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칼럼] 삼양 원당사지 5층석탑

최근 MBC는 주말에 사극 '신돈'을 방영하고 있다. 지난주 방송분에서는 원(元)나라에 끌려간 공민왕(정보석)이 기황후(김혜리)를 만나 왕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면이 방송됐다.

방영된 장면을 잠깐 반추해 보자.

기황후(奇皇后)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공민왕은 온갖 수모를 참으며 고려의 국왕자리를 주면 목숨보다 더 한 것이라도 받치겠다고 한다. 하지만 기황후는 "피 한방울 묻혀 본 적 없는 손으로 무슨 고려의 국왕을 하겠냐"며 고개를 내젓는다. 기황후의 처소에서 나온 공민왕은 "오늘 받은 이 수모는 죽는 날까지 잊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 모 드라마에서 기황후로 열연하고 있는 탤런트 김혜리.

김혜리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에 의해 기황후라는 인물이 더욱 크로즈업되고 있다.

기황후는 당시 원제국의 실권을 틀어잡은 고려출신 여성이었으며, 말그대로  '입지전적'인 인물 그자체였다. 혹자는 '고려판 신데델라'고도 하지만, 당시 중국대륙은 물론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여황제' 와 다름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여겨진다.

방송에서도 보여주고 있지만 그녀는 고려 출신으로 원 순제(順帝)의 황후가 되어 원나라 말기 황실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고려조정에도 막강한 역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원래 원의 속국이었던 고려가 원나라에 조공물품으로 바쳐진 처녀 중 하나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차(茶)를 올리는 궁녀였다가 타고난 미모와 지략으로 순제의 제2황후가 되는 데 성공한다(그녀는 기자오(奇子敖)의 딸이자, 방송에서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고려조정을 농단했던 기철(奇轍)의 누이이다. 이후 원나라 수도인 연경이 주원장에게 함락되자 몽골내륙으로 쫓겨나고, 그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가 제2황후로 책봉되는 데는 황태자 '아이유시리다라(愛猷識里達獵 : 이후 北元의 昭宗이 됨)'의 출산이 큰 힘이 되었는데, 바로 그 아들을 낳는데 제주도와 관련이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기황후는 자신들의 입지와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황제의 뒤를 이을 아들을 낳는 것이 필수라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북두칠성의 명맥이 비치는 '삼첩칠봉(三疊七峰)'의 산세를 갖춘 곳에 탑을 세우고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풍수가의 말을 듣고 천하를 물색하던 중, 제주도 현 삼양동 지역의 원당봉 기슭이 그런 곳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기황후가 이에 이곳에 절을 세우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불공을 드려 결국 아들을 얻었다는 것이 전해오는 스토리의 골간이다.

원당봉은 얼핏보면 3낭으로 이어져 있는 듯이 보이나 모두 7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옛부터 삼첩칠봉이라 불리어졌다고 하지만, 필자는 아무리 주의깊게 살펴 보아도 7개의 봉우리를 찾기 힘들다.

▲ 삼양 원당사지 5층석탑.
어쨌든 이렇게 전해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바로 이곳에 있는 5층 석탑이, 대원제국을 호령하던 기황후가 권력을 쥐게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말이 된다.   

'믿거나 말거나' 일 수도 있지만, 이곳 지역의 현재의 지명도 원당봉(元堂峰), 원당사(元堂寺) 등으로 원과 관련한 명칭임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단지 전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제주도 당국은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여행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기초자치단체 또한 이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서귀포시가 개관한 정방폭포 주변의 '서복기념관'도 그 중의 하나다.

서복 또한 진시황의 '불로초'와 관련한 전설에 입각한 것이어서 그 스토리를 잘만 포장하면 좋은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지지만, 원당사지 5층석탑 또한 그에 못지않은 흥미로운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남아선호 사상이라고 비판할 지 모르겠으나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중국관광객에게 선전하면 어떤가). 또한 이곳이 고려인 궁녀 출신인 기황후와 관련된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극적 효과는 더 크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 이곳이 중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코스라고 들어보지는 못했다. 사실 이곳만 잘 개발하더라도 삼양지역은 제주시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떠오를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제주지역은 이렇듯 곳곳에 스토리의 완결성이 뛰어난 전설유적이 산재해 있음에도 아직 이를 제대로 상품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제주도의 관광정책 담당자들은 이러한 점에 주의를 기울여 주길 바란다. 

정책담당자들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제일의 타깃이 바로 삼양 원당사지 5층석탑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특히 이 곳에 있는 석탑은 크기는 작지만 제주지역에서는 유일하면서도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 석탑이다.

고려시대 이후 이곳은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성지처럼 됐었으나 조선조의 배불(排佛)정책으로 절은 헐리고 탑은 파묻혀졌던 것이 1929년 봉려관(蓬盧觀) 등이 다시 이 절을 찾아내어 다시 일으켰다고 한다.

이 5층 석탑은 육지부의 고찰에 산재하고 있는 화감암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석탑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제주다운 재질과 소박함이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원당봉 주변에는 3개의 절이 있는데 원당봉 말굽형 분화구에 있는 천태종 문강사(門降寺)는 현대에 축조된 절이며, 원당봉 초입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태고종의 원당사(元堂寺)와 조계종의 원당불탑사(元堂佛塔寺)가 있는데, 탑은 바로 후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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