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문학카페 > 2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꼭 한 번 보자던 친구를 어느 식당에서 만났다. 그녀에게는 15년 만의 외출이다. 교통사고로 인해 척추가 손상된 남편을 두고 밖으로 나올 수 없었던 그녀에게 천금 같은 몇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목 아래로는 그 어떤 부위도 사용할 수 없었던 남편이 이젠 젓가락 같은 보조기를 활용하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시청하는 등 소일거리가 가능해지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활동보조원' 제도가 생기면서 활동보조원의 기동력을 이용해 은행 볼 일이나 동사무소 가는 일, 병원 약 타러 가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만 15년, 날수로는 5,375일을 감옥처럼 지내면서도 아이들 숙제 봐주고, 책 읽어주고, 남편 수발들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하루 서너 시간 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려 애썼다는 친구.

"나, 우리 경호의 '고3 수능기' 써서 '여성시대' 보냈더니 사연이 뽑혀서 로봇청소기 받았어."라며 자랑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넘어 경외감마저 느꼈다. '사람이 이렇게 위대할 수 있구나!' 그 생각 끝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떠올랐다.

1951년 초, 스탈린 치하의 강제수용소 생활 8년째를 맞이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정확히 다섯 시면 잠에서 깨어난다. 기상에서 점호까지 한 시간 반은 그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다.

그 시간에 그는 낡은 모자 안감으로 벙어리장갑을 만든다든가, 보급계 창고로 달려가서 청소를 해준다든가, 식기를 설거지통으로 밀어 넣어주는 일을 하면서 약간의 돈벌이를 한다. 수용소에서의 돈벌이는 그런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설령 돈이 안 되더라도 따뜻한 국물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지기에 그는 한결같이 새벽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의료계에 가서 몸 진단을 받고 하루쯤 병가를 내볼까 해도 여의치가 않다. 여느 때처럼 수용소에서의 강제노동을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양배추 국물에 빵 한 조각이 배급되는 아침식사, 빵 한 쪽을 떼어내 이불 밑에 감춰두고 혹한의 작업 현장으로 투입되는 하루, 슈호프가 속한 104반에게 오늘 할당된 작업은 시멘트를 이기고 벽돌을 쌓는 등 두 달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던 발전소의 벽과 지붕을 만드는 일이다. 점심을 먹기 위한 짧은 휴식 시간은 감미롭기만 하다.

작업장의 요리사를 속여 2인분의 음식을 타는 데 성공, 벽돌 쌓기도 진척이 빨랐다. 아직 이겨진 몰타르가 남았는데, 하루 일과를 마쳐야 할 시간이다. "정말 하루가 쥐꼬리보다도 짧구먼. 방금 작업을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으니!" 이렇게 투덜거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몇 번의 점호와 신체검사를 거쳐 무사히 저녁 식사를 하러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슈호프에게는 또 하나의 행운이 주어졌다. 줄칼을 장갑 속에 감추고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줄칼을 이용해 누군가의 방한화를 고쳐주거나 장갑을 꿰매줘서 담배 한 개비를 얻을 수 있다는 기쁨에 고단한 하루마저 거뜬하다.

불행 중 행복한 하루는 그렇게 마감되었다. 슈호프에게 이런 날들은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 만 10년을 꼬박 채우고, 사흘이나 더 가산된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의 우수리가 붙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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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국물이 목구멍을 지나 전신에 퍼지자, 오장육부가 국물을 반기며 요동을 친다. 살 것 같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슈호프는 무엇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도, 기나긴 하루에 대해서도, 지금 그의 머리 속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자는 생각뿐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어문각)’ p.183.   

살다보면 누구나 예기치 않은 삶의 파편으로 마치 수용소의 생활과 같은 극한의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 또한 '조국에 대한 배신'이 죄명이었다.

그와 함께 수용된 많은 죄수들은 독일의 포로가 되었다는 이유로, 스탈린 체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영국 함선에 올라탔다는 이유로 10년, 25년형을 언도받았다. 잠시 낮잠을 자는 바람에 형기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일이 그렇게 돼버린 수용소에서의 삶. 그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용케 이겨내는 방법은 사소한 일상에서 기쁨을 창조해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 15년 동안 아무 소리도 못하고 살았어. 그때 왜 그냥 내버려두지 날 살려놔서 너도 고생, 나도 고생이냐는 경호 아빠 말을 들을 때마다 저 사람 오죽 고통스러우면 저럴까 싶어서 그냥 '예예'만 하면서 그러고 살아."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밥에 손도 못 대고 멍하니 있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식겠다, 빨리 먹자."였다. 내 앞에 스승을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구나 싶어 부끄러웠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진부한 말 속에 알곡처럼 숨은 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생각하면 우리 모두의 일상은 마치 형기를 치르는 듯 질곡의 터널이다. 생계에 갇혀서, 병에 갇혀서, 공부에 갇혀서,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 그 가운데 기쁨이 있다면 따뜻한 국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닭 볏 같은 성질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있다는 것, 다달이 조금이나마 돈벌이가 있다는 것, 살얼음을 깨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알 이즈 웰(All is well),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알 이즈 웰', 얼마 전 보았던 '세 얼간이'라는 영화의 명대사다. 반복되는 현실의 삶에 몸과 마음이 결박된 고통을 느낀다면 이 말을 되뇌며 자신을 추슬렀으면 한다. 알 이즈 웰, 알 이즈 웰……. 저만치 봄이 오고 있다. /강은미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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