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은 원래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었으며, 수성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단일 화산체다.
청음 김상헌은 일출봉에 오르다가 깎아지른 절벽 앞에서는 눈이 어지럽고 가랑이가 떨렸다고 했다. 지금은 등반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지하수는 2000℃ 이상의 마그마와 만나 강력한 폭발로 이어졌고, 마그마는 부서져 수백 미터 높이로 솟아올랐다. 이후, 화산쇄설물들이 화구 주변에 퇴적되어, 일출봉응회구가 형성되었다.
성산일출봉에 이르기 전에 등반로에서 장군바위·등경돌바위·초관바위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빗물에 의한 차별침식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일출봉은 산체에 비해 크고 깊은 분화구를 가지고 있다.게다가  분화구가 뾰족한 바위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범접할 수 없는 요새와도 갚은 인상을 준다.

<장태욱의 지질기행> 10 수성화산활동이 빚어낸 크고 독특한 분화구

▲ 성산일출봉은 수성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단일화산체로, 원래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었다.

성산일출봉은 바닷가에서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응회구로서 해상에 고립된 단일 화산체다. 봉우리가 제주도 동쪽 끝에 솟아오른 탓에 해돋이 명소로 이름을 얻어, 예로부터 '성산일출'은 영주십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인정받았다. 산체의 독특한 형상이 주변의 우도, 섭치코지 등과 어우러져, 그 절경을 사모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일출봉은 산체가 그리 높지 않지만, 경사가 40도에 이르러 매우 가파르다. 지금은 등반로가 잘 정돈되어 있어서 쉽게 오르내릴 수 있지만, 과거에는 지금과 크게 달랐다. 청음 김상헌이 32세(1601년)에 안무어사로 제주에 파견되었다가 일출봉에 오른 후 남긴 기록이다.

'바위를 기어오르며 아래를 훔쳐보니 눈이 어지럽고 가랑이가 떨리며 마음이 두근거리며 오싹하니 안정할 수가 없다. 그 형세를 말한다면 참으로 경치가 좋은 곳이다. 그 가운데서도 역시 만 명은 수용할 만한데 흠이 있다면 우물이 없는 것이다'-<남사록> 중 일부

▲ 청음 김상헌은 일출봉에 오르다가 깎아지른 절벽 앞에서는 눈이 어지럽고 가랑이가 떨렸다고 했다. 지금은 등반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청음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굴복할 수 없다며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다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청나라 황제의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늘그막에 청나라 황제 앞에서 조선 선비의 기개를 과시한 청음도 일출봉의 깎아지른 절벽 앞에서는 눈이 어지럽고 가랑이가 떨렸다고 했다. 인간은 자연 앞에 누구나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일출봉이 형성되기 전에 이 일대는 얕은 바다였는데, 해저에는 표선리현무암과 성산리현무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해저를 이루던 암석이 모두 다공질 현무암이기 때문에, 암석 내부에는 지하수를 많이 함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에서 마그마가 솟아오르다 해저 암석에 포함된 지하수와 만나 수성화산활동이 시작되었다.

▲ 지하수는 2000℃ 이상의 마그마와 만나 강력한 폭발로 이어졌고, 마그마는 부서져 수백 미터 높이로 솟아올랐다. 이후, 화산쇄설물들이 화구 주변에 퇴적되어, 일출봉응회구가 형성되었다.

지하수는 2000℃ 이상의 마그마와 만나 끓어올랐고, 이때 생긴 강력한 폭발로 마그마는 수백 미터 높이로 솟아올랐다. 이때 분출한 마그마는 산산이 부서져 화산 쇄설물의 형태로 화구 주변에 쌓였다. 다공질 현무암의 구멍을 타고 해수가 끊임없이 화도로 공급되었기 때문에 수성화산활동은 마그마가 분출하는 기간 내내 지속되었다. 장기간 지속된 수성화산활동으로 분출한 화산쇄설물은 화도 주변에 쌓여 응회구를 형성하게 되었다.

일출봉은 동서의 너비 1,000미터이고 남북의 길이가 700미터이고, 분화구의 서쪽에 자리 잡은 주봉은 해발 180미터에 이른다. 일출봉은 그 빼어난 절경과 노두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지질공원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일출봉을 아름다운 화산체로 돋보이게 만든 것은 분화구의 규모와 그 독특한 모양이다.

일출봉의 분화구는 남북으로 550미터, 동서로 500미터이고, 그 연면적이 65000평에 이른다. 화산체의 동쪽에 자리 잡은 분화구 최저점은 해발 87미터여서 주봉과의 높이차가 약 93미터에 이른다. 산체에 비해 분화구의 규모가 매우 크고 깊은 것이 특징이다.

청음이 가랑이를 떨며 비탈길을 따라 올랐던 일출봉이 지금은 잘 정비된 계단 길을 따라 쉽게 오를 수 있다. 이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주봉에 오르기 전에 우뚝 솟을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각각 장군바위·등경돌바위·초관바위 등인데, 빗물에 의한 차별침식의 결과로 형성된 것들이다. 화산활동이 일어난 후 화산재 등이 이곳에 퇴적된 후 비가 내렸을 때에, 빗물의 침식을 받은 곳은 깊이 파이고, 침식을 덜 받은 부분이 굳어져 우뚝 솟은 모양으로 남게 된 것이다.

▲ 성산일출봉에 이르기 전에 등반로에서 장군바위·등경돌바위·초관바위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빗물에 의한 차별침식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이 바위들 중에서 특히 등경돌바위는 설문대할망의 전설도 품고 있다. 전설에는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으로 흙을 날라 섬을 만들고 밤에는 일출봉 꼭대기에 앉아 터진 치마를 바느질 했다. 할망는 일출봉 기암 가운데 높이 솟은 바위를 골라 불을 켰지만 등잔이 낮아서 큰 바위 하나를 더 얹어서 등잔으로 썼다. 그 등잔이 등경돌바위라고 한다.

등경돌바위 인근에서 아래를 내다보면 멀리는 신양리 섭치코기 일대에서 가까이로는 성산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신양리에서 일출봉으로 이어지는 육계사주(섬과 육지를 연결한 모래 언덕)가 마치 가오리의 꼬리를 연상시킨다.

▲ 일출봉은 산체에 비해 크고 깊은 분화구를 가지고 있다.게다가 분화구가 뾰족한 바위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범접할 수 없는 요새와도 갚은 인상을 준다.

일출봉 정상에 오르면 뽀족하고 날카로운 바위들로 둘러싸인 분화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범접할 수 없는 요새와 같은 형상에서 '성산(成山)이란 이름의 유래를 실감하게 된다. 30년 전 쯤, 이현세의 만화를 소재로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제작할 때, 이 분화구 안에서 선수들이 지옥훈련을 하는 장면을 촬영한 적이 있다. 이 분화구가 주는 비범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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