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지질기행 10> 성산일출봉 (1) '미인박명'을 떠올리는 화산체
새벽에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진주가 나들이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소리다. 새벽에 해 돋는 장면을 구경하러 아빠와 둘이서 성산일출봉으로 떠나기로 약속했던 터였다.
일출봉에 관련한 기사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고민이 생겼다. 일출봉에서 해 돋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서야 어찌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올 수 있으랴. 며칠 동안 계속해서 성산지역의 아침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날씨 맑음, 비 올 확률 0퍼센트"라는 응답을 확인하고서도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새벽에 해 뜨는 장면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일기가 허락하는 날이 1년에 며칠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에 해 뜨는 시각이 6시 18분이라고 했는데, 광치기해변에 도착한 시각은 8시10분경이었다. 평일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에는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해안선을 따라 줄을 선 채로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이는 모든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지게 마련이다. 카메라가 소중한 것은 휘발성 강한 인간의 감각기관이 간직하지 못하는 그 찰나적 황홀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침 운이 좋았다. 아무에게나 일출의 장관을 보여주지 않고, 때로는 해돋이를 보기위해 몰려든 수천의 인파에게 실망을 안겨줬던 태양이 너무도 쉽게 장관을 내어줬다. 그 황홀경을 스스로 설명할 길이 없어 작가 신경숙의 표현을 잠시 빌리기로 했다.
'아흔아홉 개의 기암왕관을 쓴 분화구 사이로 해가 솟아올랐다. 수평선 끝에서 어느 순간 해가 붉은 머리를 쏘옥 내밀 때면 막 태어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바다는 사방으로 붉은 물이 들고, 그 붉은 물이 쏟아진 듯 암갈색 기암들이 붉어졌다. 그땐, 초원의 안팎의 모든 것들의 힘줄이 불끈거렸을 거라고 생각한다.'-단편 <깊은 숨을 쉴 때마다> 중
일출봉은 약 5천 년 전에 바다에서 거대한 수중 폭발과 함께 만들어진 응회구다. 해발고도가 180여 미터의 규모 작은 산인데, 정상부에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것 같은 분화구가 자리 잡고 있다. 석벽이 분화구를 둘러싼 형상이 마치 거대한 왕관을 연상시킨다.
조전 초기의 천재시인 백호 임제는 남명소승에 성산에 대해 기록하기를 "성산도(城山島)라는 곳에 도착하였는데, 그 곳은 마치 한 송이 푸른 연꽃이 파도 사이에 꽂혀 솟아오른 듯 했다"라고 했다.
성산도라는 이름이 알려주듯, 과거 이 응회구는 하나의 섬이었다. 그런데 화산쇄설암으로 되어있는 일출봉의 외벽이 파도에 깎여 주변에 쌓이니 신양리층이 만들어졌고, 그 신양리층 위로 퇴적물질이 쌓여 일출봉과 제주본섬을 연결하는 다리(육계사주)가 완성되었다. 성산도가 제주본도와 연결되니 성산반도가 된 것이다.
성산일출봉은 그 형세의 비범함이나, 황홀한 해돋이 장면으로 인해 제주 최고의 비경으로 꼽혔다. 조선시대에는 성산일출을 영주십이경 중 하나로 인정받았고, 최근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
그렇다고 일출에 영화만 따른 것도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바위에 굴을 뚫어 어뢰정을 감추는데 사용했고 최근에는 '대국민 기만극'의 전모가 드러나는 세계7대경관 이벤트의 '전속모델'로 악용되기도 했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일출봉은 보면서 젊고 아름다운 것들에게 고난이 따르게 마련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럼 우리 예쁜 딸의 운명은 어찌 되는 걸까? <계속>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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