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선거용이 아닌 교육의 미래가 달려있다

일전 모고등학교에서 치러진 학교운영위원 선출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학부모들에게 학운위원 선출과 관련한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자가 선정되고 선거가 치루어진다. ②학교 측에서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댄다. ③그 경위를 둘러싸고 명분론과 현실론 사이에 격렬한 논란이 벌어진다.(단, 그 경우는 집요하게 따지고 들어간 학부모가 있을 때의 일이다.) ④애초 시나리오대로 원후보자들이 그대로 선출된다. 여기에서 ③번 과정이 길어지면서 지루해질수록 ④번으로 귀결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애애, 거 바쁜 사람들 불러놓앙 이거 미신 거라? 그냥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라? 다 아이들 위행 허는 거난 박수쳥 끝내게 마씀.”

그러나 그런 모습이 학교운영위 선거의 전형이어서는 곤란하다. 학운위 선거가 중요한 것은 교육감 보궐선거 때문만이 아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운명이 학교운영위 운영의 질과 직접 관련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점차적으로 교육감의 권한 중 상당 부분이 학교 단위 혹은 학교장 재량권 영역으로 넘겨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경우 학교운영의 중심축은 학교장과 그 파트너로서의 학교운영위가 된다. 학교장이 “작은 교육감”으로서 전횡을 일삼느냐 아니면 학교발전에 전력투구하느냐의 여부가 학운위 활동에 의해 좌우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로서도 학교운영위의 활동 결과가 실제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직결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아라중학교의 경우를 보라. 조례까지 만들어지면서 전도적으로 번져가고 있는 “유기농산물 급식”은 그 학교의 학운위의 적극적인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장차 아이들의 학교교육과 학교생활의 질은 상당 부분 학교운영위가 좌우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학교장이 핵심축이긴 하나, 단언컨대 교장이 어떻게 역할을 담당하느냐를 포함하여 학교다운 학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학교운영위가 어느 만큼 제 몫을 다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은 곧 학교운영위 구성이 그만큼 중요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학교측에 의해서 미리 담합된 후보를 대상으로 요식적으로 행해지는 선거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것도 항차 교육감선거와 연루된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학운위원은 결코 1회용 소모품으로 전락될 수 없다.

학교운영위원 중 학부모위원 선거는 원칙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게 되어있다.(학교별로 선거규정이 정해지기는 하나 도교육청에서 그 틀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아마 거의 모든 학교들이 대동소이할 것이다.) ①학교운영위원 선거를 공고한다. ②입후보자 등록을 받는다. ③학부모 총회에서 직접 선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측에서는 후보자 사전담합의 유혹을 강하게 받는다. 크게 두 가지 연유가 있을 법한데, 하나는 학교운영기금 동원능력을 고려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감 보궐선거와 관련한 “작전” 차원에서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일반학부모들도 동의할 여지가 적지 않다.

특히나 교육예산이 넉넉지는 못한데 재정수요는 많기 마련인 신생학교나, 최근에 학교건물을 신증축하여 시설이 화려하게 바뀜으로써 운영비가 급증하게 되는 학교들은 더욱 그렇다. 학부모 다수의 십시일반보다는 소수의 독지가를 선호하는 우리 기부문화가 현실타협 혹은 야합론의 배경이다.

혹시나 이번에도 교육감보궐선거에서의 특정한 후보를 지원하는 것을 염두에 둔 공작 차원에서의 학운위원 내정음모가 음으로든 양으로든 추진된다면, 그 당사자 혹은 그 세력은 실정법만이 아니라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앞의 두 교육감과 후보들은 그 덫에 걸린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바로 우리 아이들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게 된다. 불법 탈법 편법으로 뽑힌 교육감이 어떤 형태로든 그 불법 탈법 편법의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 그 파장은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치든 궁극 아이들 몫이 되고 만다. 바로 눈앞에서 저질러진 교육감선거의 불법 탈법 편법 사태, 그리고 그에 따른 엄청난 충격에도 불구하고 전철을 답습하게 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세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당시에는 충격받고 실망하고 혹은 남들과 함께 따라 분노(하는 척)하면서도 잠시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좋은 게 좋은 거여”, 이게 우리의 일상이어왔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그냥 연말연초의 표어 같은 게 되고 만다. 일이 벌어지고 떠들썩하게 희생양 찾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우리는 이게 사람 사는 것이거니 하고야 만다.

“다 그런 거 아니라? 뭐가 그리 새삼스러워? 요번에 특별히 도드라진 현상이라? 415선거 관련해서 정부가 무슨 의도를 갖고 밀어붙이는 거 아니라? 재수 없게 제주도가 그 첫 희생타가 되어버린 거주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어느덧 우리의 일상생활의 구조가 되어버렸다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벗어나야 되지 않겠는가?

다시 한번 반복 강조하거니와 학교운영위원 선출은 다만 교육감 보궐선거용이 아니다. 우리에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방교육자치는 궁극 학교자치에서 판가름이 나게 될 텐데, 그러한 학교운영의 한 축으로서의 학교운영위의 역할이다.

현실적으로 학교측에 의한 내정 혹은 추대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 하더라도 주머니만 보지 말고 마음과 머리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위원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아무리 생업에 바쁘더라도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학교운영위원선거에 출마하기도 해야 한다. 엉뚱한 사심들이 끼어들라치면 매우 호되게 내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어제처럼 오늘을 살아서는 내일은 없다. 내일은 우리 아이들의 몫이다. 오늘 어른들의 얇삽한 처신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음보다 큰 어리석음이 있겠는가? 용기를 내어 나설 때는 나서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바꾸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뒤에서 입으로만 떠들어서 학교가 바로 서고 아이들 교육이 제대로 될 수는 없다.

손가락으로 날아가는 꿩을 가리키기만 해서 그 꿩이 땅으로 떨어지는 법은 없다. 학부모들이 나서서 집요하게 학교운영위를 바로 세워내야 한다. 학교운영위원 선출과정이 원칙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선거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선거는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학교측도 유념해야 한다.

이번 학운위원들은 교육감보궐선거권자임과 동시에 획기적으로 달려져야 하는 제주교육의 중추가 된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교육은 그것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청과 교육감과 학운위는 그러한 중차대한 교육의 지원체제임을 존재근거로 한다.

그 중에서도 학운위가 그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학부모가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이 가장 열려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요컨대 우리의 희망은 우리의 손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호리(毫釐)의 차이가 천리(千里)의 어긋남을 빚어낸다. 한 걸음이 중요하다. 어떻게 시작하느냐, 이후를 결정할 것이다. "시작이 반"이란 말은 잘된 시작의 경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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