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유를 갈망하며 눈물로 끓인 초콜릿
사랑과 자유를 갈망하며 눈물로 끓인 초콜릿
  • 강은미 (-)
  • 승인 2012.03.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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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의 문학카페> 4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지난 수요일은 '화이트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날이었다. 거리의 제과점 앞에는 온갖 장식을 한 사탕바구니가 지나는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사랑의 마음을 받은 이들은 한 달 후인 3월 14일에 사탕으로 고마운 마음을 되갚는다고 한다. 한창 사랑의 꽃을 피우는 청춘 남녀들에겐 더없이 행복하고 달콤 쌉싸름한 날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화이트데이 운운하는 게 미안하다. 겨우내 꽁꽁 싸맸던 몸과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맛있는 봄나물 국 한 사발쯤 들이켜고 싶으나, 강정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 어느 때 보다 차가운 칼날을 품고 있다.

더욱이 얼마 전 '3․8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강정 바다에서 치를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을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이 더해진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억압의 사슬은 역사와 관습, 차별이라는 중첩된 모순을 풀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는 점에서 막막하기만 하다. 억압의 문제가 어찌 여성만의 문제일까만,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그리고 직업인이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여성인 나로서는 체감의 무게가 실로 '단두대' 격이다.

하지만 해법이 없지는 않을 터이다. 힘들면 힘들수록 문제를 단순하게 보려고 애쓰는 게 나을 성 싶다. 가진 자는 내주고 싶어 하지 않고, 못 가진 자는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모든 생명체가 갖는 대립 모순. 하지만 각 개체마다의 존재 권리를 획득하고 있어야만 그 존재 가치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순수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반합의 저울은 대체로 의지가 더 강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오랜만에 '초콜릿이 끓는 물'과 같은 감동을 전하는 책 한 권을 읽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뭔가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겠지만 초콜릿 맛처럼 오묘하게, 사랑, 음식, 페미니즘, 역사가 한 통 속에서 펄펄 끓고 있는 이야기이다.

초콜릿을 만드는 요리의 비법이 인내와 정성, 온도와 시간의 적절성을 절묘하게 요구하듯이 이 작품을 읽는 독자의 마음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읽는 내내 눈을 떼고 싶지 않다는 점도 이 작품이 선사하는 매력적인 선물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멕시코의 소설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장편 소설이다. 22년 동안 이어진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의 요리 제목으로 구성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파이, 차벨라 웨딩 케이크,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등 멕시코 전통 요리를 소개함과 동시에 주인공 티타가 겪는 억울함, 번뇌, 우울과 슬픔, 환희 등을 요리의 비법 을 풀어헤치듯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으로 그 맛을 더해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티타는 '막내딸은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가족의 전통 때문에 연인인 페드로와 결혼하지 못한다. 대신 어머니는 언니 로사우라를 티타의 연인 페드로와 결혼시켰다. 페드로는 사랑하는 티타와 한 집에 있기 위해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한다고 고백한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티타는 그의 고백을 받아들이고,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그의 말을 믿는다. 물론 그녀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집안에서 서로 숨죽이며 나누는 그들의 사랑은 요리처럼 마술적이며 은밀하고 신비로웠지만 고통스럽기도 했다.

티타는 어머니 마마 엘레나와 하인 나차에 의해 모든 요리법을 전수받고 그들의 부엌을 장악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요리밖에 없었으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도 요리였다. 티타에게 요리는 희비가 교차하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면서 사랑의 결실을 꿈꾸듯 늘 새로운 창조를 실험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서 음식의 맛이 상하기도 했다. 모두가 그녀의 요리를 칭찬했지만 어머니만 유독 타박이 심했다. 티타는 이유 없이 타박을 하는 어머니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 증오의 바탕엔 그녀의 사랑을 관습이라는 이유로 빼앗아 버린 것에 대한 원망도 들어 있을 것이다.

