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의 뉴욕통신] 강정구 교수의 '통일을 위한 내전' 논쟁에 부쳐

나는 모슬포에서 해방공간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때 처음으로 화물트럭을 타고 졸업여행으로 섬마을 일주를 한 적이 있다.  한라산 넘어 우리 마을과는 정 반대쪽인 김녕이란 마을에 있는 뱀동굴을 구경했다. 음산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천정에는 뱀 비늘이 아로새겨져 있었고, 뱀 모양으로 구비쳐진 모습의 컴컴한 동굴 모습이며..

전설에 의하면, 그 커다란 뱀동굴 속에는 진짜로 그 동굴 크기의 사나운 뱀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뱀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 해마다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골라 재물로 바쳤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해 ‘목사’가 나타나서 그 뱀을 창으로 찌르고 장작불로 태워죽였단다. 그 목사는 미리 준비해둔 돛단배를 타고 큰 바다로 도망했지만 풍랑을 만나서 수장되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국가보안법'은 한반도라는 터밭에서 김녕 뱀굴의 구렁이처럼 군림해온 ‘살인독사’다. 그 악독을 한 창 뿜어대던 1950년 7월에는 수 십만 명의 민중을 집어 삼켰다. 대구에 가 보면 대구 형무소에 억울하게 갇혀 있던 소위 ‘정치범’들 1,402명이 7월 한 달 동안에 그 독뱀이 집어삼킨 기록이 있다. 게 중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 형을 받은 자도 집어 삼켰더라.

대전에서는 7월 초에 1,800명을, 전주에서는 7월 중순에  1,600명을, 부산에서 기천명을…제주에서는 1천 여명을…그외 김천, 경산, 마산, 포항, 광주, 목포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재물로 사라졌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한국전쟁을 좌익과 중도파를 일시에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이승만이 지향하는 국책은 바로 ‘북진통일’이요, ‘멸공통일’이었다. 결국은 한반도 전체에 이승만 만년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은 분명히 ‘내란’(Civil war)이었다. 바로 ‘통일을 위한 내전’이었다. 여기에서 북침이냐 남침이냐는 커다란 이슈가 되지 않는다. 남과 북이 모두 ‘전쟁을 불사’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부산까지 쫓겨 도망쳤던 이승만은 38선을 넘어 진격하는 그 날을 기념하여 ‘국군의 날’로 정했을까를 곱씹어보면 ‘북진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평양까지 진격해 들어 갔을 때는 정말로 환희를 맛보았을 것이다.

중공군이 개입하고 1.4후퇴란 고배를 마시자, 그는 정전협정 비준을 반대하고 방해공작을 일삼았다. 결국은 협정비준 당사국이 아니란 이유로 판문점에서도 오늘날까지 푸대접을 받고 있다. 북미회담은 있을지언정 남북미 3자회담은 없다.

정전 이후에도 이승만은 호시탐탐 ‘북진, 멸공통일’을 꿈꾸고 있었다. 당시 미국무성 장관 Dulles는 여러차례 이런 사실로 인해서 고민하였다. 1954년 9월 27일 이승만은  주한 미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화가 나서 “통일이 전연 안되는 것 보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치하에서 통일되는 것이 나을 뻔 했다”고 했다.

Rhee appears depressed and uncertain about which way to turn. He told Ambassador Briggs on 27 September that the time had come for South Korea to “decide its own course,” but added no decision had yet been made. Later he said South Korea was in “great peril” and that unification under Communists was, perhaps, better than no unification at all. [Situation in Korea, NSC BRIEFING, Top Secret, 1954. 10.4; 10.5; 2000년 8월 30일 공개된 CIA 문서에서]

최근 동국대 사회과 강정구 교수는 한국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일으킨 통일전쟁이다”라고 여러가지 근거를 가지고 주장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고 경찰의 조사를 서너차례 받고 있고 곧 구속 기소될 것이란 암울한 소식이 이곳 내가 사는 미국에 까지 들린다.

2년 전에는 송두율 교수 서울 입성으로 인해서 온 세계가 벌집 쑤셔놓은 것 같이 시끌벅적했는데, 그래서 많은 양식있는 이들은 ‘죽은 국보법이 산 송두율 죽인다’고 아우성이었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으로 5-6꼭지의 글도 인터넷 매체에 올리고 그가 서울구치소에 구금되자 석방탄원을 미국과 케나다에서 주도한 바 있다. 지금도 그 때의 ‘악령’이 도지는 것 같아 안절부절이다.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면 지금 강 교수를 고발한 소위 ‘극우 보수파’ 인사들은 나를 고발할 수가 있을까? 즉, ‘한반도 전쟁은 남한 지도부가 일으킨 통일전쟁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강 교수가 주장한 테제와는 정반대의 반테제인 셈이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이승만은 좌익과 중도파들을 제거하려고 한국전쟁 2년전부터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해 왔다. 그게 바로 제주4.3사건이었고 김구를 비롯한 정적 암살사건들이었다. 이게 바로 ‘내란’이요 ‘내전’의 시작인 셈이다.

해방 후, 일제가 지어 놓은 감옥은 텅 비어 있어야 했을 텐데, ‘정치범’들로 가득차고도 넘쳤다. 그 숫자는 3만명이 넘는다. 그 ‘정치범’들은 한국전쟁때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조사한 바로는 90% 이상이 '국가보안법'의 재물로 희생되어 이름도 모를 산골에 또는 대해에 암매장되거나 수장되었다. 이승만은 한반도 전쟁을 확실하게 자신의 정적들을 ‘멸공’하는데 철저하게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이 확실하게 밀어준 ‘참여정부’는 미적미적 거리는 바람에 아직도 '국가보안법'은 죽지 않고 꿈틀거리면서 죄없는 생사람을 그 꼬리로 치고 있다. 이번 가을 정기국회에서는 그 독사뱀을 확실하게 죽여 주기를 희망한다. 그게 바로 커다란 개혁의 시발점이 되고 또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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