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시내 전경. ⓒ양기혁
중국 여행 중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식사. ⓒ양기혁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시안시내. ⓒ양기혁
시안 시내 전경. ⓒ양기혁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5 중국 대륙의 심장부 '시안(西安)'

기차는 밤을 새워 대륙의 심장부를 달려갔고 어슴푸레 동이 터오면서 상푸에 누워 옴짝달싹 못한 채 선로를 털컹대며 달리는 기차의 움직임이 온몸에 전해져 온다. 날이 밝아지자 화장실과 세면장을 오가는 사람들로 또 하루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열차 내 식당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있고,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는 사람도 많다. 상푸의 침대칸에서 몸을 빼내어 뒷걸음으로 사다리 발판을 더듬어 가며 찾아 겨우 아래로 내려왔다. 세면장에서 머리와 얼굴에 대충 물을 적셔 씻어내고 자리로 돌아오니 따끈한 커피 한잔이 생각난다.

인스턴트 커피믹스라도 챙겨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었다. 어제 산 컵라면으로 대충 아침식사를 때웠다. 칭따오 기차역 대합실 차오스는 규모가 꽤 큰 곳인데도 한국 컵라면을 찾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중국 컵라면을 샀는데 국물 맛이 어쩐지 입에 맞지 않아 면만 건져 먹고 기름기가 둥둥 떠있는 국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다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물어봤다.

“저 탕 저머반( 이 국물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갸름하고 곱상한 얼굴의 매우 어려 보이는 여승무원은 선뜻 그 라면국물을 받아 처리해 주었다.

차량마다 담당 승무원이 있어서 탑승객들의 표를 확인하는 것이 주요업무였지만 그들은 차량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하고 있었다. 승객들은 음식물 찌꺼기와 포장지 같은 쓰레기들을 사정 없이 바닥에 쏟아 내는데 승무원들은 주기적으로 커다란 검정색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치우고 종착역이 가까워 오자 침대 시트를 교환하는 일까지 그들의 몫인 듯 새 시트커버와 이불을 침대마다 갖다놓았다.

▲ 시안 시내 전경. ⓒ양기혁

11시가 다 되어서 시안(西安)역에 도착했다.기차역에서 내려서 내일 가야 할 둔황(敦煌) 가는 기차표를 우선 알아보기 위하여, 표 파는 곳을 찾다가 지나가는 여직원을 보고 물어봤다.

“워야오취 둔황…(我要去敦煌…, 돈황 갈려고 하는데…).”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둔황, 돈황, 뒨황으로 바꿔가며 그녀를 향하여 소리쳐도 여전히 그녀는 모르겠다고 한다. 가이드북을 꺼내어 돈황이 소개된 곳을 찾아 한자로 쓰여 있는‘敦煌’을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뚠-화앙’이라고 발음했는데, 황이 화에서 앙으로 가면서 끝을 올리는 2성발음인 것이다. 돈인지 둔인지에만 신경 쓰고 정작 황은 우리말식으로 발음을 하니 못 알아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기차표를 살 것인지 묻고 나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잠시 후 멀리 간판이 보여“쇼우피아오추”라고 내가 읽는 것을 듣고 그녀는 밝게 웃으며 그쪽으로 가라고 하고는 돌아간다. 매표소에는 사람이 꽉 들어차서 그 줄이 건물 밖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밀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좀 적어 보이는 한쪽 줄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다행히 줄은 빠르게줄어들어서 내 차례가 금방 다가왔다.

이제 기차를 한번 타본 경험 때문인지 자신감을 가지고, 그리고 둔황의 성조에 주의를 기울여 창구 여직원에게 말했다.

