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철 칼럼> 벨레기 간세라?
▲ 강민철 ㈜컬처플러스 대표

하루이틀이면 수백통씩 쌓이는 이메일 속에서 간혹 (사)제주올레로 부터 보내지는 이메일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움이다. 어제도 지하철에서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따끈따끈한 한통의 이메일을 받고 즐거웠다. 하지만 딱 2초후 나는 다큐모드로 바뀌고 말았다.

'제주올레 서포터즈 벨레기 간세 모집' 이란 제목을 읽고 난 뒤였다.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지고 정색을 하게 된 건 '벨레기'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더욱이 방금 전 모처럼 제주시 출신 고향 선배를 만나 점심을 하며
"000는 벨레기 소리를 듣나 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싫어해"
하고 얘기를 하고 나온 터라 누가 들으면 프랑스말 같기도 하고 이태리어 같기도 한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예쁘다'는 생각만이 들지는 않았다.

벨레기 간세!

작명의 창발성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으나 제주출신으로서 '벨레기 간세'라고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머뭇거려지는 게 사실이다.

'벨레기'는 친구나 동료 중에서 잘난척 하는 사람을 일컬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어릴적엔 누군가 자신더러 '벨레기'라고 놀리면 뒤쫒아가 종주먹을 하곤 했다.

단어의 고유함이 오랜 시간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작명'을 할 때 본래의 의미에 대한 보존과 활용에 대해 숙고해 봐야 한다. 수백년에 걸쳐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굴러온 단어들에 묻어져 있는 고유한 이끼들이 일순간 화학적으로 변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제주올레는 서울을 비롯한 육지 지방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한창 올레의 인기가 상승세를 탈 때 서울 사람들에게 올레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들은 '조랑말'이 떠오르고 '바다'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제주올레가 인터뷰를 하거나 홍보를 할 때 올레의 어원과 의미를 마치 각주처럼 꼬박꼬박 얘기했는데도 말이다.

그 즈음 제주 토박이들에게 올레는 그저 마을길에서 집까지 이어진 돌담길이고 때로는 올레 초입에 큰 폭낭이 하나 서 있고 집까지 걸어가면서 '사람이 이신가 어신가' 생각하던 추억의 장소여서 서울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올레'에 간다고 할땐 이질감을 느낀다는 얘기도 하곤 했다.

제주사람들과 육지사람들이 연상하는 '올레'의 이미지가 다르다. 현재의 올레가 과거의 올레를 더욱 빛나게 하는데는 일조하고 있으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지나 않을까 우려가 된다. 아니나 다를까 2년여가 지난 지금 올레하면 제주출신들도 '외돌개'를 먼저 꺼내고 '올레 7코스'를 얘기한다.

'벨레기 간세다리' 역시 좋건 나쁘건 '벨레기'라는 단어가 가졌던 그 뉘앙스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벨레기'는 똑부러지고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만이 아닌 자신만 알고 주변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다는 부정적인 뜻도 있었다. 우리가 '요망지다'라는 말은 듣기 좋아하면서 '벨레기'라는 말을 듣기 싫어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고 제주올레가 '벨레기 간세'를 다시 작명해야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왕 이름을 지었으면 그 취지를 살려 잘 쓸 일이다. 개인적으로 '벨레기 간세'는 벨레기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취하면서 부정적인 의미는 거꾸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해 두고 싶다.

하지만 그만큼 원형에 대한 보존과 해석도 병행해야 한다.

오래된 골동품에 묻어져 있는 때가 그리 곱지 않다고 니스칠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는 것처럼 '벨레기'에 묻어져 있는 제주사람만이 갖는 뉘앙스도 고스란히 보존했으면 한다.
누가 보면 날더러 '벨레기'처럼 얘기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강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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