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문학카페> 12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아침 출근길에 길옆을 보니 보리가 누릿누릿 익어가고 있다. 뉴스를 통해 청보리축제니 뭐니 하는 소식도 들었건만 눈앞에서 익어가는 보리 내음을 이제야 맡게 되다니……. 시간의 흐름도 감지하지 못하고 사는 하루하루가 문득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주말에 시간을 내어 산책 겸 도두 앞바다를 앞마당으로 두고 있는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보았다. 보리 내음이 후욱 물결을 이루며 보리밭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저기, 돌담 위에 낯익은 이가 앉아 있다. 작년에 보았던 보리밭의 파수꾼, 장끼 한 마리가 빼꼼히 고개를 들어 보리밭 사이로 스며드는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낯선 이가 나타나자 푸드덕 날개를 펴며 보리밭 사이로 금세 내려앉는다. 아름다운 밤색 광택이 좌르르 윤기 나고, 진홍색 육수(肉垂)가 햇살에 더욱 반지르르하다. 낮은 데로 얼굴을 파묻고 좌우를 살피면서 내 눈을 응시하는 장끼를 보니 파수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의젓함이 느껴졌다. 반가운 마음에 기념사진 한 컷 찍으면서 속으로 ‘홀든짱’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의 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은 J. D. 샐린저의 소설이다. 1951년에 출판되어 성장소설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컨스피러시', '에이미', '플레즌트 빌' 등에서 직․간접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케네디를 죽였다고 알려진 리 하비 오스월드가 저격했던 장소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책 1권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불온한 여러 역사적 사건과 연관되어 풍문에 오르내리기도 하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아마도 작품 속 주인공의 비행이 여러 범죄인들의 범죄를 옹호하는 변론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에서 오는 오해일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열일곱 살인 홀든 콜필드가 겪었던 경험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홀든은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한 이유로 명문 사립 기숙학교인 펜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게 된다. 퇴학 통보가 담긴 편지가 부모님에게 전달될 때까지 걸리는 며칠간을 자신의 집이 있는 뉴욕시에서 보낼 계획을 세우고 뉴욕시로 떠나게 되는데, 그 며칠간의 생활은 어쩌면 인생에서 겪어야 할 모든 부정적인 경험의 축소판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홀든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교사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전에 다녔던 고등학교인 후튼의 교장선생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주변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생각한다. 홀든의 눈에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보여지는 교장과 선생님들이 모두 가식과 허세로 가득 찬 위선자로 보였다.

부자 학부모들에게는 굽실거리고, 홀든과 같은 문제아들에게 전하는 모든 말들은 순수한 애정이 없이 형식적이고 교훈적인 말들만 늘어놓는 고리타분한 권위자로만 보인 것이다. 또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는 것도 홀든에게는 학교생활이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퇴학을 당해 학교를 떠난다는 생각에 걱정보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더 많았을 것이다. 학교를 떠난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출판 직후부터 금기의 사유들로 인하여 끊임없는 논쟁에 휩싸여왔다. 공격적인 언어의 사용, 혼전 성관계, 알코올 남용, 매춘, 동성애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들이 주인공이 버젓이 행하고 다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읽혀서는 안 되는 책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했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은, 소설은 허구적 리얼리티를 생명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학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며 무의미한 논쟁일 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아마도 제목에서 그 의도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은 로버트 번스의 서정시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나면’에서 인용되었다고 한다. 그걸 반영이라도 하듯, 주인공 홀든의 꿈은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는 것이었다.

방황하던 홀든은 결국 동생 피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집 나갔던 오빠가 잠시 집에 들른 사이 동생인 피비가 보여준 모습, 그것은 순수 그 자체였다. 어른들처럼 홀든의 잘잘못을 추궁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충고와 조언 속에는 끝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여 무릎 꿇게 하겠다는 불온한 의도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피비는 그런 불온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거리를 헤매야 하는 오빠가 안쓰럽고, 무조건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에 자기 용돈을 다 털어주면서 “나도 오빠하고 같이 갈 거야.”라고 말하는 피비의 모습에서 비로소 홀든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 누구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의 순수결정체를 동생 피비로부터 받은 것이다. 홀든을 지켜준 파수꾼은 결국 피비였다. 홀든의 방황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다음 학기를 준비하게 되었다. 물론 그 다음이 어떻게 될는지 홀든 자신도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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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 이르러 차도를 건너려고 발을 내딛을 때마다 도저히 건너편까지 건너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꾸만 아래로아래로 꺼져 내려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난 바보처럼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셔츠니, 속옷이니, 온통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엉뚱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길모퉁이에 다다를 때마다 동생 앨리(홀든의 죽은 여동생)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말아줘. 앨리, 날 사라지게 만들지 마. 앨리, 제발 부탁이야. 사라지고 싶지 않아.” 그러고는 내가 사라지지 않고, 무사히 길을 건널 때마다 앨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중략)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아.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 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홀든이 지키고 싶다던 호밀밭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밀밭은 씨앗의 꿈터다. 생명이 자라는 곳이다. 그들은 여리고 여리다. 언제 비바람에 휩쓸릴지 모른다.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보호하고 사랑해줄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파수꾼의 역할이다.

홀든이 원하는 것은 위선과 허세로 가득 찬 어른들의 세계가 아니라 동생 앨리나 피비처럼 티 없이 맑고, 시처럼 자유로운 세계였다. 그의 상상 속에서 들판 바로 옆에는 절벽이 있었다. 홀든은 그 들판에 서서, 아이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지켜 주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홀든이 어른들로부터 받고 싶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심리학자도. 그의 말을 알아들은 이는 피비였다. 피비는 아직 순수하니까.

하지만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할 테니까.” 홀든은 지난해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다보니 이제 누군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그리워진다는 건 사랑이 돌아오고 있다는 뜻일 거다.

미워죽겠다던 룸메이트인 스트라드 레이터나 모리스 같은 친구가 그립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그의 빙벽 같은 가슴도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하다. 길에서 보낸 시간만큼이나 마음고생 많았을 홀든, 질풍노도의 시기를 누릴 만큼 누렸으니 이제 자유로워질지어다.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그가 바라는 이 세계의 창조적 낭만주의자, 호밀밭의 파수꾼이 꼭 되길 바란다. 봄의 끝자락에서 보리는 무르익고, 태양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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