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변명선 조형전 '해녀, 그 삶의 울타리'
▲ 작품 '머리를 빗는 여인' 앞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변명선 작가.

시인 고은은 젊은 시절 방황의 종착점으로 제주를 선택해서 몇 해를 체류한 적이 있다. 당시 시인은 작품 '내 아내의 농업(農業)'에서 제주여인의 고단한 일상을 '아내의 수건 벗은 새벽머리로부터 이 세계는 어두워온다'고 표현했다.
 
작품 속 아내는 하루 종일 척박한 땅을 일구다 날이 어두워서야 집에 돌아오고, 그 이후에도 새벽까지 몸을 움직다. 아내에게 밤이란 새벽에 수건을 벗고 나서야 겨우 시작되었다. 제주여인들에게 노동은 이처럼 벗어날 수 없는 질긴 업보였다.

제주여성들은 어려서 농사를 배웠고, 자라면서 물허벅을 졌다. 그리고 성인이 채 되기도 전에 바다에서 물질을 배웠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을 향한 의지를 동시에 품고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바다에서 허우적대던 해녀들의 일상이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던 제주 여인들의 회한 많은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서귀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창작의 의욕을 놓지 않은 드로잉 작가 변명선이 제주여인들의 삶을 소재로 조형전을 준비했다. 그리고 바쁜 일상 가운데서 틈틈이 빚고 다듬은 21편의 조형작품을 세상에 내 놓았다. 김영갑 갤러리 옆에 자리 잡은 '곳간-쉼'에서 '해녀, 그 삶의 울타리’라는 제목으로 4월 한 달 동안 열리는 전시회가 그것.

▲ 갤러리 '곶간 -쉼'은 농업용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다. 변작가는 이 갤러리가 제주여성들의 노동을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자녀를 넷이나 둔 주부이면서 동시에 농부다. 그야말로 집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가운데서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다. 그는 제주의 할머니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던 "살암시민 살아진다"라는 말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작가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온몸으로 안고 제주 이 땅을 지키려 했던 모든 '제주의 어미들'을 위한 노래를 조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곳간-쉼'은 농사용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갤러리다. 벽과 바닥은 투박한 콘크리트로 마감이 되어있고, 창문이 없어 출입문을 닫으면 온통 깜깜하다. 조명시설을 제외하고는 여느 창고와 다름이 없다. 변작가는 자신이 농사를 짓는 농부이기 때문에 이 갤리리가 마음에 꽂혔다고 했다. 농부가 노동을 소재로 전시회를 여는 데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제주의 여인들은 어려서 작은 물허벅을 지고, 물을 길러 샘을 오갔다. 그리고 사춘기가 될 무렵에 어머니가 지던 물허벅으로 바꾼다. 어른의 노동에 근접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커서 물질을 배운다. 물질을 하러 바다에 나가기 전에 허리를 펴고 앉아서 머리를 묶는데, 이는 몸의 근육을 푸는 과정이기도 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단계이기도 하다. 작품 '머리를 빗는 여인'에 나타난 무표정한 얼굴에서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는 순간 마주하는 긴장을 읽을 수 있다.
 
여인의 노동이 물질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물질을 나가지 않는 날이면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밭을 갈았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여인의 몸은 땀내, 젖내, 흙냄새가 뒤범벅이다. '순옥이 삼촌'은 여인의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와 젖가슴만을 드러낸 작품인데, 가슴이 유별나게 크다.
 
"순옥이는 저희 어머니 이름이에요. 제 어릴 적에 어머니는 가슴이 크고 젖이 풍부했어요. 어머니가 밭에서 돌아오면 어머니의 몸에서는 젖내와 더불어 노동에서 나오는 모든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그걸 표현하고 싶었죠. 이렇게 전시해 놓았더니 금방 구입하겟다는 관람객이 나왔어요.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했어요. '어머니 젖가슴 내가 팔았다고'"

▲ 작품 '순옥이 삼춘'이다. 작가가 유년시절 어머니의 몸에서 풍기던 냄새를 표현하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다.

해녀의 삶 이외에도 4.3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현무암을 다듬어서 만든 '어머니와 김아기'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변작가는 4.3평화관에 갔다가 희생자 명단에 '김아기'라는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희생자 명단에 '김아기', '이아기' 등이 올라있는 것은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에 태어나서 이름도 짓지 않은 아기들이 함께 희생을 당하면서 생긴 참극이다. 그래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김아기'는 곧 쓰라린 제주현대사를 드러내는 이름이다. 작가는 아기와 함께 산화해간 어머니의 쓰라린 모정을 통해서 제주여인들의 한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테라코타(terra cotta ;양질의 점토를 구워 만든 상)와 현무암 돌조각 등 21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작가는 전시 일주일 만에 대부분 작품이 팔려 다행이라며 행복한 자랑도 감추지 않았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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