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인권을 유린한 공권력을 '격려'한다? 제주도민에 최소한의 예 먼저 갖춰라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을 필두로 국방부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 차관들과 해군참모차장 등 정부 각료 20여명이 오늘(16일) 제주에 온다. 대통령이 내려오는 것도 아닌데 정부 주요부처 차관들이 한꺼번에 제주에 내려오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평상시 정부 정책 결정권자들이 온다면 누구 가릴 것 없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정부 각료들이 온다는데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제주 방문 이유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강정이 이유였다. 그곳에 들어설 제주해군기지 때문이다.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찬반갈등이 이유다. 놀라운 건, 반목하는 여론을 수렴하고 정부정책에 무엇이 잘못이 있는지 경청하러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걱정되는 건, 찬성과 반대가 대립하는 강정현장에서 어떻게 풀어나가는 게 정부와 국민모두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지 지혜를 짜러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 지난 2월22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4주년 기념 특별기자회견. 이 대통령은 이날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노무현 전임 정부의 말바꾸기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강행의 출발신호였다. ⓒ사진출처=청와대 갤러리
  # 강정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공권력을 격려한다? 스스로 조롱당할 일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해 경찰과 해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오는 게 진짜 목적으로 알려진다. 제주도청과 지방경찰청, 해군제주방어사령부, 서귀포해양경찰서, 해군제주기지사업단을 방문해 해군기지 추진상황을 보고 받고 격려할 예정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4.11총선에 앞서 여야 찬반논란이 확연한 그 현장에 정부 각료들이 대거 출동하는 의도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강정마을에 동원돼 연일 고생하는 경찰과 전·의경, 그리고 해군장병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땐가. 지금 이 순간 강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뻔히 아는 그들이, 아무리 해군기지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강정의 인권을 유린하고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잘못된 공권력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온다는 건 누가 봐도 정부 각료로서 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강정마을에 화약을 설치하고 발파를 시작한 지난 7일 이후 강정은 아수라장이 됐다. 마을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방패막을 친 경찰, 전의경과 연일 몸싸움을 벌이다 연행되는 가슴 아픈 현장이다. 구럼비 발파를 막기 위해 해군과 시공업체가 친 펜스를 넘어가려다 하루에도 수 십명이 경찰에 붙잡혀 끌려가는 인권유린 현장이다. 강정에선 지금 조상대대로 내려온 삶의 터전을 이어나가려는 주민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무너지는 구럼비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명박 정부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진 못할망정, 국민을 지켜야 할 공권력을 국민을 향해 작전을 펼치는 현장 지휘부와 수뇌부를 질타하지 않고 되레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러 온다니 이건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 인권을 유린한 공권력을 위로한다? 이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해군기지’라는 거대 공룡 앞에서 강정은 무법천지가 됐다. 민주주의는 허물어졌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은 그냥 법전에 쓰여진 텍스트가 됐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다에서 해군특수부대요원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폭행 당하는 곳이 강정이다. 외국인이 탄 카약을 고의로 전복시키고, 경찰이 아무런 이유없이 사유재산을 빼앗는 곳이 강정이다. 강정과 함께 평화를 지키려던 노벨평화상 후보자가 폭행과 연행을 당하고 국외로 강제 추방시키겠다고 위협당한다. 평화운동에 연대하려는 국제평화운동가들의 입국도 막는다. 폭력의 주체는 이명박 정부다. 그가 보낸 공권력이다. 아무리 해군기지가 자신이 추진하는 역점사업이라고 해도 국민들이 우는 현장에 와서 ‘잘한다’고 칭찬하겠다는 건 차마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4년. MB정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2000명도 안되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한 일이 무엇인가. 강정마을 주민들과 허심탄회하게 해군기지 문제를 이야기 해 본 정부 각료가 과연 있었는가. 400년 쌓아온 강정마을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마음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상처를 입었을 때 따스한 말 한마디 건낸 각료가 있었는가. 4년이란 긴 시간동안 강정주민들의 외침에 대해선 못 본 척, 못 들은 척 외면하다가 이제 강정마을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공권력을 위로하게 오겠다니, 이명박 정부는 강정마을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기는 하는 것인가. 지금 당장 멈춰라.

  # 공사중지 청문회를 앞둬 제주도를 압박하려는 게 아니라면...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비롯한 제주도의회 의장, 여야정치권, 심지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제주도당과 총선 후보들조차 지금의 밀어붙이기식 해군기지 공사강행을 반대하는데 외부의 경찰병력까지 동원해가면서 강행하는 이유가 뭔지 묻고 또 묻지 않을 수 없다.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찬반으로 나뉜 지역여론을 수렴해 지역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강정마을 민군복합형관광미항 항만설계 재검증을 정부에 요구하고, 기술적 문제가 제대로 됐는지 객관적인 검증을 마칠 때 까지 공사강행을 보류해 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건의를 마다하는 이유가 뭔가. 정부 스스로 강정에 군항이 아닌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을 건설하겠다고 제주도와 기본협약서까지 체결해 놓고도 정말 확실한지 검증해 보자는 제주도민들의 요구를 묵살하는 이유가 뭔가. 그러면서 국무총리를 내세워 애당초 15만톤 크루즈 2척이 강정에 동시 입항하는 게 현실성 없는 정책이었다고 딴청을 피우는 이유는 뭔가. 국방부 대변인을 내세워 ‘제주는 분명히 해군기지다’라고 연막을 피우는 배경은 또 뭔가. 지금 당장 멈춰라. 

제주도가 막가는 해군기지 공사에 제동을 걸기 위한 20일 공사 중지 명령 청문회를 앞두고 국방부 대변인이 제주에 와 언론인들을 만나 정부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방일간지에 광고를 내 정부입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더니 이제는 아예 국무총리실장과 국방부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차관 등이 내려오는 건 제주도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겠다는 심사가 아니면 뭔가.

  # 4.11총선을 앞둬 몰려다니는 건 누가봐도 선거개입을 연상케 한다 

정부 고위인사들이 우근민 지사로부터 해군기지 문제점을 듣고, 강정마을 주민 대표들을 몇몇 만나고, 경찰과 해군 수뇌부를 만나 ‘강정 제주해군기지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강정 제주해군기지문제가 정치적으로 흘러선 안된다’ ‘정부는 강정을 민군복합형관광미항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발언하고 보수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받아쓰도록 하려는 언론플레이가 아니라면 제주에 올 이유가 없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마을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을 ‘좌파’로 몰아붙여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아무런 해법도 없이 불쑥 제주에 올 이유가 없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멈춰라.

▲ 이재홍 편집국장. 대표기자
4.11총선을 앞둬 여야가 강정해군기지 문제를 놓고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날선 대결을 벌이는 상황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 각료들이 해군기지 사업현장에 불쑥 모습을 보이는 건 과거에나 볼법한 모습이다.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이미 총선의 주요 이슈가 된 상황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각료들이 대규모로 몰려온다는 건 누가 봐도 선거개입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당장 멈춰라.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제주도민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추는 일이다. 지금 MB정부 각료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강정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예를 보이는 일이다. 지금 공권력이 정말 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에 최소한의 예를 구하는 일이다. 그게 먼저고 순리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