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딸에서 야쿠자 아내, 짝퉁장사까지...기구한 사연
부잣집 딸에서 야쿠자 아내, 짝퉁장사까지...기구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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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쯔루하시 짝퉁 아줌마 경진이

(누르시면 1편으로 이동합니다.) 익숙한 솜씨로 일할 수 있었다. 걱정이 하나 있다. 뉴간(入管, 入國管理廳 입국관리청)이 술집엘 쳐들어오는 것이다. 싹 잡아 들어가 검사를 한다. 결혼비자는 괜찮치만 학생비자는 다음 비자를 받을때 갱신이 되질 않는 것이다. 또 비자가 없는 여자들도 있어서 강제출국 시킨다. 어제는 오른편 가게에 쳐들어와서 다 잡아갔아 가드니, 오늘은 왼편 가게에 쳐들어와서 다 잡아 갔단다. 언제 우리 가게로 쳐들어 올런지 모르는 일이다. 남자손님 옆에서 않아 있지만, 눈과 마음은 가게 입구에 가있는다.

가게를 하루 쉬었다. 그런데 경진이가 쉬는 날, 뉴간이 쳐들어 와서, 싹 잡아가고 말았다. 결혼비자만 살아남고 불법체류는 입국관리청 감옥에 넣어져, 강제송환을 시켜 돌아갔다. 학생비자를 받은 아가씨도 몇명 있었지만, 다음 비자 갱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안절부절한다.

마마(가게 주인)는 다행히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무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는 이유로 200만엔 벌금형이었다. 한번 친 가게는 당분간 치지 않는다는 소문에 그나마 당분간 마음의 걱정을 녹이게 해 주는 것이다.

도항도 잘 되고, 또 도항 해주겠다는 손님도 꽤나 있다. 뉴간의 걱정만 없다면, 일은 아주 순조로운 편이었다.

공부는 별로 흥미도 없고 힘들었지만, 일본어를 배워야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래도 열심히 학교에는 갔다. 일본어학교는 출석율이라는 큰 굴레가 목에 걸려 있다. 출석율이 나쁘면 다음번 비자 갱신때 문제가 생겨 새 비자 받기가 어렵다. 최소한도로 이 출석율을 넘어가지 않으면 않된다. 아침 첫시간 수업이 제일 문제였다. 어제 밤에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 9시까지 학교 교실에 가는 일이 힘든 일이었다. 학교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술이 취해도 술을 마시질 않았어도, 밤이면 밤마다 한국에 두고온 딸 얼굴 모습에 베게를 적신다. 술 마시지 않는 날이 더 괴로웠다. 차라리 술 마시고 무엇인가를 잊고 잠 잘수 있는 날이 더 편했다.

많은 남자중에서도 남자같은 남자도 생겼다. 이 남자는 일본 남자이며 결혼한 적도 있고 자식도 있다. 그러나 자식은 전 부인이 데리고 가버려서 홀몸과 같았다. 더욱더 이 남자 호적에는 전 부인이 호적에도 올라간 적이 없고 또 자식도 남자 호적에는 흔적도 없다. 호적상으로는 총각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좋아서 지내다가 애가 태어나고, 무슨 이유인지 여자가 애를 데리고 나가버린 그런 남자였다.

그런데 그 남자도 흠이 있었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것이다. 오랬동안 근무한 직장도 없고 기술도 없다. 부동산 관계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야쿠자인지 야쿠자의 하수인인지 그런 일을 하는 그런 남자였다. 돈은 잘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버블시대였다. 야쿠자들이 부동산 관계 일을 많이 했다. 하수인이 필요로 한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달라서, 땅 주인과 집 주인이 다른 사람인 땅이 많다. 땅 임자는 자기 땅으로 만들어 자유롭게 땅을 팔거나 이용하고 싶다. 그럴려면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집 임자가 집을 포기하고 나가주어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려워 돈으로 회유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협박하기도 해야된다. 그 협박의 일을 야쿠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말을 잘 들어주지 않으면, 야쿠자들을 집 주변에 풀어서 으시시한 분위기를 만들어 회유의 말을 듣게 하기도 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집에 시비를 걸어 말을 듣게하거나, 오물을 집안에 풀어 놓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경찰이 있다. 그런데 야쿠자들이란 경찰과 숨박꼭질을 할 만큼, 도망 갈 길도 만들면서 일을 한다. 심증은 있어도 물증은 없게 만들어 가면서 일을 한다.

경진이의 남자는 그 야쿠자도 못 되는, 그 밑에서 일을 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래도 버블시대라 자기 몫으로 떨어지는 돈은 꽤 된 모양이다. 그러니까 비싼 간고꾸 그라브(韓國 Club)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다.

