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릴 때만 낙수를 볼 수 있는 엉또폭포는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엉또폭포는 악근천 상류에 자리잡고 있다.
엉또폭포는 기암절벽과 주변 천연 난대림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엉또폭포의 물은 엉알로 떨어진다. 폭포의 하얀 포말과 뿌연 안개가 서로 어우러져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장태욱의 지질기행> 13 기암절벽과 천연난대림이 빚어낸 원시절경

▲ 비가 내릴 때만 낙수를 볼 수 있는 엉또폭포는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곡우와 입하에 즈음하여 큰 비가 내렸는데, 이럴 때마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내가 내린 후에서 물줄기를 쏟아내는 서귀포 엉또폭포.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산책코스였는데, 인기 있는 텔레비전 예능프로에 소개되면서 이젠 복잡한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종일 비가 내리자, 낙수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산을 쓰고 월산마을로 향했다.

월산마을은 본래 '종복이왓'이라고 부르는 곳에 형성된 마을이다. 원래 천연산림지대였던 곳을 '종복이'라는 농부가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인근의 월산봉의 이름을 따서 월산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월산봉에는 지금 강창학경기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도 4·3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 정부는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中山間) 지대를 적성 지역으로 파악하여 '중산간 초토화 작전'에 돌입했다. 당시 군경은 48년 10월부터 중산간 마을에 대해 소개령(疏開令)을 내려 마을 주민들을 모두 해안가 마을로 내려 보낸 후, 마을 전체를 불태웠다. 월산마을도 당시 '소개'의 대상이 되어 주민들은 군경에 의해 집이 불타 없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 엉또폭포는 악근천 상류에 자리잡고 있다.

월산봉(강창학경기장) 인근에서 안내표지판을 따라 월산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엉또폭포 산책로 입구에 이른다. 엉또폭포는 악근천의 상류에 위치하기 때문에 산책로는 이 하천변을 따라 설치되었다.

엉또폭포는 오랫동안 세인들에서 가려져 있다가 10여 년 전에서야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로 인해 폭포로 들어가는 악근천 상류의 천연 난대림이 지금까지는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진입로를 따라가다 보면, 푸른 천연림이 새 짖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평화로운 정취를 자아낸다.

산책로를 따라 1km 쯤 올라가면,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과 마주서게 되는데, 그 높이 50m에 이른다. 비가 내리면 이 바위에서 아래로 많은 물을 쏟아낸다. 맑은 날에는 폭포도 아니었던 것이, 비만 내리면 제주도내에서 가장 높은 폭포가 된다.

제주 방언인 '엉'은 바위 그늘 집(Rock Shelter)을 의미하고 '또' 혹은 '도'는 입구를 의미하므로, 엉또폭포는 '바위 그늘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주섬은 동서로 긴 타원형인데, 한라산은 섬의 중심부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따라서 한라산을 기점으로 볼 때, 동서남북 해안 중에서 남쪽에 이르는 거리가 가장 짧다. 그로인해 남쪽에 이르는 기울기가 가장 급한데, 그 급한 기울기 때문에 군데군데에서 경사급변점(傾斜急變點)이 만들어졌다.

악근천은 강정동 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이 일대 지질은 강정마을과 비슷한 조면안산암질 암석으로, 약 40만년 전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면안산암질 용암은 현무암질 용암과 달리 점성이 높아 높고 두꺼운 암석을 형성한다.

▲ 엉또폭포는 기암절벽과 주변 천연 난대림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두꺼운 조면안산암질 지층위에 형성된 경사급변점 아래로 많은 물이 쏟아져 오랫동안 침식이 반복되자,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서귀포 일대의 지하수위는 대체로 경사급변점 아래에 분포한다. 때문에 이 일대에서는 지하수 용출은 경사급변점(傾斜急變點) 아래에서만 이뤄진다. 효동동 '쇠소깍'이나, 강정천의 '넷길이소' 등의 경우 모두 해안 가까이에서 지하수 용출이 이뤄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엉또폭포는 지하수위보다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천지연폭포나 정방폭포와는 달리 비가 내린 후에만 낙수(落水)를 구경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의 지하수위가 이전 보다 매우 높았던 시절에는 이곳에서 항시 낙수가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폭포 아래에는 폭포수가 떨어져 만들어낸 천연 소가 있는데 이를 '엉알'이라 부른다. '엉(바위그늘 집)의 아래'라는 뜻을 갖는데, 이곳에는 항상 맑은 물이 고여 있다.

 

▲ 엉또폭포의 물은 엉알로 떨어진다. 폭포의 하얀 포말과 뿌연 안개가 서로 어우러져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평상시에는 물이 내리지 않는 이 폭포에, 큰 비가 내리자 세찬 물줄기가 벼랑의 끝에서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며 '엉알'로 떨어지는데, 그 소리마저 웅장하다. 또, 마침 기압절벽 주변에 안개가 자욱이 끼어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만들어졌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엉알에는 하얀 포말과 뿌연 안개가 뒤섞여 신선이 나올 것 같은 환상을 자아냈다.

잠시 그 분위기에 취해 있는데, 주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깨었다.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온 관광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고음을 지르고 있었다. 어느새 산책로 하나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원시절경이 주는 기쁨을 대신하고 있었다.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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