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이 만난사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문제제기 오옥만 제주도당 공동위원장

▲ 4.11총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9번으로 나섰던 오옥만 제주도당 공동위원장. 비례대표 부정선거 파문속 침묵을 지켜 온 그녀가 50일만에 입을 열었다. ⓒ 제주의소리
“너무나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이 없죠. 죄를 지었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환골탈퇴하고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기다려야죠. 개인적으론 담담합니다. 당 문제가 아직도 질질 끌고 있는 게 너무 답답할 뿐입니다.”

오옥만 통합진보당 제주도당 공동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4.11총선 이후 50일만에 언론과 만났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심에 서 있는 탓에 말하나, 단어 하나가 조심스러웠고 민감했다. 하고 싶은 말, 가슴속 깊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확 끄집어내고 싶었지만,  그 발언에 ‘뭔가 있는 게 아닌지’ 오해 아닌 오해, 괜한 추측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성명부에서 2위로 밀려나자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냐’ ‘1~3번 비례대표가 사퇴하면 오옥만이 받게 되는 게 아니냐’는 오해는 죽기보다 싫었다. (오옥만 위원장과 인터뷰를 한 다음날인 1일에도 이정희 전 대표는 당 진상조사특위에 나타나 "이번 (부정경선) 사건의 본질은 오옥만 후보가 윤금순 후보에게 역전당한 것"이라 말했다.)

현장투표는 물론 온라인투표에서 광범위한 부정 부실선거가 이뤄진 사실이 밝혀졌고, 그 문제를 다룰 중앙위 회의가 폭력으로 얼룩졌을 때도 그녀는 침묵했다. 중앙당 근처에는 아예 가지도 않았다. 억울함으로 치자면 지나가는 이는 붙잡고 하소연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부정 부실선거가 일부 후보 문제를 넘어 당 전체 문제임을 확인하는 순간 개인적 뜻은 모두 접었다.

오옥만 위원장은 비례대표 경선에 부실.부정선거가 개입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3월21일 당 공동대표단에 “비례대표 9번 반납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정희 후보 문자파동, 성남중원 성추행전력자 공천파동 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자 당 지도부는 ‘4.11총선 후 진상조사’를 전제로 유보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그녀는 당을 위해 4.11총선을 뛰었다.

오 위원장은 마음속으로 이미 던진 지 오래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를 지난달 29일 사퇴했다. 그리고 31일 <제주의소리> 인터뷰에 응했다.

“진보정치요? 간혹 ‘왜 내가 이 길을 왔을까’란 생각이 스치지만 다시 그 시점이 오면 똑같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나에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인 셈이죠.” 그녀의 답변은 확신에 찼다. 민중가요 그룹 꽂다지가 1집 「민들레처럼」에서 부른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 노래를 들을 때 그 느낌처럼.

“지지해 준 국민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석고대죄하고 기다릴 뿐...”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14명 중 9명이 사퇴했다. 오옥만 제주도당 공동위원장도 사퇴했다. 물론 아직 사퇴를 거부하는 국회의원, 후보도 있다. 현재 심경은 어떤가.

“먼저 국민들, 제주도민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미안하다.  진보정치를 믿고 희망을 꿈꿔 온 지지자들에게 좀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하는데 우리가 보여준 건 오히려 국민들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다. 너무 미안하다. 4.11총선이 끝난 지 50일 정도 됐다. 개인적으론 아주 담담하다. 그런데 당이 아직도 명쾌하게 정리가 안 되니 너무 갑갑하다.”

-통합진보당 문제는 워낙 많이 뉴스에 알려졌다. 그래도 아직도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라고 믿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한데,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나.

“3월 14~18일 비례대표 경선 투표를 하고 오후6시에 마감하면 상식적으로 오후8~9시 개표 완료돼 발표된다. 나는 그때 지지자들과 함께 제주에서 발표를 기다렸는데 이게 밤 9시, 10시, 새벽 3시가 되도록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현장투표와 선거인명부와 온라인투표 숫자가 맞지 않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온라인과 현장투표를 함께 했기 때문에 맞추기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19일도 20일도 발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뭔가 일이 있구나’ 생각하고 20일 오후 선거대책본부 임원들과 올라갔는데 선관위에서 무효처리하겠다는 7개 지역 현장투표를 보니 굉장히 심각한 선거부정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에 올라가기 전까진 부정선거가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나. 

