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년, 소리를 말한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대한민국은 광복이후 세계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달성하면서 어느 나라보다도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어 왔지만, 요즘처럼 단기간에 사회 시스템 전체가 혼돈 상태에 빠졌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총선과 대선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집단·지역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각종 정부정책이 추진력을 상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 약사, 변호사 등 집단의 이기적인 목소리가 점점 강해져 우리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은 도외시되고 있다. 이렇듯 이익집단들이 국가여론을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언론의 여론선도 기능이 중요해 지는데 언론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노벨 경제학자 뮈르달(Myrdal)이 말하는 소프트 스테이트(soft state), 즉 연성국가가 된다.

  연성국가는 령(令)이 안서는, 소위 질서가 안 잡히는 국가를 말한다. 뮈르달은 연성국가에서는 사회가 극도의 혼란으로 내몰리고 민생과 약자들은 더 궁지에 빠지게 되어 절대로 경제발전이 안 된다고 했다. 이는 혼란의 시대에는 언론이 경제발전에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갈등과 분란이 일상화되고 있는 제주사회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아울러 제주경제의 지속성장에 필요한 안정적 소비심리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소비 의존적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는 제주경제의 경우 생산증대 못지않게 양질의 소비활성화가 장기성장기반 강화에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주체의 긍정적인 소비심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의 보도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경제주체의 소비심리는 주로 언론매체가 제공하는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언론의 역할이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의 보도는 ‘기대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자기실현성(self-fulfilling prophecy)을 지니고 있어 언론매체가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정부, 기업, 가계 등의 의사결정이 달라지는 현상, 이른바 경제심리의 쏠림현상을 조장할 수 있다. 따라서 가계의 소비가 기업의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선순환 경제구조가 확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양질의 소비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긴요하다.

  실제로 필자가 한은 제주본부에 재직할 때 도내 4개 일간지의 보도성향을 분석한 결과, 언론의 보도태도가 체감경기지표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며,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증가가 체감경기지표 부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언론의 경제적 순기능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SNS 시대가 만개하면서 진실이 가공되고 사실은 조작되는 추세다. 따라서 공공성, 공익성, 공정성을 앞세우는 언론이 정보 홍수 속에서 거짓과 진실을 가려주는 판결사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경우 괴담의 공간과 파괴력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첫째, “제주의 소리”에 바란다.

  
언론의 직분에 충실함으로써 도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매개체로, 권력과 불의를 경계하는 파수꾼으로, 도민을 계몽하며 도민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수호천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사항을 강조하고자한다

1) 경제기사에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경제문제의 본질은 선택에 있는 만큼 아무리 좋은 해결책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부정적 측면(비용)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편익) 또는 비용 중 어느 일방만을 강조하기보다 균형적 시각에 의한 접근이 중요하다. 그러나 형식적인 균형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양비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어 지지 또는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여 여론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2) 경제기사의 파급효과를 감안하여 기사취급에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검증이 안 된 연구보고서나 대중의 경제여론을 취급할 경우에는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함께 기사화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3) 경제사회 선진화는 구성원 전반의 경제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의 제고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가급적 경제기사를 쉽고 참신하게 취급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현안사항 및 경제용어 등을 다룰 때 도표 등을 이용하여 일반 독자의 이해도와 친밀감을 높이고 경제기사의 작성시 현장감과 현실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4) 양질의 정보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언론매체의 디지털화에도 더욱 매진하여 독자의 정보수요 충족 및 정보서비스의 선진화를 도모함과 아울러 경제현안에 대한 기획기사의 비중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

5) 일방적인 도민 정서 달래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도민의 불만과 울분을 잘 대변해 왔으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언론에는 지역사회 여론 선도자(opinion leader)로서 한 차원 더 높은 역할이 요구된다. 따라서 균형있는 비판능력을 동원하여 정책담당자에게는 건설적인 비전과 이의 실현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실의에 빠진 도민에게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이외에 논조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정제현안에 대한 단순한 비판보다는 지역사회의 현실적 대안 도출을 촉진‧유도하는 기사를 많이 취급하며, 경제문제를 정치적 논리로 해결하려는 도정의 관행적 접근에 대한 제동과 대안제시가 필요하다 하겠다.

  둘째, 제주 도정에 바란다.

 
도정은 언론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민간부문과의 네트워킹을 구축할 수 가 있다. 이를 통해 경제정책의 수립에서부터 민간부문의 창의성, 역동성, 다양성, 효율성을 관료조직에 접목시킴으로써, 정책추진의 능률을 높이고 소통과 포용으로 지역내 갈등의 발생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성이 넓어져 결과적으로 보다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정책목표와 현실에 나타난 정책효과의 괴리가 크다면 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도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공개행정과 도민 소통을 외면하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반드시 ‘소통의 역설’이 부메랑이 되어 도민 대다수의 항거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됨을 명심하여야 한다. 도정은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민의수렴과 정책조정의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셋째, 도민들에 바란다.

도민은 언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도정이 공정한 경쟁의 법칙을 만들고 엄정한 집행자가 되고 있는지, 언론이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지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도민은 언론에 대한 냉철한 비평자와 조언자가 되어야 하며 언론의 육성가도 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의 소리”가 어려운 언론 환경 속에서도, 도민의 슬픔과 고통을 공유하며 어떤 폭압적 권력 앞에서도 불의에 불굴하고 권력의 남용을 외면하지 않는 정론직필을 지키는 강직한 기개를 보여줄 때, 도민은 “제주의 소리”를 가슴 깊이 보듬고 서서 미래의 희망을 맞게 될 것이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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