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춘 칼럼> 환경과 평화, 그리고 슬로시티

2012년 제주는 슬프다. 도처에 아픔 투성이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도 도덕적 결함으로 비극적 말로를 걷고 있는데, 여기 제주도의 지도자도 도덕적으로 온전치 못하다. <세계 7대 경관> 사기극을 펼치다가 그 속임수와 사기극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사과와 반성이 없다.

KT가 그렇게 국내전화를 국제전화로 속였다고 치자. 대부분의 유치위원회가 평균 42.5%-47.5% 운영비를 받았다고 하는데, 제주도 <세계 7대 경관 유치위원회>는 도대체 얼마를 받아쓰기로 했던가. 아무도 모르고 알려주지도 않는다. 이런 부도덕이 덜미를 잡으니 여타의 제주 관련 현안은 제자리걸음이고 오히려 과거 독재 시절의 부조리를 반복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안이 바로 강정 문제다. 우근민 도지사는 당선된 이후로 이 중요 사안을 애써 외면하고 오히려 문제를 감추고 뒷면으로 끌어내기 위해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세계 7대 경관 유치 사업>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세계 생물권 보존지역, 람사스 습지,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되었는데도 한 사기꾼이 시작한 <세계 7대 경관 유치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주민들을 능멸하며 제주도민의 현안에 눈감아 버렸다. 이래도 도자사직을 유지할 자격이 있을까.

주민들이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고 형사처벌을 받는데, 그 부모격인 도지사는 허수아비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중앙정부에 덜미를 잡혀 저 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온갖 폭력과 인권유린과 구속과 사상범 만들기 등이 자행되고 있다.

문화? 평화? 환경? 언제 우근민 지사에게 그런 아름다운 말이 있었느냐고 묻지 마라. 도지사가 된 후 그는 제주도를 위한 아름다운 구상을 한 적도 있다. 도지사 10대 사업 중에 두 가지가 환경과 평화와 문화에 관련된 것이었다. 제 8 <생태평화유지, 환경자산의 세계화>, 제 9 <탐라문화복원, 국제문화교류 확대>였다. 이 정도 계획이라면 우리가 기대해 볼 만한 수준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도지사는 핵심사업 중에 하나를 <세계 평화 수도>를 만드는 일로 삼았다. 지금까지 제주도민이 바라던 ‘세계평화의 섬’ 사업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앞 지사가 환경 수도를 외쳤으니 자신은 평화 수도로 바꾸어 기대할 만한 세상을 만드는 듯했다.

역시 제주에는 환경과 평화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음 직하다. 그런데 갑자기 지방정권을 잡은 지 얼마 후부터 돌변했다. 강정 해군기지 사업을 방조하면서 도지사는 오직 <세계 7대 경관>에 목숨을 걸었다. 강정의 주민이 목숨을 걸고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있는데 도지사는 사기꾼의 농락에 춤을 추며 값싼 돈푼에 목숨을 걸었다.

군사기지가 들어오고 핵잠수함과 이지스함이 배치되는 것이 평화인가? 그것이 그토록 도지사가 외치던 <세계 평화수도>의 골격인가. 환경과 평화에 관한 한, 첫 사업계획은 훌륭했는데 도지사 업무를 시작하는 순간 개발논리와 토목건축 논리, 힘의 논리, 국가주의 논리에 포섭 당했다. 그래서 지역민에 바탕을 둔 지역주의나, 아름다운 자연과 환경을 지켜나가려는 환경생태주의, 힘보다는 화해를 앞세우는 평화주의를 모두 포기했다. 도덕적 타락이다.

어찌 해야 하는가. 스스로 물러나길 권한다. 그토록 도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적이 있던가. 성폭력을 용서받고 반성하면서 다시 지사가 되었지만 그 폭력성은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도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어찌 해야 하는가. 주민소환을 시작해야 한다. 지난 시절 주민을 깔보고 제왕적 권위를 누리던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은 실패했다. 시행착오를 발판으로 삼아 이번에는 반드시 주민소환을 성사시키길 기대한다.

▲ 허남춘 제주대 교수
우리는 하나이고 같다(同)고 말하는 제스처에서 우리는 국가 지도자와 도지사의 ‘지배, 억압’의 논리를 알아채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가 다르면서도 화합하는 ‘공존, 평화’의 논리를 배워야 한다. 육지와 제주가 하나이고 민족이고 국가이고 국가 안위를 위해 제주도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지배, 억압’일 뿐이다.

육지와 제주가 다르다고 인정하고, 다르면서도 화합하고 공존할 수 있는 논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고대왕국 1000년 탐라국을 대한민국 역사책에 싣지 않으면서 우리가 하나라는 논리는 허구다. 탐라국을 역사책에 올리고 강정을 이야기하라. /허남춘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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