결국 언니와 페드로 사이에 조카가 탄생하고, 티타는 그 조카를 친자식처럼 돌본다. 요리를 하는 부엌에서 이모와 함께 있는 것을 조카는 가장 행복해했다. 왜냐하면 티타의 요리에는 조카와 그의 아빠인 페드로에 대한 사랑도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낌새를 언니 로사우라는 알아챘지만 사랑의 감정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또한 티타에게는 그녀를 사랑하는 존이라는 교양 있는 의사가 있었다. 그의 인품을 충분히 인정하고 존경하지만 사랑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약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파혼을 요청한다.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존의 아들 알렉스와 페드로의 딸 에스페란사는 결혼한다.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며 관습대로 딸 에스페란사도 영원히 자기 품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언니 로사우라는 오랜 스트레스로 인해 구취와 방귀를 일삼다 돌연사하고 만다. 결혼식장에 페드로와 티타는 에스페란사의 부모 자격으로 참석하게 된다.

 작품 속 책갈피...

   
어머니 옆에서는 가차 없이 정해진 일을 해야만 했다. 일어나 옷을 입고, 화덕에 불을 지피고, 아침을 준비하고,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고, 설거지를 하고, 침대 정리를 하고….매일 매일, 해마다 그렇게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그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해야만 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중략)

"나는 나예요. 원하는 대로 자기 삶을 살 권리를 가진 인간이란 말이에요. 제발 날 좀 내버려둬요.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거예요. 나는 어머니를 증오해요. 항상 증오해 왔다고요."                

어찌 보면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은 불편한 사랑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형부를 사랑한 여동생'이라는 신파적 서사를 다루고 있다는 폄하의 반응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관습에 대한 도전이며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다. 또한 악습으로 인해 상처받은 자의 병리적 증상을 고발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세습되고 있는 억압의 사슬을 끊고자 함이다.

실제로 어머니 마마 엘레나는 자신이 사랑했던 흑인 남성과 결혼하지 못하고, 임신한 채 다른 남성과 결혼했다. 그녀가 죽고 나서 일기장 속에서 발견한 사실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혁명군의 한 청년과 야반도주를 하고, 창녀가 되었다는 소문이 일다가 혁명군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막내로 티타가 태어났는데, 얼마 있지 않아 남편이 죽고 말았다.

그녀에게 남은 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것이며, 철저하게 감정을 거세한 채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결혼했다는 죄책감이 그녀의 반동현상을 불러일으켰을 지도 모른다. 그녀의 화살은 티타에게 쏟아졌으며 티타 또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막내딸은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가족의 전통을 지키도록 강요하며, 그녀의 사랑마저 빼앗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해방되는 세월은 22년 걸렸다. 자매의 정은 관습의 칼로 무참하게 학살당했으며, 어느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는 싸움을 부추기고 말았다.

기존의 페미니즘 문학에서 '부엌'을 긍정적으로 그린 작품은 전무하다. 여성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고발하는 작품이 대부분이라면 이 작품의 진가는 상상력 속에서 일어나는 '부엌의 회생'이다. 부엌은 흔히 닫힌 공간이며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 행해지는 특별한 요리를 통해 자유로운 소통과 교감,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마술의 공간이다.

주인공 티타에게 부엌은 자신이 점유할 수 있고,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전통을 썰고, 사랑을 볶고, 자유를 더하고, 행복을 맛보고, 자신이 흡족할 때 까지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마침내, "나는 나예요."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예요! 얼마나 소중한 외침인가. 각각의 나가 제 빛깔로 알맞게 빛나면서 한 세계 안에서 맛깔스럽게 조화를 이룬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엌을 여성이 지배했던 공간이라 억울한 자 있다면 누구든 부엌으로 오라. 사람이 살고, 사람을 살게 하는 생명의 공간에서 오늘은 이 세상을 밝게 해주는 '새벽빛' 성냥을 켜고, 봄나물 구름 반죽 요리를 해봄은 어떨까. 특별 주문하는 바이다.

*'새벽빛'은 티타를 사랑했던 존의 할머니의 인디언식 이름이다. /강은미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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