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 칼럼> 해군기지 청문회를 검증회의와 연계시켜선 안된다    

도대체 하나라도 가늠할 수 있는 게 없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금 진행 중인 청문회는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청문회를 주도하는 게 제주도인지 아니면 해군인지 헷갈린다. 청문회를 연 우근민 제주도정의 생각은 무엇인지, 공유수면 매립허가의 불법성 여부를 따지자는 것인지, 아니면 이를 협상의 카드로 쓸 요량으로 청문회 카드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제주도의 발표에 따라 강정마을은 출렁이고 민심과 해법 역시 오락가락이다. 제주도가 뭔가 부산을 떠는 듯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해군을 향해 ‘공사중지 명령도 내릴 수 있다’고 호탕하게 한번 큰 소리치고 뭔가 보여줄 듯 했지만, 그 이후 내내 해군에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만 보여 줄 뿐이다. 스스로 발목을 잡은 어색한 액션은 그 의도를 궁금케 할 뿐이다. 오히려 신뢰성만 떨어뜨리는 형국이다. 

▲ 제주도가 29일로 예정된 해군기지 청문회를 4월12로 또 연기했다. 제주도는 시뮬레이션 검증회의가 열리는 이때까지 청문회 연기와 공사중단을 해군에 요청했다. 해군은 청문회 요청은 수용한 반면, 시뮬레이션검증과 상관없는 공사는 계속 하겠다며 사실상 공사중단 요청은 거부했다. 해군, 삼성물산과 대림산업은 제주도가 정부와 협상을 벌이는 순간에도 계속 구럼비를 발파했다. ⓒ 제주의소리
 # 시뮬레이션 검증과 연계시켜 청문회를 스스로 연기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29일로 열릴 예정이던 해군기지 청문회가 또다시 연기됐다. 이번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4월12일이다. 4.11 총선 다음날 열겠다는 것이다. 이때도 열릴지 지금까지 해 온 것으로 봐선 미지수다.

지난 20일 첫 청문회가 열린 후 벌써 두 차례나 연기됐다. 우근민 지사가 3월 7일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 사전 예고를 한 시점으로 따지면 한 달을 훌쩍 넘기게 됐다. 그동안 청문회는 단 한번 열렸다. 언제 끝이 날지,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밑도 끝도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이 사이에 구럼비는 계속 부서져 내리고 강정마을엔 화약 냄새만 자욱하다.      

제주도는 해군의 요청과 총리실과 합의를 근거로 청문회 연기하고, 반대로 그 기간 동안 공사중지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제주도가 순진한 건지, 아니면 몽매(蒙昧)한 건지, 해군은 제주도가 흔들릴 때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구럼비 장착한 화약 무게를 늘려나갔다. 해군의 일방통행과 오만함은 이미 제주사회는 물론 여야를 떠나 정치권도 한 목소리로 분개하고 있다.

속행 1시간 만에 연기된 지난 22일 청문회 때도 그랬다. 해군은 ‘충분한 답변을 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연기요청 하는 그 순간에도 강정에서 화약을 터트려 구럼비를 부수고 경찰은 평화활동가들을 잡아갔다. 청문회 연기가 구럼비 발파 시간을 끌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문에도 제주도정은 해군 요구를 수용했고, 구럼비 바위는 또 다시 떨어져 나갔다.

29일 청문회를 4월12일로 늦추자고 한건 제주도 제안이었지만 이번에도 해군의 강짜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구체만 보는 쪽으로 흐를 공산이 커 보인다. 그래서 제주도가 청문회를 연기 또 연기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정말로 해군의 사업추진에 문제가 있음을 밝혀내고 공사중지 명령을 내릴 요량인지 아니면 다른 게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형국으로 가고 있다.  

먼저 제주도가 해군이 일방적으로 실시한 2차 시뮬레이션을 검증키로 한 총리실 합의와 청문회를 굳이 연계하는 이유가 선뜻 납득이 가질 않는다. 시뮬레이션 검증은 검증대로 하고, 청문회는 행정절차를 밟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연계시켜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낳는지 모르겠다.

 # 제주도 전략은 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해군은 공사중지를 또 거부했다

검증회의에서 뭔가 끄집어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검증은 그 결과에 서로 합의 할 때만 구속력이 생긴다. 한쪽이 맞다고 해도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청문회는 법적 절차다. 제주도 결정이 1차적인 법적 구속력을 지닌다. 검증회의에서 문제점을 밝혀내고도 서로 합의하지 못한다면 시간만 날린 게 된다. 이 경우를 막기 위해서도 청문회는 검증회의와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거꾸로 제주도가 청문회를 진행하는 게 검증회의에서 확실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카드를 갖는 셈이다.

