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위원회 군·경측 자세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지난 15일자 조선일보 조간에 실린 기고는 '4.3보고서'의 확정 여부가 결정되는 회의가 있는 날이어서, 예상을 흐리게 할 만큼 여론을 가늠할 수 없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기고자인 나종삼 씨가 4.3위원회의 전문위원직을 맡고 있는 공무원 신분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보고서가 통과된 다음 날, 나종삼 전문위원이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다.

"당연하지. 오히려 파면감 아니야? 그동안 받았던 월급도 다 차압해야돼……"

▲나종삼 전문위원의 모습(2003년 10월 15일 4.3위원회 전문위원실)

4.3보고서가 확정되면서 사퇴한 위원은 세 명이 더 있다.
지난 16일 성우회는 홈페이지(http://www.starflag.or.kr)를 통해 '4.3사건을 왜곡한 진상보고서 채택에 반발한 성우회측 위원 한광덕 장군, 유재갑 교수 및 경찰측 이황우 교수는 위원직을 사퇴하였다'라는 내용을 공지했다.

한광덕 위원은 성우회 홈페이지를 통해 '날치기 통과된 진상조사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국무총리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했고 군경을 대표하여 위촉된 이황우, 유재갑 위원도 진상조사보고서의 신중한 검토를 위해 여러 가지 강력한 주장을 폈으나 편향되게 구성된 절대 열세의 분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라며 "국무총리는 만장일치 통과라고 하면서 의사봉을 쳤으나 유재갑, 이황우 그리고 저는 부동의에 서명을 했으며 울화를 참을 수 없어 자리를 떠나며 사퇴를 선언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저는 신변의 위험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분신자살의 각오로 이 글을 남깁니다"라며 끝을 맺었다.

'4.3보고서'가 통과되면서 군경 측을 대변하기 위해 '파견된' 인사들이 보여준 마지막 모습들이다.

<제 2의 나종삼과 한광덕을 바란다>

군경측을 대변하는 이들이 보여준 그간의 행태는 사실 경중을 달리할 뿐 진상조사기획단이나 실무위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문균(경찰대학 공안문제연구소 연구원), 김영일(제주도 재향군인회장), 김완송(경우회 제주도지부 이사) 등 출신 성분 상 군경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극단형'의 위원들과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는 '카멜레온형'의 일부 위원들이 여전히 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들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지만, 일단 정부차원의 진상조사 보고서라는 포석을 깔아놓은 상태에서 그들의 위력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제주도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실무위원회의 경우, 군경측 인사들의 '모나는' 행동이나 발언은 아직까지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 위원 역시 지역 내의 분위기나 여론에 밀려 '보신'하기에 급급한 것일 뿐, 4.3에 대한 사건 정의나 성격, 남로당 중앙당의 개입여부 등의 예민한 문제에 이르러서는 결국 합치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들의 '두루뭉실한' 언행이다. 최대한 꼬리를 내려 다수의 의견에 기생하고 보신하려하는 모습에서 '구색 맞추기' 이상이 아니다. 차라리 회의 진행이나 사업의 진척을 지연시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도 찾아볼 수 없다.

설령 지역 분위기와 여론이 군경의 입장을 적극 강변하기에 벅찬 상대적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장군의 분신 자살할 각오'를 이어받아 의도적으로 숨겨왔던 자료를 공개하는 등 이제 그들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해야할 때이다.
다만, 적절한 타협의 결과로 '화해'하고 '상생'하는 모습으로 위장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종삼과 한광덕의 '진지함'이 나른한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됐으면 한다.

▲현의합장묘 하관식에서 분향하는 김완송 실무위원의 모습(2003년 9월 20일 남원읍 수망리 현의합장묘)

<우리의 모습은…….>

'분신자살의 각오'는 4.3유족회나 4.3연구소 등 4.3의 올바른 해원을 바라는 이들, 어느새 무뎌진 우리들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

4.3보고서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준비된' 박수와 만세소리, 물론 어느 정도의 '쇼맨쉽'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나, 보고서가 접근하지 못했던 중요한 문제나 산적한 현안을 생각할 때는, 아직 이른 모습이다.

실제 4.3사건 이후의 사망자에 대한 처리 문제나 사실혼 관계가 입증되지 않아 아직까지 호적 정리가 되지 못한 문제 등 4.3은 이데올로기의 거대담론 뿐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에서도 계속되는 진행상황인 것이다.

지난 6개월여의 유예기간 동안 4.3위원회에 접수된 수정의견 현황을 살펴봐도 총 3백 76건 중 군경측이 제시한 자료가 2백81건인 반면, 4.3유족회를 비롯한 관련단체 및 개인의 의견은 합해도 74건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수치상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보고서가 확정된 후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거론했던 '미완의 보고서'니 하는 상황논리와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후에 다시 언급할 문제이겠지만, 지난 7일 열렸던 '4.3보고서 검토소위원회'의 기사 내용이 도내 일간지에서 일제히 '오보'를 터트림으로써 4.3을 접근하는 기성 언론의 자세와 각오 역시 다시금 가다듬어야 할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4.3문제는 이번 진상조사 보고서가 통과됨으로써 우리사회에서 비로소 엇 대등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게 됐다. 무뎌진 감각과 느슨해진 긴장을 재촉해서 찾아야할 필요가 절실하다.

흔히 비유하는 '5.18 꼴 나지 않도록'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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