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사장, 세계유행 중심 런던 헤어디자이너 성공...10년만에 고향서 카페로 새출발 

▲ 이기철 사장은 모든 음식과 커피를 직접 만든다. ⓒ제주의소리

송악산을 지나 제주로 넘어가는 길. 창고처럼 생긴 건물 앞에 자전거와 차들이 줄을 서 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창고가 아니라 카페다. 겉은 분명 제주도 목장마다 널린 축사인데, 안을 들여다보니 샹들리에와 영국풍 가구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인테리어보다 독특한 것은 이 카페 주인의 이야기다.

이 카페의 주인 이기철(46)씨는 안덕 출신의 26년차 헤어드레서다. 언뜻보면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이야기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 그는 20대 후반, 서울에서 잘 나가는 헤어드레서였다. 미용사인 누나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일을 하게 됐다. 86년 상경해 헤어살롱 '허운데기'를 열었다. 왜 하필 '허운데기' 였을까? 그냥 자기 이름을 달거나 뻔한 이름을 짓기는 싫어다고 한다. 그러던 차 어렸을 때 할머니가 머리를 묶는 모습과 함께 자연스레 '허운데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독특한 이름과 함께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분위기로 금새 인기를 몰았다.

그 때부터 '2000년이 되면 꼭 런던으로 가야지!'하는 막연한 동경이 마음에 생겼다. 세계적 헤어드레서 비달 사순의 활동지 런던행을 늘 마음에 품고 지냈다.

그리고 결심 그대로 2000년 런던을 향했다. 십수년째 잘 되던 가게를 두고 난데없이 영국으로 간다고 히니 주변사람들은 당연히 '미쳤다'라고 하며 말렸다. 하지만 그는 미련없이 바로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런던에서 시작한 일은 '공부'였다. 2000년 1월 헤어디자이너들의 역사적인 아카데미 비달사순(Vidal Sassoon) 학교에 들어가 다시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칼리지(Westminster College)에서 사진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살롱을 열었다. 이 곳의 이름 역시 허운데기(HURWNDEKI)였다. 역시 무모한 도전이었다.

▲ 영국 런던 '허운데기' 헤어숍의 내부 <사진출처 = 허운데기 페이스북>
그런데 그의 가게는 상상외로 큰 성공을 거뒀다. 독특하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런던 현지인들에게 특유의 강한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다. 한 번은 손님의 머리를 자르는 데 그 손님의 동공이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이유를 묻자 "길버트 앤 조지가 창문에 매달려 있어요!"라고 소리쳤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현대미술가 길버트 앤 조지(Gilbert and George) 역시 그의 숍을 흠모하고 있던 것이다. 이후 런던 유명인들의 명소가 됐다. 케이스 모스(Kate Moss)를 비롯한 수퍼모델들이 줄이어 찾아왔고 런던 젊은이들의 동경의 공간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어 같은 이름으로 런던중심가에 빈티지숍을 열었다. 뛰어난 인테리어 감각과 상품 큐레이션으로 런던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이번에는 런던 동부의 캐임브리지 해스 로드(Cambridge Heath Road) 한복판에 허운데기 카페까지 만들어냈다. 놀라운 성공이었다.

런던에서 연이어 대박을 터뜨린 그가 어쩌다 고향 옆 대정에 카페를 내게 된 것일까? 그는 "원래 아시아 시장으로 넓히려는 계획은 가지고 있었다"며 "그러다 문득 고향 생각을 너무 안 한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와 카페를 열 계획을 세우게 됐다.

여기 돌아와서도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 카페를 열기 위해 선택한 건물이 소 축사였다. 말 그대로 외양간처럼 쓰이며 소를 키우던 돌담과 시멘트 기와가 섞인 제주 특유의 창고를 선택했다. 그는 제주도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졌지만 제주만의 독특한 특징을 잘 잡아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축사는 제주만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곳이면서도 특별한 인테리어가 가능한 틀이었다.

소를 기르던 축사 건물을 개조해 레스토랑으로 만든다고 했으니 사람들이 다 의아해했던 것은 두 말 할것도 없다. 오히려 영국에 가게를 열 때보다 더 힘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인테리어 부터 메뉴개발까지 심혈을 쏟아 개업했고, 광고 한 번 안해도 입소문을 타고 올레꾼들과 여행객들이 몰려왔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점심 시간을 넘긴 오후인데도 계속해서 외국인 여행객들을 비롯한 손님들이 몰려와 가게는 가득찼다.

이렇게 문을 연 카페 '오소록'은 제주에서 난 재료들만을 요리에 사용한다. 심지어 직접 채소들을 기른다. 커피는 영국 현지에서 고품질만 골라 직접 공수해온다. 말 그대로 모든 메뉴가 '웰빙'인 셈이다.

▲ 제주에 문을 연 '오소록'은 소 축사를 개조해 만들었다. ⓒ제주의소리

그는 현재 3개월째 제주에 머무는 중이다. 어느 한 장소에 이렇게 오래 머무른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만큼 그는 유럽과 제주, 서울을 오가며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가족이야기를 묻자 웃으며 "이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을 아내는 썩 마음내켜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지금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런던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큰 딸애 이름이 '한라'이고 작은 아들이름이 '오름'이라고 한다. 역시 촌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그는 이름 짓기에 대해서 남다른 감각이 있었다. 그의 제주 카페 이름 '오소록' 역시 '숨겨진 아늑한 곳'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다.  

도대체 그를 이렇게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목표가 '의-식-주'가 하나로 어울러진 그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패션과 헤어, 인테리어, 커피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다른 영역의 벽을 허무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자신은 세상의 모든 것에 너무 관심이 많다고 했다. "연애도 많이 해 본 사람보다, 진정으로 관심있는 사람이 더 잘한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런던에서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안덕에서 시작한 그의 여정은 서울과 런던을 거쳐 다시 대정에 잠시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웃으면서 "아직 시작을 아무것도 안했다"라고 대답했다. 앞으로 시도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현재 오소록에서 음식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 외에도 서울에서 헤어드레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동시에 간간히 영국에도 가야한다. 기존의 숍들을 잘 챙기는 것도 중요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도 또 다른 허운데기 진출을 계획중이다.

▲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기철 사장. ⓒ제주의소리

전세계를 휘감은 그가 고향 제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너무 다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경승지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길이 너무 좁은 거에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파괴를 최소화 한 거죠. 그런 불편함에도 매우 유명하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요"

제주도가 가진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바꿀 것은 바꾸고 개발할 것은 개발하되 극단적인 개발주의로는 가지 않았으면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대정에 세운 오소록은 가장 제주적인 곳이다. 원래 제주에 흔한 특유의 풍경인  건물의 골격과 외관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를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재구성했다. 그의 시도들이야 말로 '제주만의 것'을 보존하면서 현대와 접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이기철 사장. 앞으로도 계속될 그의 도전이 기대된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인턴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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