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서 방치된 이중섭묘 발견→작품 심취→서귀포여행 때 길 잃은곳 '이중섭거리'→정착

▲ 올레 6코스에 위치한 중섭공방 ⓒ제주의소리

장창섭-이미경씨 부부...이중섭그림 금속공예로 재탄생

서귀포 이중섭 거리를 걷다보면 나무판자들이 덧대어진 이쁘장한 1층집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서보니 이중섭의 그림들이 금속공예작품으로 재탄생해 있다.

이 곳은 장창섭(58), 이미경(52)씨 부부가 운영하는 공방이다. 이중섭의 그림을 목걸이, 책갈피, 브로치로 재창조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장씨 부부가 이 곳에 오게 된 사연은 특별하다. 서귀포 이중섭 거리에 공방을 열게 된 것은 이중섭이 이끈 ‘운명’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 부부의 고향은 서울이다. 면목동에 살던 장 씨는 평소 약수물을 뜨러 용마산에 자주 올랐다. 23년전 어느 날, 등산 도중 우연히 옆에 있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들어서게 됐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연히 자신이 좋아하던 이중섭의 묘를 발견하게 됐다. 신기한 마음은 잠시. 안내판은 커녕 관리도 제대로 안된 채 방치되어 있는 묘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이중섭은 대한민국 예술계에 커다란 별인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그는 이후 이중섭의 예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됐다. 이미 1980년대부터 이중섭에게 관심을 갖고 그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예술활동에는 늘 이중섭이 함께했다.

▲ 장창섭씨가 한창 금속 공예 작품을 만드는 중이다. ⓒ제주의소리

그렇게 서울과 강원도를 넘나들며 금속공예를 계속했던 부부는 2010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다리가 불편한 아내 이 씨는 평소 추위를 많이 탔다. 그래서 장 씨는 늘 말버릇으로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꼭 제주도에 가서 살자’는 약속을 했단다. 하지만 늘 바쁘고 사정은 넉넉지 않았기에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경이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에 2010년 추석을 앞두고 불쑥 제주도로 여행을 왔다.

그런데 서귀포를 돌아다니다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헤매다 우연히 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 곳이 바로 지금 공방이 위치한 이중섭 거리였다.

이 거리에 들어선 두 부부는 갑자기 ‘아 여기서 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가슴 속에 무언가 몰아쳤고 부부는 당장 이 곳에 머물기로 결심을 하게 됐다. 집에 돌아가지 않고 당장 공방을 열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근처의 집은 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신구간이 아니라 제대로 건물을 구하기 힘들었다. 며칠 내내 노력 끝에 겨우 현재의 자리를 얻게 됐다. 

집을 얻고 나서는 모두 손수 인테리어를 했다. 그렇게 몇 달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작은 공방이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낯설어했지만 곧 올레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단골들이 생겨났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물건들에 사람들이 매료된 것이다. 이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매일 수백명의 방문자들이 작품에 대한 후기를 남긴다.   

그렇게 시간은 2년이 흘렀다. 이 공방에는 장 씨 부부가 서귀포에서 지내며 만든 동판과 은판 바탕의 장식품들 외에도 온 벽면에 예술작품이 가득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주도의 낡은 나무와 금속을 합쳐서 만든 작품이다. 

▲ 중섭공방에서는 목걸이부터 액자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제주의소리

“여기 나무들 다 폐가들에서 나온거에요” 실제로 장 씨가 가장 아끼는 작품들은 제주도의 전통가옥을 허물 때 나온 나무 조각들에 금속공예를 조합해 만든 것이다. 백년은 족히 됐을 옛집에서 나온 나무조각과 최신 레이저로 작업한 금속으로 만들었다. 먼 과거와 현재가 같이 공존하는 이 물건이 장 씨에게는 가장 각별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중섭을 통해 이어진 특별한 인연으로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이 부부는 오늘도 새 작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올레꾼들은 제주도의 구경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며 기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인턴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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