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강은미.

<강은미의 문학카페> ①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거리를 지나다 보니, 겨우내 말라비틀렸던 목련 가지에서 뽀얀 솜털의 목련 봉오리가 봄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월은 겨우내 헐벗은 나무들도 안으로 기를 모았던 영양분을 힘겹게 밀어내며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바야흐로 이월된 지난 꿈들마저 도약을 위한 발걸음을 조용히 내딛는 달이다. 하지만 입춘을 기점으로 몰아닥친 한파는 안그래도 겨울이 추운 이들에게 전신을 움츠리게 하는 혹독한 추위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수능 결과가 기대에 못미치고, 직장에서는 승진명부에서 누락되고, 이사철을 맞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아직 찾지 못한 이들에게는 2월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 고전을 읽다보면 누구보다도 세상살이가 캄캄하고 답답하게 여겨지는 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는 인류 역사 이래 어제, 오늘의 화두가 아니다. 자신이 속한 세계 속에서 당당히 주체로 서지 못하고, 늘 무언가에 이끌려 사는 듯한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면 사는 데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거기에다 가난과 질병 등의 개인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부여받은 이들에게는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때로 사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물음에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전부를 혹독하게 산산조각 내는 이들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은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는 나이와 지위, 시대를 불문하고 늘 따라붙는 인간의 본질적인 물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 등장하는 인물 ‘한스 기벤라트’도 그런 본질적인 물음으로 고통스러워하고, 끝내는 연못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어버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한스 기벤라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수재 소리를 듣는 소년이었다. 수재 소년답게 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숙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하일너’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고 만다. 하일너는 시인 소년이었는데 신학교에서는 천재적 망나니로 통한다. 신학교의 규율을 밥먹듯이 무시하고 숲속으로 무단 산책을 나간다거나 숲 속 연못가에 드러누워 시를 쓰거나 읊는 행위로 시간을 죽이며 지낸다. 너무나 다른 두 소년은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데, 하일너의 무단가출로 인해 우정은 끝나고 만다. 갑작스런 공백이 주는 허허로움을 한스는 견딜 수 없게 되고 시름시름 앓다가 요양을 허락받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신학교를 포기하는 것이었으며 다시 돌아온 고향마을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본격적으로 탐색하게 된다. 결국 기계공이 되려고 견습을 하게 되고, 휴일에 시내로 술 마시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숲 속 연못에 빠져 익사하고 만다. 자아를 찾는 일은 제쳐두고서라도 세상과의 화해를 시도하기도 전에 그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슬픈 이야기다.

 책을 덮는데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더니 주인공이 죽은 것이다. 한스의 죽음을 그토록 허무하게 이끌고만 원인이 무엇일까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신학교에 입학해야 한다는 고도의 억압기제가 그를 신경쇠약으로 만들어서 그럴까, 마을에 사는 ‘에마’라는 소녀와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그를 충격으로 밀어넣었을까, 급작스레 떠나고만 하일너의 실종이 그의 의지할 바를 없애버려서 그럴까, 자신의 수제자로 받아들이려고 하던 교장이 한스의 변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대를 포기하고 말아서일까. 어쩌면 그 모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에게서 생에 대한 애착을 갖지 못하게 한 건 애정 없는 기대감으로 꽉 찬 억압의 사슬이었으며, 누구나 다 타고난 바가 다르다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권위 있는 자들의 경멸에 찬 눈빛이었다. 유일하게 맹목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어려서 돌아가셨고, 간신히 마음을 얻고 세상을 좀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준 시인 친구는 생사를 알 수 없고, 첨탑 아래 사각의 교실에서 히브리어와 수학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고…… 총체적인 질풍노도의 소용돌이는 그를 연못 속으로 밀어넣어 버렸던 것이다. 

작품 속 책갈피...

자연이 만든 본래의 인간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하고 불온하다. 그것은 미지의 산으로부터 흘러 떨어지는 거친 물결이며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다. 원시림을 자르고 정리하고 힘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학교도 태어난 그대로의 인간을 붕괴시키고 굴복케하여 힘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학교의 사명은 당국이 인정하는 원칙에 따라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사회의 유용한 일원으로 만들고, 마침내는 병영의 주도 면밀한 훈련으로 최후의 완성을 보게 될, 여러 가지 성질을 깨우치게 하는 일이다.

<수레바퀴 아래서> 소담출판사, p68

 

 시대가 변했으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도식이 있다면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원래의 나를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사치스런 놀음이며, 우정 또한 성공에 저해가 된다면 끊어야 하는 것이며 오로지 믿을 바는 신격화된 우상에의 복종과 권위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우상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체로 권력이거나 돈, 지위나 명예, 인기나 몸과 같은 표면적 허상 같은 것들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자는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없고, 그에 따른 불이익도 달게 받아야 한다는 것. 사회는 그런 자를 신경 쇠약이거나 의지 박약, 정신 착란 등의 이상증후군 환자로 진단하고 판명하여 제 집으로 보내버린다는 사실이다. 한스의 죽음은 우연을 가장한 명확한 사회적 타살이다.

 아무리 겨울이 혹독하다 하더라도 꿈을 꾸는 자들의 마음은 늘 따뜻했으면 좋겠다. 인간이 타고난 바가 다 다르듯이 꿈도 사랑도, 삶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돈이나 지식, 외모만으로 한 인간을 단정짓지 말고,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으며,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이 사회가 지지하고 성원한다면 혹독하게 자신을 내던져버리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꿈을 꾸는 자는 아름답다는 말이 특정인에게만 적용되는 한낱 구호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 뽀얀 솜털 속에 시간을 기다리는 목련의 눈처럼 제 안의 숨은 능력이 누구든 우쑥우쑥 자라나서 싹을 틔우려면 이 말을 잊지 말기를.

 "아주 지쳐버리지 않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게 될 테니까." /강은미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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