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산에서 송악산을 잇는 해안도로는 그 빼어난 절경으로 인해 한국의 경관도로 52’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사계리와 상모리의 해안 경계 지점에서 사람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송악산 서쪽에 노출된 하모리 층의 일부이다. 하모리층은 송악산의 응회물질이 주변에 퇴적되어 만들어진 지층이다. 김정률 교수는 사람발자국 화석을 포함하는 지층이 하모리층보다 아래에 있다고 판단했으며, 손영관 교수는 화석이 하모리층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사람발자국 화석이다.

<장태욱의 지질기행> 9 사계리 사람발자국 화석의 연대 논란

▲ 산방산에서 송악산을 잇는 해안도로는 그 빼어난 절경으로 인해 한국의 경관도로 52’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산방산과 송악산을 잇는 해안도로는 주변의 화산지형과 푸른 바다가 서로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길이다. 국토해양부는 매년 전국의 수많은 길들을 대상으로 시도별 추천 자료를 검토하고 현장을 답사한 후에 ‘한국의 경관도로 52’를 선정하는데, 최근에는 이 도로가 그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길을 따라 걷다가 사계리와 상모리의 경계 지점에 이르면 사람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이라 표시한 안내문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발자국 화석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하기 때문에, 화석이 이 일대의 지질학적 가치를 한층 더 드높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당국은 이 화석산지가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람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기 전인 1990년에 이 일대에서는 조류의 발자국 화석이 먼저 발견되었다. 당시 학계의 보고에 따라 제주도 당국은 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4년에 한국교원대학교 김정률 교수 등이 이곳에서 여러 동물의 발자국과 함께 사람발자국 화석이 산출되었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이 일대의 지질조사보고서에 기초하여 화석의 형성시기를 대략 5만 년 쯤 전이라고 추정했다.

이에 대해 경상대학교 손영관 교수는 5만년 보다 훨씬 이후에 만들어졌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손영관 교수는 사람발자국 화석이 송악산의 응회물질이 얕은 바다 환경에서 침식 후 다시 이동․퇴적되어 형성된 하모리층에서 발견된다고 보았다. 그는 하모리층의 퇴적된 시기가 해수면이 현재보다도 약간 높았던 6천 년 전 이후이며, 하모리층에서 채취한 조개파편으로부터 측정한 방사성 연대의 측정값을 기준으로 사람발자국 화석은 약 3,000 년 전에서 2,000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사계리와 상모리의 해안 경계 지점에서 사람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화석의 연령에 대한 입장이 확연하게 다르게 나타난 것은 화석을 포함하는 지층의 위치를 서로 다르게 보았기 때문이다. 김정률 교수는 화석을 포함하는 지층이 하모리층보다 아래에 있다고 판단했으며, 손영관 교수는 화석이 하모리층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사람 발자국 화석이 한국에서 발견된 것도 흥미로운 일인데다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연대의 차이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문화재청은 사람발자국 화석의 형성시기와 관련한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문화제청의 제안에 의해 2005년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테스크포스팀은 광여기루미네선스(OSL; optically stimulated luminescence) 측정법으로 화석의 나이를 조사했다. 광여기루미너센스 연대측정법은 석영이 퇴적 기간 중 햇빛에 노출되면 순간적으로 기존의 신호를 잃게 되고, 땅속에 매몰되어 햇빛으로부터 차단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신호를 축적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사람발자국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이 방법이 제안된 것은 하모리층이 석영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송악산 서쪽에 노출된 하모리 층의 일부이다. 하모리층은 송악산의 응회물질이 주변에 퇴적되어 만들어진 지층이다. 김정률 교수는 사람발자국 화석을 포함하는 지층이 하모리층보다 아래에 있다고 판단했으며, 손영관 교수는 화석이 하모리층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하모리층은 약 10,000 년 전에 송악산 응회암이 분출한 후에 주변에 퇴적된 지층으로 추정하였고, 광여기루미넌센스 연대측정 결과 하모리층 최상부는 약 6,800년, 발자국 화석 바로 아래의 지층에서는 7,600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 발자국화석의 존재를 최초로 제안했던 김정률 교수도 남제주군으로부터 용역을 의뢰받고 화석의 나이를 재검증하기 위해 나섰다. 이들은 지질자원연구원의 주장과는 달리, 사람발자국 화석이 하모리층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그 하부의 층에서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발자국화석이 하모리층의 생성연대라고 밝혀진 6,800년 보다는 더 오래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방사성 탄소의 반감기를 이용한 연대측정 결과를 토대로 발자국 화석은 약 15,000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발자국 화석이 형성된 이후에 마그마의 분출로 송악산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15,000년 년 전은 아직 빙하기가 채 끝나지 않았던 시기이므로 전문가들은 해수면이 지금보다 약 130미터 아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정률 교수의 주장에는 해수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김교수는 15,000년 전에는 지금보다 약 130m 아래에 얕은 바다가 있었고, 그 얕은 물가에서 사람 발자국 화석이 형성되었다가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과 더불어 지반이 융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이어진 연구를 통해서도 사람발자국 화석의 형성시기와 관련한 논쟁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초기 논쟁에서 50,000년과 2,000년 사이로 큰 차이를 보였던 것에 비해서는 그 편차가 크게 줄어든 것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 사람발자국 화석이다.

문화재청은 이 일대의 고생물학적 가치를 인정하여, 천연기념물 제 464호(남제주군 해안 사람 발자국 및 각종 동물 발자국 화석 산출지)로 지정했다.

여기에 발자국을 남긴 이들은 지구가 온난화를 겪으면서 제주섬이 바닷물로 인해 한반도로부터 격리되자 이 섬에 고립된 사람들일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이 섬에 살다가 성산일출봉이나 군산 등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보면서 공포에 떨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발자국이 요즘사람들의 것에 비해 너무 작은 것을 보니, 하늘로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솟구치는 것을 보면서 놀라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발자국 화석 산출지 옆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형제섬이 내다보이는 해안 절경을 감상하며 바닷길을 걷고 있다. 선사시대 사람의 발자국에 또 다른 발자국이 날마다 더해지고 있다. 그게 길의 운명일 게다. 제 운명을 잘 감당해온 길이라 더욱 아름답다.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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