가장 노릇 제대로 못할 것 같은 남자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총각같은 그 남자의 호적이 좋았다. 호적에 올리기로 했다. 명실상부한 일본인 남자의 부인이 되기에 비자 문제는 싹 사라지는 것이다.

호적을 올려 일본남자의 부인이 되었다. 이젠 일본 법으로 보호를 받을수 있는 일본남자의 여자가 된 것이다. 그래도 머리속에는 제주도에 있는 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1년에 2번씩은 꼭 제주도를 갔다. 딸이 자라는 모습을 본인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또 남편이라고 있으니, 이젠 제주도에 있는 어머니를 일본으로 초청할 수도 있다. 하고 있는 일은 술집 일이지만, 이제 나이 30을 넘어 40을 바라보는 딸에게 어머니가 무어라 말을 할까. 떳떳하게 어머니와 딸을 일본으로 오게 해서, 새 사위 새 아빠를 선보이기도 했다. 행복했다.

일본 남자의 부인이 되고 보니, 남의 가게 종업원 하는 것도 싫었다. 나도 이젠 '사장님' 소리를 듣고 싶다. 본인이 술집을 경영하고 싶어진 것이다. 무엇이 겁나리까. 나도 이젠 일본 남자의 여라라오. 술장사가 잘 되었다. 15평 남짓한 가게를 했는데, 1년만에 30평 가게로 이전해 크게 오픈 세리모니를 했다. 남자는 어디가서 노름(도박)이나 하지 않는다면 내 버는 돈으로 먹여살릴 수 있다. 몇년간 그렇게 잘 먹고 잘 쓰고 잘 살았다.

여자들을 손님으로 모시는 '호스트빠' 라는 술집도 잘 다녔다. 재미있었다. 반질반질한 기생오래비들을 마음대로 주물르는 재미도 좋았다. 호스트 한녀석 키워도 보았다. 돈주며 뒤를 돌봐주어 내 마음대로 데리고 노는 것이다. 잘 나갔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툭 소리가 나온다. 가게 가득 차던 손님이, 반으로 비더니만 조금 더 가더니 1/4로 빈다. 아가씨들 월급주기도 헉헉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그것뿐인가 집세는 어떻고. 버블(그픔)이 꺼지고 있는 것이다. 때는 2000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 역시 돈이 없다. 그저 마누라에게 용돈 타쓰기에 익숙한 사람이다. 잘 경영해온 가게를 작은 가게로 줄였다. 큰 가게를 하게 되면 그만한 아가씨 숫자도 필요 하고 집세도 비싸다. 단골손님 숫자는 그런대로 잡고 있으니 가게를 작게 하면 어느정도 유지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손님은 더 줄고 있는 것이다.

가게를 접을 까도 생각했지만, 가게를 접으면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잘 나갈때 모아둔 돈도 없다. 그저 오늘 생긴 돈은 내일도 모레도 생길 것으로 생각해서 잘 먹고 잘 쓴 그 차례가 지금 오고 있는 것이다.

이젠 술집 종류를 다른 가게로 했다. 지금까지는 그라브(Club)를 했지만, 스나크(Snack)로 하기로 했다. 스낙크도 술집은 술집이지만, 원탁 테이블에 손님들이 둘러앉아 아가씨가 남자옆에 앉지 않아도 되는 그런 술집이다. 아가씨 월급이 없는 분, 할만했지만 매상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는다.

재미있게 잘 드나들던 호스트빠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호스트빠는 접업지만 다른 돈은 접을수가 없었다. 돈 잘 쓰는 것이 익숙해 지고 익숙해진 것이다. 스낙크에서 나오는 돈으로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 마져 않하면 먹고 살길이 막막한 것이다. 남편이란 놈은 이젠 아예 집에 죽치고 박아졌고, 빠찡꼬 간다며 돈 달라고 성화이다. 그 성화마져 없으면 좋으련만.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한국에서 왠만한 대학은 커녕 4년제 대학도 어렵다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돌보지 못한 결과가 공부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친정 아버지 어머니는 아직도 나이는 들었지만 건강하다. 딸을 일본으로 부르기로 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어학 연수부터 시키기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곧 일본으로 불러 일본어학교에 가게 했다. 일본어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아뭇소리 없이 잘 다녀준다. 대학을 들어갔다. 대학엘 들어갔더니, 나가서 혼자서 산다고 성화를 피웠다. 엄마가 다른 남자와 사는 꼴이 영 못마땅 한 것이다.

술장사는 접기로 했다. 나이도 50살이 넘으니 이젠 내 얼굴봐서 와주는 사람도 없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이 놈팽이 노릇은 하지만 마누라에게 손은 들지 않는다. 하긴 이날까지 내가 저놈을 먹여 살렸는데, 나에게 그러면 너가 갈 곳이라고는 있기냐 하겠냐?