이를 뻔히 알 제주도정이 왜 검증회의와 청문회를 연계시키려는지 속내가 궁금하다. 혹 총리실과 합의 이면에 시뮬레이션 검증과 청문회 연기가 포괄적으로 담긴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서야 왜 제주도가 마지막까지 챙겨야 할 카드를 덥석 먼저 내 놓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제주도와 총리실이 합의한 검증팀 구성에 제주도의회와 강정마을회가 참여를 거부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반쪽검증’이 뻔한 상황이다. 먼저 검증을 제안한 제주도정이 이제 와서 ‘참여하지 않겠다’고 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한다 치더라도, 방파제와 구럼비 발파는 중지해달라는 정중한 요청을 목전에서 또다시 거부당한 제주도의 인내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알 길이 없다.  

해군은 ‘구럼비 발파는 케이슨제작장을 만들기 위한 공사이고, 해상공사 역시 준설공사인 만큼 시뮬레이션 검증과는 무관하다’며 공사를 계속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제주도에 전달했다. 다만 케이슨투하는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케이슨 투하는 해군 스스로 중단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동안 안전검사도 없이 불법으로 운항해 온 삼성물산 바지선이 부산해양항만청 제주해양관리단으로부터 운항정지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다.

결국 해군은 구럼비 발파는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근민 도정이 또다시 뒤통수를 맞았다. 해군은 제주도정을 철저히 농락했다. 우근민 도정이 공사중단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청문회를 강행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이미 엄포인줄 알아버린 해군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왜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검증회의와 청문회를 연계시키는 이유가 뭔지 도민사회는 궁금하기만 하다.  

 # 검증위 결론은 뒤집은 건 총리와 국방부...제주도가 검증위서 다시 뒤집겠다?

제주도정은 4.11총선까지 청문회를 끌다가 야권이 승리하면 곧바로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고, 여권이 이기면 그 때가서 다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속셈으로 청문회를 4월12일로 연기했는지 모르겠지만, 해군이 이 꼼수를 모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총리실이나 국방부가 이 카드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판단한다면 그건 정말 바보다.

총리실과 국방부 해군은 처음부터 시뮬레이션 검증엔 관심이 없었다. 민간 검증위가 항만설계에 문제가 있다고 내린 결론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뒤집은 게 누군가. 김황식 국무총리와 국방부다.   

새롭게 검증팀을 구성하고 여기에 제주도 공무원이 참가한다고 해서 국무총리와 국방부가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이 번복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정말 대단한 착각이다. 도청공무원들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을 펼친다면 정부 각 부처 장관이 참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한 사안도 스스로 거둬들일 것이라 만에 하나라도 판단했다면 그건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른 무지몽매다. 그렇지도 않다면 제주도민사회, 강정마을 주민을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 우 지사 카드는 ‘청문회’...더 이상 전략부재.협상력 부재 스스로 노출 말아야

우근민 제주도지사 권한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는 해법은 공사중지 명령이다. 청문회를 연기할 게 아니라 29일 당초 일정대로 열어야 한다.

해군이 공사중지 요청을 거부한 이상 4월12일로 청문회를 연기하겠다는 우 도정의 제안은 파기됐다. 파기의 책임은 전적으로 해군에게 있다. 그리고 청문회에서 해군이 제주도지사와 국방부장관 국토해양부장관이 체결한 양해각서에 나와 있는 기본합의내용을 준수하지 않는 사실이 확인되면 단호히 공사중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원점에서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이게 지금 우근민 도정이 해군기지 난국을 풀 수 있는 키를 쥐게 되는 출발점이다.

제주도는 정부와 협상하면서 자신이 없다면 애매한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시뮬레이션 검증과 관련이 없는 공사위주로 시행하고...’ 이런 표현을 쓰려면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급하지 않는 만 못하다. 오히려 오만한 해군이 구럼비를 발파할 구실만 자꾸 챙길 뿐이다. 제주도정은 그래도 해군에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배려는 지금까지 배신으로 왔다. 배려를 해 줄 때마다 요즘 표현으로 ‘빅 엿’을 먹었다. 제주도정의 허점만 스스로 노출시킬 뿐이다. 

▲ 이재홍 제주의소리 편집국장
잔머리론 문제를 풀 수 없다. 도민을 믿고 나가면 된다. 막무가내로 하라는 게 아니다. 법을 근거로 제주도지사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면 된다. 만일 불법이 있다면 그걸 근거로 중지명령을 내리면 된다. 그게 새로운 시작이다. 지금까지 총리실과 국방부, 해군에 일방적으로 질질 끌려가던 국면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대등한 입장은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수모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주도민이 우근민 도지사에게 준 권한을 행사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