“당원 7만5천명 중 53%가 투표했기 때문에 행정이나 실무과정에서 착오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실한 과정이 있다 하더라도 행정의 효율성이나 착오적인 것, 혹은 상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범위의 실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확인과정에서 좀 놀랐다. 21일 오후 6시 선관위가 발표했는데 온라인투표에서 내가 290표 가량 많아 1위가 됐는데, 현장투표에선 7개 지역 무효화시키고 나서도 총누계로 154표 차이로 여성명부에서 2위가 되면서 비례순위가 9위로 밀려났다. 우리는 현장에 대한 검수가 필요하다 생각해 몇 개 지역을 찍어서 검수요청을 했다. 7개 무효한 곳과 비슷한 사례가 다른 지역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실제 그랬고, 온라인도 소스코드를 열어 본 문제도 나중에 알게 됐다.”

▲ 오옥만 통합진보당 제주도당 공동위원장. 그에게 3월20일은 자신의 정치적 꿈, 대한민국 진보정치 꿈이 다 날아가 버린 날로 기억된다. 비례대표 경선부정.이정희 문자파동.성추행전력자 공천파동이 이날 한꺼번에 터졌다. 그 때 통합진보당, 진보정치는 침몰을 시작했다. ⓒ 제주의소리
- 현장 투표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나.

“이미 진상조사 결과에도 나와 있지만 쉽게 말하자면 당원 선거인명부가 ㄱㄴㄷ순으로 돼 있고 참관인 2명은 투표한 선거인명부에 서명을 하는데 하루는 ㄱ 이름으로 시작되는 당원이 줄줄이 투표하고 참관인 A씨만 서명하고, 다음은 ㄴ으로 시작되는 당원만 투표해서 여기엔 B 참관인 서명만 됐다. 현장에서 실제로 이럴 순 없다. 강씨, 박씨, 이씨, 현씨 등이 한꺼번에 투표하는데 어떻게 ㄱ, ㄴ 순으로 투표가 가능한가. 유사한 당원서명이 계속 나오고 아예 참관인 서명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또 진상조사과정에서는 투표용지가 5~6개씩 묶여있는 투표용지도 나왔다.”

“3월20일은 내 정치적 꿈, 대한민국 진보정치 꿈이 다 날아가 버린 날”
비례대표 경선부정.이정희 문자파동.성추행전력자 공천파동..한꺼번에 터져

- 진상조사위 발표 이전에 오 위원장이 제기한 사례만 보더라도 그때 이미 현장투표에서 상당부분 문제가 있단 걸 알았던 것 아닌가. 
 
“선관위에 그날(20일 오후6시) 바로 이의제기를 했고 검수작업에 들어갔다. 증거자료 사진도 찍었다. 21일엔 선관위에 ‘무효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이의제기 했다. 나는 국회의원에 대한 꿈과 의지가 있었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그 꿈이 무산되는 순간이기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미 조준호, 심상정,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가 이 문제에 회의를 갖고 우리들을 만나자고 해서 윤금순, 나, 이영희, 노학래 후보 넷이 함께 만났다.”

- 당시 대표단 입장은 뭐였나.

“대표단은 ‘지금 진상 조사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23~24일이 비례대표 후보등록일인데 이틀 앞둬 진상조사에 들어가면 이번 총선은 하나마나한 선거가 될 것이다. 비례대표뿐만 아니라 지역구 후보 모든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 사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건 그날 관악을 선거구에서 이정희 후보 문자파동, 성남중원선거구에서 성추행전력자 윤기석 후보 파문이 불거진 날이었다. 또 청년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이 동시에 터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다. 지금사건이 그 때 생겼다면 총선 치를 수 있었겠나. 아니다.  관악을 문자사건 하나로도 국민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심판받을게 자명한 일인데. 지금과 같은 사태가 그때 생겼다면 총선은 도저히 치를 수 없었다. 대표단은 ‘지금 진상조사를 시작해서 선거를 하지 말던가, 선거이후에 진상조사를 하되 선거 끝날 때까지는 (문제제기를) 유보하라’는 두 가지 중에 선택할 것을 제안했다.” 

-당 관리소홀로 빚어진 부정선거 문제를 당이 책임 있게 처리하는 게 아니라 문제제기한 후보에게 되레 진상조사 결과 이후에 벌어질 문제까지 거론하며 해법을 선택하라는 건 책임회피 아닌가. 뒤집어 보면 문제는 있지만 선거를 치러야 하니 참아달라는 거 아닌가.

“그러긴 한데 대표단에선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 그 때 오 위원장의 선택은 무엇이었나. 결과적으로는 ‘先총선, 後 진상규명’이었지만.

