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서쪽 해안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넓은 옥상 위에 작은 옥탑방을 올려놓은 형체다.
송악산 입구에서 완경사 길을 따라 20분 걸어 올라가면 평지가 이어지는데, 그 평지위에서 주민들은 농사도 짓고, 말도 방목한다. 분석구에서 분출된 용암이 고여서 판판한 대지를 만든 '용암연'이다.
송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알봉들의 모습이다.
송악산 분석구의 분화구인데, 온통 스코리아로 덮여있다. 경사각이 70도에 이를 정도로 매우 가파르다.
남쪽 절벽에 노출된 사층리와 현무암. 사층리는 응회환의 외륜이 침식되어 노출된 것이고, 현무암은 용암연을 이루던 암석이 깎여 노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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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의 지질기행 7> 송악산, 1타4피 복식화산

10년 쯤 전에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개봉된 적이 있다. 결혼에 회의적인 준영(감우성 역)과 결혼상대로 안정적인 남자를 찾는 연희(엄정화 역)는 필연적으로 결혼에 이를 수 없는 관계다. 결국 서로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채 각자의 생활관이 허락하는 대로 길을 가지만, 결혼이라는 울타리가 이들의 관계를 갈라놓지는 못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옥탑방에서 그들만의 살림을 이뤘고, 주변에서 주말부부라고 오해할 만큼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세상의 시각으로는 불륜이 자행되는 누추한 옥탑방일망정 이 두 사람에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완성하는 '부활의 동굴'이 되는 셈이다.

#. 옥탑방을 닮은 화산체

▲ 송악산 서쪽 해안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넓은 옥상 위에 작은 옥탑방을 올려놓은 형체다.

산방산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해안도로는 전국에서도 아름다운 도로로 손꼽힌다. 형제섬을 바라보면서 한가롭게 이 도로를 걷다보면, 대정읍 상모리에 속해있는 산이수동 마을에 이르게 된다.

산이수동 마을의 해안에는 납작한 산체 중심에 봉우리 하나가 얹혀있는 오름이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넓은 단층집 옥상에 작은 옥탑방을 가져다 놓은 형상이다. 예전에는 소나무가 많아서 '솔오름'이라 불렀는데, 최근에는 이 이름을 한자로 차용해서 '송악산'이라 부른다.

민가에서는 이 오름을 '절울이 오름'이라고도 부른다. '절'이 제주어로 '파도'를 뜻하는데, 파도가 우는 오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 기록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오름을 가리켜 "대정현 남쪽 15리에 있다. 세속에서는 '저별리(貯別利)'라 부른다. 산의 동쪽, 서쪽, 남쪽이 바다와 닿아서 석벽이 둘러있고, 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직경이 백여 보가 된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저별리'는 '절울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송악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푸른 파도가 끊임없이 절벽에 부딪쳐 깎아내는 소리를 들으면 '절울이'라는 이름을 실감할 수 있다.

▲ 송악산 입구에서 완경사 길을 따라 20분 걸어 올라가면 평지가 이어지는데, 그 평지위에서 주민들은 농사도 짓고, 말도 방목한다. 분석구에서 분출된 용암이 고여서 판판한 대지를 만든 '용암연'이다.

송악산 입구에서 완경사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걷노라면, 평지가 길게 이어진다. 그 평지위에서 주민들은 농사도 짓고, 말도 방목하며, 또 관광객들에게 음식도 판다. 좁게 이어지는 평지가 끝나갈 즈음에, 망원경 시설을 갖춘 전망대가 있다. 그리고 전망대를 지나면 무덤모양을 한 조그마한 봉우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 송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알봉들의 모습이다.

 

▲ 송악산 분석구의 분화구인데, 온통 스코리아로 덮여있다. 경사각이 70도에 이를 정도로 매우 가파르다.

#. 이 산을 다녀간 사람들

 

청음 김상헌은 1601년 순무어사의 명을 받고 제주에 부임하였다가 송악산의 독특한 형상을 구경하고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산은 멀리 뻗는 산세가 없고 바다에서 툭 튀어 일어서 있는데, 둘레가 겨우 몇 십리이다. 울멍줄멍하고 울퉁불퉁한데 동남쪽 한 구석은 평평하고 넓은 것이 마치 제단과 같다. 몇 백  명이 앉을 만한데 그 아래는 높은 절벽이다. 몇 만 길도 더 될 것이다. 우뚝하게 서 있어 바닥을 볼 수도 없다.'-<남사록>에서

제단같이 평평하고 넓은 곳은 용암이 흐르다 고여서 그 표면이 판판하게 된 용암연(lava pond)이고, 그 인근에 울퉁불퉁한 것들은 분석구(cynder cone)와 소분석구복합체(cynder conelet complex)다. 그리고 그 아래 우뚝하게 서있는 절벽은 응회환의 외륜이 파도의 침식으로 깎인 것이다. 최고 높이가 해발 104미터에 불과한 작은 화산임에도 송악산은 여러 개의 화산단위로 구분되는 복잡한 구조를 띤다. 이 산이 지질학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는 이유다

지구가 마지막 빙하기를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는 약 1만 2천 년 전부터다. 빙하기에는 지구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최고 120미터 정도 아래에 있었다. 송악산을 만든 화산활동이 얕은 물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송악산에서 나이가 1만 년 이내라고 생각한다. 1만 년 이전에는 이 일대가 육지였기 때문이다.

