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나온 이후 크고 작은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미국의 분위기는 차분한 데 비해 우리는 소란스러운 모습이다. 미국은 광우병을 과학의 문제로 접근하며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다. 반면, 우리는 ‘촛불’ 트라우마로 인해 감성적 반응이 과학적 접근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 쇠고기 안전문제가 이념으로 왜곡되면 국민건강을 위한 건전한 논쟁은 공론의 장에서 실종될 수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건강 수호와 식품안전성의 확보다.

정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당장에 국민건강에 위협이 발생하지 않았고, 한·미 간에 합의한 명시적 조항이 없기 때문에 수입중단이나 검역중단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조사를 거쳐 최종방침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반대측에서는 정부가 2008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 광우병의 최초 발생 단계에서 ‘선 안전 확인 후 정책 결정’ 방침을 정하면서 말바꾸기 논란으로 불신을 자초했다. 대국민 광고에 대해 문구의 생략과 압축으로 진의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는 꼴사나운 해명도 나왔다. 반대측의 반미 나 반MB 정서를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도 커져 소비는 급감하고 있다.

정부가 당장 국민건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미국의 광우병 발생 소가 한국이 수입하고 있는 30개월 미만이 아닌 10년 9개월된 젖소라는 점이다. 현재 30개월 이하 머리뼈·뇌·눈도 수입이 허용된다. 그리고 동물성 사료에 의해 발생하고 전염력이 강한 정형광우병이 아니라, 돌연변이 등에 의해 발병했고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은 비정형광우병이라는 점이다.

반대측은 미국이 연간 3천4백 만마리를 도축하면서 0.1% 수준인 4만 마리만 광우병 검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특정위험물질(SRM)의 철저한 제거, 동물성 사료에 대한 강화된 조치, 이력추적제, 전수검사 등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며 30개월 미만의 소도 안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정형광우병이 세계 각국의 예방조치로 소멸과정에 있고, 비정형광우병에 대해서는 “전염성이 없고 위험성도 거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미국 광우병에서 확인된 “비정형광우병 중 L형은 소 프리온에 민감한 쥐에서 정형광우병보다 감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또한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발생한 29건 가운데 비정형은 3건에 불과했고, 26건은 정형광우병이었다.

미국 광우병 발생 초기 정부는 ‘검역 중단 검토’에서 ‘검역강화’로 정책을 선회하였다. 이에 따라 ‘선 안전 확인’을 기조로 검사비율을 3%에서 50%로 높였다. 미국에도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다. 조사단은 광우병의 유형과 광우병 예찰시스템 등을 확인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은 겉으로 보기에 지리멸렬했던  ‘촛불’ 때보다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쇠고기 수입을 고수하려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어, 국민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의 광우병 위기 대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1979년에 나타난 광우병의 위기징후를 무시했다. 10년이 지난 1989년에 소나 양의 내장을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1995년 두명의 젊은이가 사망하고 나서야 1996년 광우병의 인간 전이 사실을 수용했다. 영국 정부의 위기징후 무시, 고집 불통과 소통 무능, 거짓말과 문제회피, 축산농민과의 협력 실패 등 위기 전략의 부재는 대형 위기를 야기한 바 있다. 영국 경제에 미친 악영향도 실로 엄청났다.

위기 발생시 첫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라 상황을 파악하고 방침을 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주무부서인 농식품부로 대국민 설득 창구를 일원화하고 차분하게 과학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광우병 자체가 일반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로 이루어진 점을 감안해야 한다. 청와대 등 외부 개입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신뢰를 상실하면 위기 대처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정직과 투명성은 최상의 전략이고, 거짓말과 문제회피는 최악의 전략이다. 약점이나 문제점에 대한 정직하고 투명한 공개는 오히려 문제해결에 득이 될 수 있다. 잘못한 일은 사과하고, 매를 맞아야 할 때는 맞아야 한다. 평소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라 부단히 준비하고 연습해야 한다. 위기가 종료된 뒤에는 백서를 만들어 전과정을 평가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위기극복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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