“밍티엔 취뚠화앙, 잉워처, 시아푸( 내일 돈황 가는 경와차, 아래칸 침대표)” 내일은 좀 편안한 기차여행이 되길 바라면서 아래 칸 침대표를 주문했다. 표를 파는 여직원은 내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듯했다. 그러나 시아푸는 남아 있는 표가없으니 종푸로 사라고 한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4월 16일 10시 56분 출발, 10차 1호 367원’
칭따오에서 시안 오는 데 324원이었는데, 시안에서 둔황까지 비슷하게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상푸와 중푸의 가격차가 40원 정도 되는 것 같다. 표를 사고 기차역을 나오니 12시가 다 되었고, 배가 고팠다.

시안역 앞의 번화한 사거리로 나와서‘컨더지(肯德基, KFC)’‘, 마이당라오(McDonald)’와 나란히 간판을 내걸고 있는‘李先生’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중국 토종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인 것 같았는데 수염을 기르지 않은, 깔끔하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노신사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 중국 여행 중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식사. ⓒ양기혁

몹시 붐비는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판을 든 종업원이 다가오자, 세트 메뉴로 된 밥을 주문했다.음식은 오래지 않아 금방 나왔는데, 넉넉한 양의 밥 한 공기와 계란 푼 국물, 샐러드 같은 양배추 조금, 그리고 돼지고기 삶은 것 한 접시다. 돼지고기 삶은 것은 무슨 향료나 채소와 함께 삶은 듯했는데, 그것을 한입 먹고 그 황홀한 맛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사실 무척 배가 고팠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중국음식에서 나는 특이한 냄새와 맛이 맞지 않아 먹기가 힘들었는데, 돼지고기와 함께 삶은 향료 같은 것이 어우러져 오히려 더욱 맛을 풍부하게 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음식을 깨끗이 비웠다.

만족한 식사를 하고 식당을 나와서 사거리 시내버스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우선 병마용을 보고 나서 남는 시간에 다른 것들을 둘러볼 요량으로 병마용 가는 시내버스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북적이는 인파속에서 평범해 보이는 한 중년여인이 다가오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씨우시…(休息…).”

나는 화들짝 놀라 그 여인을 쳐다봤다. 단정한 옷차림에 깨끗하게 화장을 했는데 오래전 청량리나 영등포 역 주변에서 들었음직한 말, ‘쉬었다가세요, 놀다가세요’라고 여인은 말하는 것 같았다. 밤도 아니고 이제 정오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그 여인이 성매매 여성이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중국의 대도시에서, 특히 역 주변으로 성매매가 만연하고 있고, 여행 중에 주의해야 한다고 들은 바가 있어서 어쨌든 황급히 그 여인으로부터 도망치듯 멀어졌다.

▲ 시안 시내 전경. ⓒ양기혁

가이드북에는 시안역에서 병마용 박물관 가는 시내버스 번호가 적혀 있어서 버스 정류소의 안내판에서 찾아보았으나, 그 번호는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좀 난감한 기분으로 서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투어팀을 모집하면서 나에게 다가와, 병마용 갈 거냐고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지금 금방 출발하니 빨리 따라오라고 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여자의 뒤를 쫓아 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 점심식사를 한 식당의 모퉁이를 돌아조금 지나가니 미니버스 한 대가 막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왕복버스요금 20원을 내고 올라탄 버스에는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내가 오르고 나서 버스는 바로 출발했다.

버스 출입문 옆에 있던 가이드가 뒷자리에 배낭을 내려놓은 나에게 다가와 몇 마디 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그때 앞자리에서 “안녕하세요”하며 한국말로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쳐다보자 얼굴이 통통한 소녀가 나를 향해 반갑다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시안시내. ⓒ양기혁

버스는 먼저 시 동쪽 외곽에서 도시를 감싸 안듯 서 있는 여산(驢山)으로 갔다.성급히 투어팀을 따라왔기 때문에 병마용 가는 것만 알았지 어떤 코스로 비용이 얼마 드는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에 올라타고 여산 정상으로 올라가자 멀리 서안시내와 진시황릉 그리고 여산 바로 아래의 화청지 등이 내려다보였다.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오더니 그곳에 대해서 설명을 했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나는 따로 멀리 떨어져 해설하는 여자의 모습을 멀뚱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노자는 어쩌면, 필자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