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혁의 중국횡단기> ③ 칭다오에서 아침 산책

날이 밝은 것 같은데 창문에 두꺼운 커튼이 처져 있어서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고 방 안은 어두웠다. 다른 사람들, 어제 밤늦게 들어온 서양인 두 명과 중국 청년 한 명은 아직 곤히 자고 있는데, 일찍 잠을 청한 최군은 벌써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나도 일어나 화장실에서 어제 마신 맥주로 잔뜩 부풀어 오른 아랫배를 진정시키고 얼굴을 씻고 나오니 최 군은 어제와 달리 깨끗이 줄을 세운 검정색 바지에 어제 신었던 등산화 대신에 광택을 낸 검정색 구두를 신고 방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며 행운을 빌었다.

“Good luck to you.”

8시가 넘어서자 나도 짐을 챙기고 나가야 했다. 꺼내놓은 짐들을 배낭에 다시 정리하여 넣고, 데스크로 가서 방 열쇠를 반납한 뒤 보증금을 돌려받고 밖으로 나왔다.

▲ 칭따오의 공원에서 만난 아침 표정들 ⓒ양기혁

 

▲ 칭따오의 공원에서 만난 아침 표정들 ⓒ양기혁

아침 공기가 약간 서늘하면서 상쾌한 느낌이다. 공원에는 동네사람들이 그룹을 지어 운동하고 있었다. 몇 명의 중년여인들은 제기 같은것을 발로 차서 서로 주고받으며 운동하고있고, 몇몇 사람들은 배드민턴 라켓처럼 생긴 채 위에 정구공만 한 작은 공을 올려놓고, 공을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율동을 연습하고, 한쪽에선 은빛이 번쩍이는 칼을 휘두르며 쿵푸와 같은 동작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 천천히 공원 아래로 내려갔다. 시간여유가 있어서 시내를 좀 걸으며 아침 풍경을 볼 생각이었다. 거리엔 차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도로에 가득 들어찬 차들은 속도를 내지 못한 채 거북이 걸음이고, 경적소리만 요란하게 여기저기서 울려댔다.

▲ 독일 점령 당시 지어진 기독교회 건물 전경 ⓒ양기혁

 

▲ 독일 점령 당시 지어진 기독교회 건물 전경 ⓒ양기혁

교차로에 신호등이 켜져 있지만 대체로 사람들이나 차들이나 신호등을 거의 무시하다시피 하고, 주위에 서 있는 공안들도 거기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거나 하지 않고 방관하는 듯 보였다. 빨간 신호등에서 사람들은 달려오는 차를 피하여 무사히 길을 건너가면 되었고, 횡단보도에 녹색신호등이 켜졌어도 차들은 지나가는 행인을 피하여 지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얼마 동안 길을 따라 걸어가다 길 건너편 언덕 위에 매우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교회 건물을 발견했는데, 가이드북에도 칭따오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소개된, 역시 독일 조차시에 지어진 기독교회 건물이었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가니 입구에 입장료 5원이라고 쓴 팻말이 붙여져 있으나 표를 팔거나 돈을 받는 사람도 없고 들어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 본 천주교당엔 웨딩촬영으로 사람들이 성당 앞 광장을 메우고 있었는데 여기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 있는 교회가 쓸쓸한 느낌을 준다.

다시 교회를 내려와 걷는 칭따오 시내 거리가 어제 배에서 내려 걸었던 여객터미널 주변의 삭막하고 스산하게 느껴지던 도시 풍경과 달리 오래된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과 유럽풍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어우러져 칭따오의 진면목을 보여주듯이 정돈되고 아늑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같았다.

▲ 칭다오의 아침, 한적한 거리 ⓒ양기혁

 

▲ 칭다오의 아침, 한적한 거리 ⓒ양기혁

1840년 아편전쟁의 결과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여 주는 것을 시작으로 19세기 말 중국대륙에 대한 서구열강들의 침탈이 가속화하고 있었는데 1894년 청일전쟁(갑오중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함에 따라 청조의 허약한 모습을 그대로 내보이면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유럽국가들과 일본 등이 수박 쪼개듯 대륙을 분할하여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두려고 하였다.

1897년 산동지역에서 독일인 선교사 두 명이 피살된 것을 기화로 독일은 칭다오를 점령해 그 안쪽의 교주만(膠州灣)을 조차지로 삼고, 산동반도 전체를 영향력하에 둘 수 있게 되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철수할 때까지 20여 년간 특히 칭다오 지역을 중심으로 총독관저로 쓰였던 영빈관과 천주교, 기독교회 같은 건물들, 지금도 그 명성을 떨치는 칭다오 맥주 등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 칭다오의 해변 풍경 ⓒ양기혁

다시 얼마를 걸어가자 바다가 보이는 해변도로가 나왔다. 쌀쌀한 아침 바람이 부는 해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멀리 1차 세계댜전 중 독일이 칭다오에서 철수하면서 폭파한 것을 재건했다는 잔교가 보였다. 해수욕장엔 남자들 몇 명이 웃통을 벗어젖히고 운동을 하고 있고, 바닷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노자는 어쩌면, 필자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