“내가 공동대표단에게 이야기 한 건 ‘비례대표 후보등록 이틀 남은 지금 진상조사하고 총선후보 등록할 물리적 시간이 없다. 그럼 나는 9번을 던지겠다. 후보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시 두 가지를 고민했다. 공당으로 마땅히 정당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하는 선거가 그렇지 못한 측면에 대한 분노와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내 꿈이 좌절되는구나 하는데서 온 분노가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를 접는다면 공적인 시스템이라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총선이후에 진상조사를 하되 그 결과에 대해선 사퇴까지 포함한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진다’는 약속을 전제로 선거 이후 진상조사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날 비례대표 9번은 던졌다. 공당시스템 개선위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 문제를 제기한 상황에서 4.11총선에 돌입했다. 그 때만해도 9번 당선 가능성을 봤나. 

“선거이후에 진상조사를 하자고 했을 땐 당락에 관계없이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겠다는 분노가 강했었다. 나 개인이 아니라 함께했던 모든 지지자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선거기간에 그 문제를 묶어둘 순 없었으니 선거에 몰입하자는 뜻에서 제주도에 내려와 비례대표 운동을 했다. 9번이 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예전 2004년 현애자 위원장이 7번 받을 때는 ‘탄핵’국면이었고 민노당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진보정당을 찍겠다는 ‘후보는 당선가능한 후보를 당은 진보정당을 찍겠다’는 진보적 성향 국민들이 많이 밀어줬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 지지율이 6~8% 되던 당이 갑자기 17~18%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12~13%, 7번까지는 되지 않겠나 예상했다. 선거운동을 하다보면 혹시나 하는 기대는 있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즐겁게 하자, 선거를 그렇게 치렀다.”

▲ 오옥만 통합진보당 제주도당 공동위원장. 당 비례대표로 4.11총선에 나서 당을 위해 뛰어다녔지만 부정선거 실체를 확인한 오 위원장은 이미 마음속으로는 3월20일, 비례대표 9번의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 제주의소리

-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건, 도덕을 생명으로 하는 진보정당에서 부정선거가 치러질 수 있느냐가 첫 번째였고, 더 놀라운 건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당권파들이 보여준 패권적이고 폭력적인, 안하무인격 태도였다. 폭력사태가 벌어진 중앙위 현장에 있었나.

“없었다. 제주에 있었다. 그렇지만 인터넷 생중계로 중앙위에서 벌어진 장면을 계속 봤다.”

- 우리도 봤는데 국민들이 보기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너무 충격이었다. 물론 서로가 합의될 수 없는 문제였기에 제대로 회의가 진행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실 부정선거라는 것을 인정하고 후보들이 사퇴, 공동대표단 전원사퇴를 하면서 대국민에게 사과하고 환골탈태하자는 입장이 강했다. 그런데 당권파에선 구체적으로 조직적으로 부정선거와 연계됐다는 어떠한 물증도 없지 않느냐며 반론을 제기했다. 진상조사보고서가 완벽하진 않지만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상당히 광범위하게 부실 부정 선거가 있었고, 그 누구도 거기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비례대표 순위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사퇴를 포함한 모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지만 당권파에선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직적으로 회의,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걸 계획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폭력적 사태까지는 생각 못했고 우발적으로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 당권파도 총체적 부실, 부정은 아니라도 문제가 있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진보정당의 관행’ ‘노동운동의 관행’이라고 변명한다. 옛 민주노동당 분당 배경에는 종복문제도 있었지만 실제는 당권파의 패권주의, 선거부정 등의 문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중에 온라인이나 당원 게시판을 통해 올라온 자료를 보니 2006년 민주노동당 당대표 선거에서 부정선거로 검찰 조사까지 갔었다. 기각됐지만 그게 분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당시 밖으로 드러날 땐 종북문제와 노선의 차이로 이해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부의 부정선거로 인한 대립과 싸움이 아주 격렬하게 일어났고 ‘이건 진보정치가 아니다’라며 반발해서 탈당파들이 나갔다.”

“당권파, 정파 보위가 어떤 가치보다 우선...굉장히 진부하고 오만한 생각”

- 비례대표 부정경선은 당 내부문제를 떠나 국민의 참정권을 사실상 빼앗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기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않고 있다.

“특징이 우선 자기네 정파, 조직을 위하자는 생각 같다. 같은 뜻을 가진 동지 내지는 당원에 대한 보위를 하려는 게 어떤 가치보다 우선 두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문제를 굳이 이해하려 한다면 분단국가 국가보안법체제 하에서 정치적 사상적으로 자유롭게 논쟁하거나 토론할 수 없는 오랜 기간이 흘렀고,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며 오랜 시간 강력한 결속력으로 헌신하고 희생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함께 해 온 신념이 폐쇄성을 낳았고,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진부하고 낡은 사고가 됐다. 시대에 맞게 바뀌고 국민과 소통하는 공당의 입장에선 당원과 국민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자기들이 추구했던 정파의 가치와 사상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만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문제다.”

