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인간 내면의 잔악성 파헤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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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의 문학카페> 3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국제사회의 혼란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 연일 보도되는 ‘시리아 사태’는 충격을 넘어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정권 퇴진 운동으로 시작된 사태가 이미 7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하고, 정부군을 피해 레바논으로 탈출하는 양민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니 그 피해는 수천을 넘어갈 것 같다.

어찌하여 이런 사태까지 이르렀을까. 사태의 원인을 분석해보자면 단순히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과 그로 인한 희생으로만 해석돼서는 안 될 것이다. 자국 내의 대립 모순과 함께 국제권력 간의 상충된 이해관계가 이 사태를 장기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시리아 사태의 양상은 그 이전 역사에서 경험했던 악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답답하고 무력감마저 든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시리아 사태를 보면서 “전쟁이 아닌 학살”이라고 규정했듯이 명분 없는 인간 대학살은 인류 역사 이래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인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근현대사 내에서만 보더라도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보스니아 인종 학살, 모택동 정권 하에서의 대학살 등 자국 내에서의 특정 인종과 이념, 종교, 부족 등을 축출해내는 학살의 자행은 역사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시리아 사태는 얼마 전의 레바논 사태를 재현하는 양상이라고도 하니,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이 과연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마치 붉은 칠을 하고 짐승의 목을 베어 피를 뿌리며 춤추는 원시부족의 양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이성은 과연 믿을만한가.

인간성의 최악을 그린 고전 중에는 「파리대왕」이 있다.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이 1954년에 쓴 장편소설로, 1983년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파리대왕’이라는 소설 제목은 히브리어의 ‘베엘제버브’를 번역한 것으로 ‘곤충의 왕’이라 직역할 수 있고,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하자면 ‘악마’를 뜻한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아이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그들을 보호해 줄 어른은 없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지도자가 되어 이들을 통솔해야 하고, 서로가 힘을 합쳐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래서 다수결이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랠프라는 아이를 지도자로 선출했다.

소라를 든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누군가는 구조를 위한 봉화를 올리고, 누군가는 먹을거리를 위해 사냥을 하기도 한다. 얼마간은 규칙이 잘 이행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뱀을 보았다며 무서워하는 아이가 생기고, 산에서 짐승을 보았다는 아이도 있었다.

두려움과 공포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급기야 사냥을 주장하는 잭이 무리를 이끌고 집단을 이탈하고 말았다. 힘을 모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도 구조가 될지 말지 불안한 지경에 무리의 분열은 집단 전체의 힘을 약화시키고 만다.

마침내 서로 적이 되어 싸움을 하고, 급기야는 같은 무리였던 친구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미 사람이 한 마리의 짐승일 따름이다. “멧돼지를 죽여라. 목을 따라. 때려잡아라.” 끊임없이 외치는 그들의 함성, 그 속엔 오로지 때려죽였다는 자긍심과 선망, 분노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성은 전무한 상태가 돼버렸다. 사냥을 할 줄 아는 것은 대장의 능력이며, 대장의 말을 안 듣는 경우는 죽음도 불사해야 하고, 한 명의 반역자도 남지 않을 때까지 때려잡는 것뿐. 결국 혼자 남은 랠프마저 멧돼지를 잡듯 산에 불을 내어 구렁 속으로 집어넣는다. 마지막까지 투항하며 도망가다 도착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 누군가 내려다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구조를 하러 온 선양함 선장인 해군 장교였다.

 작품 속 책갈피...

   
 
   
작품 속 책갈피... 랠프는 몸부림치며 울었다. 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그는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온몸을 비트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맡기고 그는 울었다. 섬은 불길에 싸여 엉망이 되고 검은 연기 아래서 그의 울음소리는 높아져갔다. 슬픔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나는 이렇게 소름이 돋는 책을 본 적이 없다. 간추리다 보니 그 세세한 면을 들출 수 없어 아쉽지만 한동안 참혹하게 앉아 인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던 책이 「파리대왕」이다. 만 5세부터 12세까지 아이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아동이 읽는 동화 수준으로 보면 큰 오산이다.

인간 역사의 가장 잔악한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작가의 피력이 있었듯이 ‘내면화된 문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의 견고성과 효용성을 가지느냐’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주인공은 상징을 품은 인물들이다. 지도자로 선출된 랠프는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인간, 사냥만을 주장한 잭은 권력 지향적이고 야만적인 인간, 랠프의 동지였던 ‘안경을 쓴 돼지’라는 별명의 아이는 조목조목 불의를 지적하는 지성인, 잭의 심복인 로저는 독재자의 하수인 등.

이들은 추락한 비행기에서 길을 잃은 한 무리였지만 ‘함께 구조되어야 한다’는 일념에 합의하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무참한 난동과 학살을 저지르다 두 명의 친구를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성은 없고, 분노만 남은 정국! 이것이 과연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실제로 「파리대왕」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작가 윌리엄 골딩이 원자탄 투하라는 참혹한 현장을 본 인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 속에서 창작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생명의 살상과 경제적 파괴, 세계를 냉전의 대립 구도로 만들어버린 전쟁이 어느 한 시기에 있었던 잔학상은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전쟁으로 인한 아픔은 여전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총성은 여전히 울리고 있으니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인류를 구조할 ‘선양함’은 있기나 한 것일까. 봄은 왔으나 봄의 길목에는 붉은 피가 선연하다. /강은미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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