록을 못하게 돼 있다"면서 "(최종 결론 부분에)항만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치적 수사(修辭)를 쓴 것도 이 때문(만장일치제를 의식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표현 자체가 '정치적 꼼수'라고 단언했다.

검증위 위원은 모두 6명. 총리실과 국방부가 각각 1명을, 제주도와 국회가 2명씩 추천했다. 위원회 구성 첫날 총리실이 자기쪽 인사 1명을 추가로 위원에 앉히려다 여론에 밀려 무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단단히 입단속을 했는지, 아니면 서약을 깰 수 없었던 건지, 위원들은 속시원히 당시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   

한 위원은 "처음부터 막판까지 논의 과정에서 여러가지 (이견이)나왔지만 그건 토론과정으로 봐야 한다. 최종 의견을 전체 결론으로 봐야 한다"며 "위원들이 최종 내용에 어그리(동의)한 것 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최종 결론 부분은 해석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다. 심각하게 여기는 위원도, 현실적으로 보는 위원도 있었다"며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의혹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보고서 채택 과정에 말못할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 만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주의소리>

<김성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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