술장사를 접고 나니, 먹고 살 길이 없다. 쯔루하시에 가게를 얻기로 했다. 짝퉁장사가 걸리지만 않으면 돈벌이가 괜찮단다. 저금해 논 돈도 없다. 고리대금으로 개인에게 빌렸다. 남편을 정면에 내세워, 사장을 만들었다. 가게에도 곧잘 나와서 물건도 팔고, 여러 잡일도 해준다. 장사는 좋았다. 물건은 중국에서 들어온다. 중국 廣州에 전문업자(조선족)이 있어서 아직까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집도 쯔루하시근처에 이사를 하고, 창고겸 주택으로 쓰고 있었다. 게 정면은 일반 가방을 또 한국에서 온 옷도 걸어놓고 있다. 짝퉁물건은 전부 창고겸 주택에 있다. 얼굴이 익숙한 손님만 왔을때만 가게 뒤로 데려가 물건을 가지고 와서 건내주고, 돈을 받는다.

그런데 경찰에 걸렸다. 여자 형사를 얼굴 익숙한 손님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장인 남편이 경찰에 들어갔다. 징역1년에 집행유예3년을 받았다. 이젠 남편은 가게에 나오지를 않는다. 만약 나와서 걸리는 날에는 실형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가게 명의도 남편에서 경진이 이름으로 바꾸었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딸은 한국에 가서 살겠다며 한국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취직해서 다닌다고는 하지만 그리 시원치 못한 직장인 것 같다.

오늘도 가게에 나가는 것이 겁나다. 그러나 가게에 나가서 물건 하나라도 팔지 않으면 오늘 먹을것이 없다. 어제는 저쪽 가게에 경찰이, 오늘은 이쪽 가게에 경찰이 왔다. 그러면 내일은 우리 가게인가. 이런 겁을 매일매일 먹으면서 오늘도 가게문을 열지만 저녁때 가게문을 닫으면 힘이 쭉 빠진다.

내일은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하게 오늘도 힘든 하루를 살고 있으며, 일이 끝난후 한잔 마시는 술이 그나마 좋다.

경진이가 부러워하는 언니가 있다. 그 언니도 제주도 출신. 경진이보다 5살쯤 위이다. 같은 제주시 출신이라고 나를 친동생처럼 예뻐해 주는 언니이다. 사실 쯔루하시에 가게는 내는데도 그 언니의 도움이 컸다. 개인에게서 돈을 빌리는데 언니가 선뜻 보증을 서 주었기에 가게를 낼 수 있었다. 만약 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언니. 그 언니도 팔자가 세서, 제주도에서 아들 하나 낳고서 일본에 왔다. 그 언니 남편 역시 일본남자로서 남편들은 둘 다 닮은 꼴이다. 다름이 있다면 경진이 남편이 나이가 좀 젊다고 할까.

일본에서도 경진이처럼 술장사를 했다. 술 세계에서는 경진이가 더 인기가 좋았고, 매상도 좋았으며, 가게 매출도 경진이가 훨씬 위였다. 언니 역시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저씨 역시 직업이 없다.

그런데 지금 아주 잘 산다. 언니 아들은 일본 남편 아들로 입적시켜서 어릴 때 일본으로 데리고 왔다. 일본에서 대학까지 졸업해서 지금 일본 회사에 다니며, 일본여자와 결혼해서 아들도 둘씩이나 있다. 언니는 일찍부터 젊은 할머니가 된 셈이다. 언니는 손자들이 집에 오면 용돈을 두둑하게 손에 넣어준다. 용돈 두둑히 주는 할머니, 시어머니를 싫다는 손자 없고 며느리 없다.

경진이와 다름이 있다면, 경진이가 잘 나갈때는 호스트빠를 다니면서 돈을 잘 썼다기보다 탕진했다. 언니는 나이는 몇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돈을 쓰는 데는 경진의 어머니와 같은 타입으로, 피가 나게 돈을 썼다. 호스트빠 같은 것은 이름도 모를 정도로 알뜰하게 돈을 모았다. 모은 돈으로 건물을 하나 장만했다.

처음에는 자기 돈이 모자라 빚도 지고 어려워서 허우적댔지만, 지금은 그때 장만한 건물에서 집세가 들어온다. 매월 월급처럼 꼬박꼬박 집세가 들어오는 것이다.

언니는 아저씨와 같이 유럽여행을 갔다 왔다며 자랑을 하며 선물도 사서 왔다. 이런 언니를 옆 눈으로 보면서, 오늘도 겁 먹으면서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신재경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세이비(成美)대학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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