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의 경제칼럼] 로비의 힘에 밀린 '오바마 케어'

기왕증(旣往症; 과거에 앓았던 병)이 있다는 이유로 보험을 거절하면 안 된다. 건강에 자신 있다고 해서 보험 가입을 안 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생계가 어려운 저소득층에게는 보조금을 줄 터이니 건강보험을 들어라. 이렇게 해서 전국민이 건강보험을 갖게 되는 나라를 만들자. 이것이 2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의 이른바 의료개혁법('오바마 케어')의 핵심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매사츄세츠 주에서 2006년에 실시한 건강보험개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다. 일개 주에서 했던 '개혁'을 전국 단위로 확대시켰다는 점에서는 분명 진전이라면 진전이다.

미국 의료보험의 문제점은 수년 전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를 통하여 잘 알려진 바 있다. 의사이자 언론인(뉴 잉글랜드 의학저널 편집장)이며 현재 하버드 의대 명예교수로 있는 마샤 앤겔(Marcia Angell) 여사는, 문제는 건강보험을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문명에 있다고 말한다.

TV나 냉장고는 지불능력에 따라 비싼 것을 살 수도, 싼 것을 살 수도 있으며 궁하면 없이 지낼 수도 있지만 건강이라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국가가 보호해 주어야 할 인권(human right)이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면은 손을 대지 못했지만 매사츄세츠 주의 의료개혁은 그런대로 성공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거기에는 병원응급실 문제의 해결이 한 몫을 했다. 미국에는 응급환자에 대해서 의료보험이나 지불능력 유무에 불구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1986년 응급의료처치에 관한 법률)이 있는데 이 때문에 회수하지 못하고 누적되는 병원비용을 보전해 주기 위한 '병원미수금보전기금'의 지출이 적지 않게 뒤따랐다.

특히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응급실을 많이 이용했는데 이들이 의료보험을 갖게 되자 응급실 이용이 크게 줄어 들었고 이에 따라 기금의 지출도 현저하게 감소하였던 것이다.

건강보험은 상품이 아닌 인권(人權)

그 결과 큰 추가적 재정부담 없이 주민의 의료보험 가입률을 97%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가 당면한 전국적인 상황은 나빴다. 우선 무보험자 비율이 매사츄세츠 주의 6%에 비해 미국 전체적으로는 16.3%에 달했다. 그리고 전용 가능했던 '기금'도, 부유한 매사츄세츠 주에서는 7억불이나 적립되어 있었지만 전국적으로는 상대적으로 그에 미치지 못 했다. 최근 미의회예산청은 오바마 케어 실시에 따른 향후 10년간의 재정 부담을 1조7천억 달러로 증액, 수정 발표하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매사츄세츠 주에서는 이 법안을 추진했던 공화당 출신 주지사가 민주당의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지지를 얻어 내는 데 성공했지만 오바마 케어의 경우는 상 하원을 통하여 단 하나의 공화당 의원의 찬성표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바마에게는 매사츄세츠 주가 했던 것과는 다른 개혁의 길이 있었다. 미 의회에는 2003년 이후 매년 상정되어 왔던 '메디케어(Medicare) 개선 및 확대시행을 위한 법안(HR676)'이 있었다.

65세 이후에 혜택을 받는 국영 건강보험인 메디케어를 전 연령층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영국이나 캐나다의 제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제도와 유사한 것이 된다.

마샤 앤겔 여사의 표현대로 건강을 인권으로 본다면 국가가 그에 필요한 비용을 세금으로 징수하였다가 의료비 결제에 충당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중복 의료 행위나 의료비 과잉청구 등의 폐단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2006년과 2008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메디케어 확대법안을 의결하였으나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하여 시행이 좌절된 적도 있었다.

로비의 힘에 밀린 '개혁'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그러나 이것은 민간 의료보험회사들에게는 치명적인 변혁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가 얼마나 컸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오바마 정부가 진정으로 무언가 개선하려는 뜻을 품었다면 내심 가장 바람직한 개혁안을 전국적인 컨센서스로 확대시키는 수순을 밟으면서 로비의 힘을 이겨냈어야 했다.

공교롭게도 매사츄세츠의 의료개혁을 이끌었던 장본인인 미트 롬니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서 금년 가을 오바마와 대결한다. 오바마 케어는 위헌 시비에까지 휘말려 있다. 다행히 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모면한다고 해도 반(反) 부시 정서를 등에 업고 큰 기대 속에서 출범했던 미국 최초의 유색 대통령은 개혁답지 못한 개혁을 했다는 평판을 안고 재선전에 임하게 되었다.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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