- 보위라고 하는데, 민주국가에서 보위란 국민들이 투표로 지켜주는 것이다. 국민이 아닌 그들 스스로 지킨다는 생각은 국민 위에 있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 대단한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 오만한 거라고 생각한다.

- 70~80년대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비합법적 운동을 할 때도 높은 도덕성은 늘 강조돼왔다. 당권파가 정말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예전에 2차 세계대전 와중에 밀림 속에 피해있던 군인들이 종전 수십년이 지난 후 총 들고 나와선 세상이 바뀐 걸 보고 너무 놀랐던 상황을 아주 오래전에 기사로 접한 적이 있다. 그런 것처럼 자기들만의 리그 안에 너무 갇혀있던 건 아닐까. 국민과 소통하고 눈높이에 맞추고 정책 의제별로 검증받아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했다.”

- 문제가 심각한 건 당권-비당권의 문제가 아니라, 20여년 만들어온 대한민국 진보정치가 죽어가고 있다는 거다. 지지자들이 안타까워하는 건 그거다.  

▲ 속 마음을 꺼내야 하는 힘든 인터뷰 속에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은 오옥만 위원장. 그는 이번 사태로 20여년 쌓아 온 진보정치가 절망의 늪에 빠지고 12월 대선 승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를 가장 가슴 아파 했다. ⓒ 제주의소리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다. 220만 우리를 지지해준 10.3% 국민들, 통합진보당을 찍어준 많은 이들, 이 땅에서 진보정치를 꿈꾸고 희망으로 바라봤던 많은 이들을 절망의 늪에 빠져들게 하고 정치적 냉소주의 허무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죄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하고 죄송하다. 또 하나는 정권교체를 앞두고 야권연대 한 축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며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멀어지는 것 같아 이것이야 말로 야권 전체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보의 꿈 절망 빠뜨린 게 가장 큰 죄...성찰하고 반성해야 12월대선 맞을 수 있어”

- 4.11총선에서 비록 야권이 패배했지만 12월 대권 길목에서 약이 될 수 있다고 위안이 있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지자 정말 이러다 또 다시 패배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부정선거 부실선거를 이야기 할 때 이 문제를 진상조사 해서 순위가 제대로 됐는지에 대해서 일차적으로 해야겠지만 이런 것들을 공개함으로서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고 이 문제를 풀어헤치고 거기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 사과하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국민들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12월 대선 가는 국면에서 서서히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기간, 검찰까지 가는 과정이 올 거라곤 전혀 생각을 못했다. 정치를 한다는 게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면서 우리 안의 논리와, 정파적 이해관계만 갖고 버티고 있는 게 아닌지 국민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 많은 이들이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떻게 만들어온 진보정치, 진보정당인데 이처럼 무너지게 놔 둘 수 없다. 들어가서 고치자며 ‘진보 시즌2’를 이야기 한다.

“당내에도 박원석 의원 중심으로 ‘새로나기’ 혁신 과제를 발굴해 나가는 움직임이 있고 밖에서도 진중권 교수도 힘을 보태자는 글도 많이 쓰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도 많이 올리고 있다. 정태인 원장은 들어오셨다. 너무나 감사할 일이다. 사실 또 그렇게 돼야할 일이다. 진보를 희망하고 꿈꾸는 이들이 밖에서 박수하고 지지해주는 것도 고맙지만 정당 안에 들어와 가치와 혁신을 함께 힘을 보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당이 이러하니 선뜻 들어오시라고 말을 못하는 거다.” 

- 지금 시대, 진보의 재구성 진보시즌2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우선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 노동자 농민 영세상공인 서민층뿐만 아니라 진보를 희망하고 꿈꾸는 광범위한 시민들이 함께하는 진보정치로 가야 한다. 우리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노동자, 농민이 갖고 있는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예전에 있던 사람들이 이미 다원화 됐고 계급 계층은 계속 분화되고 있다. 한 사람이 여러 직업군을 가질 정도로 다원화 다양화 된 사회다. 어느 한 부분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세상이 이미 왔다. 그렇기에 진보를 꿈꾸는 시민들이 함께 해야 할 때다. 열악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조금 더 변혁적이고 개혁적인 의제를 다루고, 다원화된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 그게 현대적 정당의 모습이라고 본다. 80년대 가졌던 낡은 틀, 습관들, 관행들에서 고쳐야할 부분이 무엇인가. 혁신이 무엇인가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 가치지향이 늘 올바른가의 문제, 그리고 조직운영방식의 혁신, 정당의 문화 혁신 이런 게 필요하다고 본다.”

