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성철 : 보건정책 전문가의 영리병원 도입에 관한 비판과 제안

저는 제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영리병원 도입 및 의료개방과 교육개방 모두에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가 학교에 몸을 담고 있지만 고등교육인 대학교육 시장의 개방은 필요하되, 현재 제주도가 추진하고자 하는 영리병원 도입, 의료개방은 절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의과대학에 몸담고 있지만 임상의사가 아니라 주로 지역사회보건과 의료정책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의료개방에 부정적인 저의 입장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득권의 밥그릇 챙기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먼저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지역사회보건과 의료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의견

현재 제주도가 추진하고자 하는 의료개방의 요지는 이미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몇 가지 핵심적 논점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분명하게 개진해 보고자 합니다.

의료개방이 세계적 추세라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첫째, 의료개방은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한시라도 빨리 개방을 해서 국내의료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필자는 이 부문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선진국가에서 의료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이 문제를 국민의료의 보장과 복지증진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제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국가가 나름의 국가의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최근의 우리나라처럼 자국의 국가의료보장제도를 근간부터 흔들 수 있는 방식으로 의료개방과 영리의료법인을 추진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료개방이 세계적 추세라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제주도민의 가계파탄은 불은 보듯

둘째, 영리병원과 의료개방은 제주도의 의료수준을 높여 도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의료개방에 대한 도민 여론조사의 경우에, 이것 때문에 개방에 찬성하는 도민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는 도민들이 현행 제주도 의료수준에 대해 불만족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료개방의 전제가 되는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허용과 도민 대상의 비보험 진료가 제주도에서 허용된다면, 제주도민의 급격한 의료비 상승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암 환자가 발생한다면 현재는 건강보험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영리의료기관에서 동일한 치료를 받으려면 적어도 수억의 비용(현행 진료비보다 최소 3-5배 이상 더 비싼 진료비 부담)을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영리 외국병원에는 부자들만 가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의료의 속성상 환자들은 가난하든 부자이든 비용에 상관없이 최고 수준의 진료를 받길 원하기 때문에, 그리고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하여 값 비싼 의료가 질이 좋다는 막연한 인식에서 이러한 의료기관을 이용하려 할 것이므로,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인한 제주도민의 가계파탄과 사회적 위화감의 조성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의 의료비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입니다. 인천 특구에 진출하려는 미국 영리병원들은 현행 한국의 의료수가보다 5배 이상의 비싼 의료수가를 메기려 하고 있습니다. 또, 오죽하면 미국의 한국 유학생이 사랑니를 뽑기 위해 비싼 항공료를 부담하여 국내에서 치료한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미국에서 사랑니 발치수술을 받으면 진료비가 약 3,000달러, 우리 돈으로 300 만원가량 됩니다.)

또한, 외국 또는 국내 자본의 영리법인 의료기관이 허용되면 영리의료기관과 기존 의료기관간의 형평성을 근거로 덩달아 기존의 도내 병원들도 영리 의료법인화 할 가능성이 높고, 아마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의 저렴하고 질 높은 의료 선택의 폭은 줄어들고, 도내 전체의 의료비 상승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야말로 제주도가 도민 의료보장과 의료복지의 사각지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주도의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행 도내 의료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유럽의 선진국 수준으로 충분한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대학교병원의 증축이 조기에 성공적으로 완수되어야 하며, 암 환자 무료 진료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획기적인 의료보장제도의 진전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암 환자 무상 진료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의료개방을 주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극단적인 현실입니다. 암 환자에 대해 무상 진료를 논의하는 나라에서 외국병원이 영리를 목적으로 어떻게 들어 올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의료는 영리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인 것입니다.

