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 따라가기(19)] 판포해안

한림읍 월령리 마을을 지나면 한경면 판포리로 이어진다. 월령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판포마을 까지는 꽤 먼 거리다. 판포마을을 만나기 전, 꽃이 흐드러진 손바닥 선인장을 먼저 만난다. 지난 겨울에 익은 열매가 진한 자주 빛으로 달려 있는데, 꽃은 마치 유채밭을 보는 것처럼 만개했다. 판포마을 까지 이르는 길이 선인장 꽃이 있어 지루하지 않다.

▲ 한경면이 시작되는 판포마을입구에는 손바닥선인장들이 반긴다.ⓒ홍영철
서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커다란 건물과 만났는데, 북제주군 하수종말처리장을 만드는 중이다. 거대한 건물옥상에 청기와를 둘렀는데, 그 모양새도 제주바다와 어울리지 않고, 너무 높게 지어져서 바다경관을 가리고 있다. 꼭 필요한 시설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지어야만 했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공사안내문에는 2000년 6월까지 인데 아직도 공사중이다. 곱지 않은 눈으로 보이는 건물이라 작은 것 하나에도 괜히 꼬투리를 잡으려는 심산이다.

▲ 판포리에 있는 북제주군 하수종말처리장. 긴 담장이 바다를 가리고 있다.ⓒ홍영철
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니 판포바다가 길 옆으로 이어진다. ‘판포상동’이라고 쓰여진 버스정류장 맞은 편으로 구엄소금빌레와 같은 평평한 바위가 보인다. 여기에 작지물원과 만양물원이 있다는 자료를 보고 바다로 내려선다. 여기에 있는 평평한 바위도 역시 파도에 수평으로 깎여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북등껍질처럼 갈라져 있다. 그 모양을 한참 바라보느라 ‘작지물원’을 찾을 생각이었다는 것을 잊었다. 평평한 거북바위 바로 동쪽에 바다로 멀리 나간 적코지가 있고 그 사이를 가로질러 물위에 간신히 머리를 내민 바위의 행렬이 보인다. 원담의 길이는 대략 15m정도 될 듯하다.  ‘작지물원’은 작지(제주사투리로 자갈의 뜻)사이에서 용출수가 있어서 ‘작지물원’이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만양물원’이 ‘작지물원’과 비슷한 크기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여기도 ‘작지물원’과 마찬가지로 ‘만양물’이라는 용출수가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밀물이라 정확히 어디에서 용출이 되는지 확인을 할 수 없다.

▲ 거북등껍질모양의 빌레. 주상절리의 윗면이 파도에 깍여 형성된 것이다. 오른쪽은 판포리 작지물원의 모습.ⓒ홍영철
판포마을이 가까이 다가선다. 해녀식당이 먼저 보이고, 그 뒤에 스위스콘도가 보인다. 해녀식당을 지나면 바다쪽에 포구가 있다. 메어놓은 배는 많지 않다. 포구바닥은 하얀 모래로 깔려 있는데, 여기는 포구가 생기기 전에 ‘모살원’이라는 원담이 있었다고 한다. 원담을 한곳에 치워놓은 듯 한쪽에 원담에 적당한 돌들이 쌓여 있다. 그래서 이 포구의 이름도 ‘모살원개’라고 부른다. ‘모살원개’를 끼고 바다로 향하는 시멘트길이 발걸음을 이끈다. 스위스콘도 옆에 있는 작은 민박집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바다를 본 사람은…’ 바다를 따라 걸어온 걸음에 화두를 던지는 문구다. 주인에게 물어보자 ‘맹자’의 한 구절이라는 말 뿐 어려운 숙제를 내준다. 그래서 팔자에 없는(?) 맹자를 뒤지게 되었다.

孟子曰 孔子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다행히 도올 김용옥 선생이 친절한 해설을 찾았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자께서 동산에 오르시어 노(魯)나라가 작다고 하시고 태산(泰山)에 오르시어 천하가 작다고 하셨다.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水)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言)에 대하여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 때에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다.)

이 말씀도 어렵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자면, 노자가 ‘도(道)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도(道)’가 아니다.’라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 바다의 깊은 ‘도(道)’를 터득한 사람은 그 것에 대해 쉽게 말하기 어렵다는 뜻은 아닐까? 아니면 바다에 진리가 있어 작은 것을 초월한다는 뜻일까? 깊이 바다를 바라보며 물을 일이다. 제주바다에는 물 외에 어떤 것이 있을까? 걸으면서 고민할 화두가 생겼다.

▲ 모래가 깔려 있어서 모살원이 있었던 자리에 모살원개가 들어섰다. 오른쪽은 모살원개 앞에 자리한 민박집 '바다를 본 사람은'.ⓒ홍영철
바다를 따라 가다가 ‘엄수개’를 만났다. 지금의 ‘판포(板浦)’라는 지명을 만든 포구다. 하지만 옛지명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포구에서 일하시는 마을 분들에게 귀찮게 물어본다. 하지만 잘 모르시겠다고 하고 대신에 잘 아시는 분을 소개해 주셨다. 집으로 찾아가서 이것 저것 캐물었다. 가장 궁금한 ‘엄수개’에 대해서 먼저 물었다. ‘엄수개’에는 ‘엄수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는데, 예전 여기에 마을이 없을 때, 중산간 마을에 사는 ‘배엄수’라는 사람이 물을 구하기 위해, 물허벅을 지고 여기 해안의 용천수까지 왔었다. 그런데 물을 긷고 가다가 그만 넘어져 물허벅을 깨뜨려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억울하기도 하고 여기에 물이 있고 해서 아예 정착을 하였는데, 맨처음 여기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하고, 포구도 만들어서 ‘엄수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판포 엄수물의 모습, 물의 귀중함으로 생긴 애환이 담겨있다.ⓒ홍영철
내친 김에 ‘판포’라는 지명유래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판포’의 예전지명은 ‘널개’인데, 판포마을은 동쪽으로 이웃마을인 월령리와 서쪽으로 금등리 까지 포함하는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넓은 개’를 가지고 있어서 ‘널개’라고 불렸고, 한자로 음차하는 과정에서 ‘널’을 ‘널판지’로 이해해서 ‘판포(板浦)’라고 변했다고 한다. ‘엄수개’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전설처럼 멀리 들리기도 하지만, 물과 물허벅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지금 사람들은 짐작하지 못한다.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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