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편지(17)] 오름에서 부르는 제주연가

▲ 바람에 휩쓸리는 보랏빛의 억새풍경은 한폭의 수채화와 같다.ⓒ오희삼
가을녘의 들판엔 선홍빛 기억의 냄새가 스미어 있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옷자락에 휘감겨오는 바람의 길을 따라 내 유년의 발자국을 더듬어 갈 때, 억새들은 오랜만에 만난 고향친구처럼 살랑거린다. 그들의 몸짓은 단지 바람결에만 기댄 채 너울처럼 온몸을 흔들어대는데, 흔들림은 속삭이는 밀어처럼 감미롭다.

▲ 제주의 가을 들녘을 물들이는 억새.ⓒ오희삼
갓 피어난 억새의 살결은 투명한 혈관처럼 붉어서, 역광(逆光)이 혈관을 투과하는 동안의 현란한 광휘는 심장에 금을 긋는다. 오름 사이사이 나지막한 언덕이 억새물결 이루어 출렁거릴 때, 길 없는 길을 따라서 걷는 동안은 세월의 강을 건너가는 여정과도 같다. 아득한 유년의 기억 속에서 억새밭은 ‘지냉이’를 떠오르게 한다.

▲ 거친 환경속에서도 사나운 바람에 휩쓸리며 삶을 견디어내는 억새의 미덕은 이땅에 살아온 민초들의 고되었던 삶의 내력에 닿아 있다.ⓒ오희삼
들판에 널려진 돌멩이 아래 낮잠 자듯 숨어 있는 지냉이(지네)는 가난했던 시절의 아이들에겐 유일한 돈벌이의 방편이었다. 기억 속에서 지냉이 한 마리의 값은 최고로 받았을 때가 18원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들판을 걸어다니며 지냉이를 잡으면 오륙십 마리, 백 마리 이상을 잡았던 기억은 없다. 그랬을 것이다.

▲ 바람이 잠시 잠을 자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상념에 잠긴 듯한 억새의 모습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오희삼
하루 종일 걸어다니며 번 돈은 점심 끼니용 빵을 사는 데 들어간 자본을 빼고 나면 천원 남짓 했는데, 당시의 천원은 요긴하게 쓰였다. ‘아이스께끼’가 오십 원 쯤 했고 ‘라면땅’은 20원, 공책 한권이 50원 쯤 했다. 일주일 동안은 지냉이를 판 천원으로 군것질도 했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짤짤이’도 했으니까. 그렇게 그 시절의 봄과 가을에 일요일만 되면 서너 명의 벗들과 골갱이(호미)와 비닐봉지에 든 빵 하나를 사들고 들판으로 나섰다.

▲ 억새들의 몸짓은 단지 바람결에 기댄 채 너울처럼 흔들어대는데, 그 흔들림은 밀어처럼 감미롭다.ⓒ오희삼
봄에 어머니는 고사리를 캐러 그 들판으로 나섰고, 아버지는 그 들판에서 억새를 거두어 소에게 먹였다. 조금 더 자라서 아버지의 일을 거들 나이가 되었을 때, 들판의 억새를 걷는 일을 도왔다. 한 여름 초록색의 무성한 억새는 정말 억센 놈이어서 낫으로 억새들을 베어낼 때, 팔등에는 상처가 그칠 날이 없었다. 날카로운 억새의 날은 감물을 들여 만든 갈중이의 가칠한 옷감에 맥을 못추지만, 나일론 옷감에 억새의 날은 잘 갈은 칼날과도 같았다.

▲ 억새는 거친 들판의 마른 땅이나 습지를 가리지 않고 뿌리를 내린다.ⓒ오희삼
억새는 초가지붕을 덮는 기와 역할도 했다. 여름이 되어 다 자란 억새들이 바람에 사각거릴 때, 아버지는 그 억새들을 베어다 지붕을 덮었고 싱그러운 들판의 향기들은 고스란히 초가집에 배었다. 그 들판의 흙으로 벽을 세우고 억새로 지붕을 덮은 초가집은 공기의 소통으로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했다. 어머니는 억새를 말린 풀로 아궁이를 지펴서 우리를 먹였고, 그 불로 데운 따뜻한 아랫목에서 어머니는 동생들을 낳았다.

▲ 억새 뿌리에 기생하여 자라는 야고.ⓒ오희삼
새마을운동의 깃발이 나부끼면서 초가집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억새 대신 슬래트와 콘크리트의 인공물이 지붕을 덮었는데, 공기의 소통을 막아버린 인공물의 집들은 에어콘으로 더위를 달래고, 기름보일러로 추위를 몰아내야 집으로써의 기능을 한다. 억새로 이은 지붕은 이제 성읍민속마을의 지붕만 초가인 곳에서만 만날 수 있다. 과수원의 퇴비로도 좋았던 억새의 쓰임새는 힘든 노동력을 요구하는 불편함 때문에 화학비료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마른 바람이 제주의 들판을 떠돌 때, 들판의 억새들은 바람에 하늘거리며 씨앗들을 떠나보낸다. 가을햇살에 잘 익은 자줏빛의 이삭은 우윳빛 살결로 변해간다. 단풍 들고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면서 깊어진 가을의 들판에서 억새들은 사나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는데, 바람에 휩쓸리는 보랏빛의 억새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와 같다. 바람이 잠을 자는 잠깐 동안 고개를 숙이고 상념에 잠긴 듯한 억새의 모습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사유의 모습에서 파스칼은 보았을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억새(man is thinking reed)’라고. 보통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알려졌지만 파스칼의 고향인 클레르몽 페랑은 프랑스 남부의 산악지대여서 수생식물인 갈대보다는 억새일 가능성이 짙다. 게다가 갈대의 줄기 끝에 뭉쳐서 피는 꽃은 꼿꼿해서 고개를 숙인 억새의 이미지와는 완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인간은 생각하는 억새다’라고 고침이 마땅하리라. 억새와 갈대는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는 곳이 다르다. 억새는 거친 들판의 마른 땅이나 습지를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자라지만, 갈대는 물속에서 자란다. 제주도의 들녘을 물들이는 것은 모두 억새이고 갈대는 성산포의 터진목 뭍과 바다가 합쳐지는 늪에서 자란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사나운 바람에 휩쓸리며 삶을 견디어내는 억새의 미덕은 이 땅에 발붙여 살아온 민초들의 고되었던 삶의 내력과 닿아 있다. 들판에 무성하게 자라서 이 자락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의 방편이었던 억새들은 이제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들판의 풀로만 남아 있다. 단지 가을의 정취를 집안에 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테리어 소품으로 소용될 뿐이다. 또 있었다. 억새꽃 축제. 생활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일부로 녹아들었던 억새들은 이제 관광객들의 눈요깃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장금이’가 ‘한상궁’을 없고 귀양 가던 길가에 황홀하게 피었던 억새, 가없는 들판에서 바람에 출렁거리던 억새들의 벌판은 점점 사라져간다. 목장에도 오름에도 억새는 베여져서 사라지고 목초가 들어서고 있다. 세월을 따라 유년의 기억들이 하나 둘 잊혀지는 것처럼. 아득해서 그리운 것들이여. 정녕 그리운 것들은 다가서는 거리만큼 멀어져가는 것인가.

※ 오희삼 님은 한라산국립공원에서 10년째 청원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한라산지킴이입니다. 한라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좋은 글과 사진으로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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