제주도는 의료보장과 의료복지의 사각지대가 될 것

셋째, 외국 영리의료기관이 유치되면 외국 환자를 유치하여 제주도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부문은 개방을 찬성하는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싱가포르나 태국의 예를 들어 이 부문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싱가포르나 태국에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중립적 언론이 전문가들과 함께 취재하는 방법도 한 방편이 되겠지요. 싱가포르의 경우 공공의료가 80% 수준으로 자국민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으며, 의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이웃 동남아 국가들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의료 영리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위 동남아 국가의 경우 지리적으로 대단히 가깝고, 동일 언어를 사용하며, 빈부격차가 대단히 심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나마 싱가포르(래플즈병원)도 이미 가격 경쟁력에서 이웃 태국(범룽랏병원)에 뒤지는 바람에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태국의 경우가 의료영리산업에서 성공하고 있는 나라인데, 태국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관광과 의료를 연계한 것이 성과의 큰 원인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인 의료서비스의 가격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동남아 국가의 대부분이 자국의 의료보장제도가 전무하거나 부실하고 의료의 질이 너무 낮아 부유층을 중심으로 이웃한 태국의 영리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제주도의 현실을 한번 보겠습니다. 제주도가 주장하는 외국 환자 유치는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까 ? 아마 일본이나 중국을 우선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의료보장제도의 보장성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습니다(한국은 60%, 일본은 85%). 따라서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말도 통하지 않는 제주도에서 치료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외화 획득 목적이 아니라 열악한 자국민의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이미 의료를 개방하였으며, 따라서 중국 부유층 환자의 경우 중국 내 외국의료기관을 이용하지 굳이 제주도에 올 이유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외국의료기관의 유치, 특히 영리병원의 도입은 제주도민의 의료보장과 복지의 증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를 의료복지의 사각지대로 만들 우려가 대단히 크며, 외국환자의 유치를 통한 소득창출이라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료산업화는 환자진료를 돈벌이로 바라보는 발상

이와 같은 필자의 견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인가? 제주도가 미래 10년 후에 뭘 가지고 먹고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흔히 합니다. 굳이 의료산업화를 제주도의 경쟁력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면,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사실 필자는 제주도에서 요즘 논의되고 있는 ‘의료의 산업화’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의료를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발상이 의료산업화인데, 선진국에서는 BT산업, 의료장비, 신약개발 등의 고부가가치 의료산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는 반면, 제주도가 구상하는 의료산업화는 환자를 대상으로 직접 돈을 벌겠다는 가장 저급한 수준의 의료서비스산업화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제주도민의 의료보장과 복지 수준의 저하를 초래합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선진국 형의 고부가가치 의료산업은 외국 영리병원의 유치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필자는 제주도가 진정한 의미의 고부가가치 의료산업의 육성에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굳이 외국병원이나 영리병원을 유치할 필요 없어

둘째, 필자는 환자 대상의 의료서비스가 아닌 의료산업을 내실화 또는 활성화하는 방안 하나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미용·성형·보양 단지를 형성해서 제주도의 관광과 연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계적으로 잘만하면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또한, 관광·휴양과 연계한 건강검진 패키지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미용·성형·보양 분야는 우리나라가 관련 의료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크게 우수하고 더욱 안전합니다(즉, 의료사고나 감염 등의 걱정이 적으면서도 성형 등 의료시술의 기술은 더 섬세하고 질적으로 우수함).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동남아보다 불리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극복할만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 분야는 잘만 키우고 산업화한다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굳이 외국의료기관을 유치할 필요가 없으며, 영리병원의 도입도 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의료법 틀 내에서 이 전략은 충분히 현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 또는 허가 받은 사업자가 아예 대규모 건물을 복합단지로 지어서 전국 유수의 성형·미용분야 의사들을 초빙하면 됩니다. 여러 명의 의사들이 공동으로 사업을 할 수도 있고, 법인을 만들어 사업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분야를 제주도 관광 및 휴양과 연계하는 상품으로 개발하고 판매하는 것입니다.

많은 시민단체와 도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는 영리병원 도입과 의료개방을 추진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의료개방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를 촉구합니다. (홍성철·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