#. 다채로운 구조가 만들어진 과정

송악산이 다체로운 구조를 띠는 이유는 마그마의 분출이 진행되는 도중에 화구 주변의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추정한 송악산 화산체의 형성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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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악산 응회환 형성 : 당시 이 일대는 얕은 바다였는데, 지하에서 솟아오른 마그마가 바닷물과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화산재와 수증기, 돌조각 등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분출된 화산쇄설물이 화구 주변에 원형으로 쌓여, 응회환을 형성했다. 이 응회환은 외륜의 두께가 약 85m, 분화구의 지름이 약 800m에 달하고, 외측 지름이 4km에 달하는 규모였다.

2. 수성화산활동의 중단 : 분화구 주변이 응회환으로 둘러싸이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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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해수가 분화구 안쪽으로 유입되지 못했고, 마그마가 물과 직접 접하지 못하게 되어 수성화산활동은 끝이 났다.

3. 분석구 형성 : 응회환의 분화구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되던 중 화구에 차있던 가스가 폭발하면서 새로운 분화구가 만들어졌다. 이 때 분출한 화산쇄설물은 분화구 주변에 쌓였다. 송악산 정상의 분화구 주변에 쌓인 붉은색 스코리아(제주 사람들이 ‘송이’라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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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는 붉은색 자갈)도 이때 분출되었다.

4. 용암연 형성 : 화구에 가스가 제거됨에 따라 화산활동은 용암의 분출로 이어졌다. 이때 분출된 용암들이 응회환과 분석구 사이를 채워, 해발 35~50m 높이에 용암연을 형성했다. 분석구의 북쪽 사면에는 암석들이 널리 깔려 있는데, 이는 용암이 분석구의 분화구에서 아래로 흘러나왔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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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분석구 복합체 형성 : 용암연이 형성된 이후, 그 위에 수 미터 높이의 작은 분석구들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을 소분석구 복합체라고 부른다. 송악산 화산체에는 무덤 모양을 하고 있는 소분석구들이 20여개가 있는데, 소분석구들이 실제로 마그마 분출로 형성된 것인지, 내부에서 가열된 지하수가 폭발하여 형성된 것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다.

6. 절벽 노출 : 응회환은 북쪽을 제외한 외륜이 파도의 침식을 심하게 받아 깎여나갔다. 이 과정에서 해안과 접한 곳에는 가파른 절벽이 형성되었다. 특정 부분에서는 응암연의 하부가 노출되기도 했다.

송악산 분석구의 정상부에는 둘레 500m 정도에 깊이 약 80m에 이르는 분화구가 있는데, 그 경사각이 70도에 이르러 매우 가파르다. 분화구가 보통 것보다 크고 깊은 것으로 보아, 이 분화구가 만들어질 당시 폭발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분화구 안에는 온통 붉은색 스코리아로 덮여 있다.

송악산의 서쪽과 남쪽 해안의 절벽은 파도에 깎여 그 내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일부 구간에서는 현무암이 응회암 사층리를 피복하는 지질구조가 관찰되기도 한다. 응회암의 사층리는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응회환의 외륜이고, 현무암은 용암연을 만들었던 용암이 굳어진 것이다.

#. 아, 외설적 상상 끝이 없네  

▲ 남쪽 절벽에 노출된 사층리와 현무암. 사층리는 응회환의 외륜이 침식되어 노출된 것이고, 현무암은 용암연을 이루던 암석이 깎여 노출된 것이다.

송악산 분석구는 판판한 용암정 위에 얹어진 모양인데,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마치 옥상에 옥탑방이 하나 추가된 것 같다. 그런데 옥탑방에서 최후에 점액질 분비까지 있었으니......, 송악산 정상을 바라보노라니, 영화의 줄거리까지 떠올라 외설적 상상이 끊이지 않는다.

송악산은 휴지기 없이 1회의 분화활동에 의해 형성된 화산이므로 단성화산에 해당한다. 그리고 마그마가 분출될 당시 화구의 환경이 바뀌면서 응회환과 분석구가 연속적으로 만들어져 복수의 화산이 존재하므로 복식 화산에 해당한다.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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