- 통합진보당의 든든한 중심축인 민주노총은 지금의 사태가 ‘노동계급이 중심에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여전히 당내에 간극이 있어 보인다.

“그런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또 그런 생각을 존중한다. 한꺼번에 변화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정당 역사 속에  민주노총 농민회가 굉장히 중요한 원동력이 됐고, 조직적 기반이었기에 그 힘을 얻는 건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정당과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만 그 생각 외에 얼마나 외연을 확대하고 시민들이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진보정치로 거듭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숙제다. 진보가 지향해야 할 부분이다.

“함께 하면 행복하고 같이 있으면 계속 있고 싶은 그런 따뜻함이 진보정치”

- 진보정치가 과연 대중정치일 수 있는가. 아직도 진보정치하면 일반 대중들과 거리감이 있게 느껴진다. 

“보통 진보하면 일반인들이 좀 무서워한다. 사실 진보가 추구하는 건 따뜻함이다. 열악하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고, 남들이 비겁해서 용기 있게 나서지 못하는 걸 해결하려고 문제제기하고 고쳐나가려고 한다면 본질은 ‘따뜻함’이다. 함께 하면 행복해지고 같이 있으면 계속 같이 있고 싶은 이런 문화라야 하는데 상당히 배타적이고 뜻이 같지 않으면 멀리하고, 목적이 올바르다 생각한다면 수단이나 과정은 무시하고 이런 게 진보정치 내부에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 오옥만 통합진보당 제주도당 공동위원장 ⓒ 제주의소리

-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공당에서 ‘애국가’에 관한 문제, 북한에 대한 인식의 문제, 이들 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부분에 답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진보-보수를 떠나 당연히 그렇게 가야한다고 하는 것을 진보정치는 가지 않고 대답요구도 외면해 버린다.

“애국가 문제는 중요하냐 중요하지 않냐를 떠나 국민과 소통하는 정당으로서 의례로서 해야하는 게 맞다고 본다. 같은 정당 안에 있으면 북한관에 대해선 별로 느끼지 않는다. 늘 토론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 보수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북한관이 심각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언론에서 지나치게 색깔 공세를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이젠 국민들 민도가 상당히 높아졌고, 바르게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은 그런 생각이나 사상적 자유가 있기에 누구나 북에 대한 생각은 각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공당이고, 공직자고, 공인이기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생각과 그런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 오옥만 도당위원장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서 국민참여당-통합진보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최근 사태를 겪으면서 이 힘든 길을 왜 왔는지 후회 해 본적은 없나.

“비례 9번 받아서 출마의 변을 이야기할 때 상당히 절망적인 기분으로 열변을 토한 적이 있다. 옛 국민참여당 내에서도 혁신과통합을 통해 민주당과 통합을 꾀한 한 축이 있고, 반대로 통합진보당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진보정치 하는 분들에게 늘 마음의 빚진 불편한 생각이 있었다. 그들이 FTA반대, 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에 헌신하는 걸 보면서 그들이 뭐하고 하지 않아도 마음이 늘 불편했다. 예전엔 함께했던 친구들 선후배들인데 그들이 풍찬노숙하는 걸 보며 나면 편히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또 하나는 당이 기간당원제에 기초해서 운영하는 상향식공천이라던가 민주적 운영원리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선거구제에서는 새누리당 아니면 민주당밖엔 없다. 1번 아니면 2번이인데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한국사회에 있다면 참 좋겠다,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앞으로 몇 년 내에 된다면 멋있게 진보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에 이 과정을 거치면서 ‘왜 내가 이 길을 왔을까’란 생각도 잠깐 스쳤지만, 다시 또 그 시점이 오면 다시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결국 나에겐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었다.”

“진보정치의 외연을 넓히고 혁신의 도두로 쓰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

- 6월말 7월초에 당지도부 선출이 있고, 도당 당원대회가 있다. 위원장에 나설 것인가.

“아니다. 도당위원장에 출마하지 않을 생각이다.”

- 개인적으론 앞으로 어떤 일정이 있나.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정당 일정에 맞춰 혁신비대위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응원하고 힘을 실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당 공동위원장으로 이 일을 잘 추스르고 마무리 해야겠다 우선은 그 생각이다. 그 다음엔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려 한다.”

-오옥만 위원장이 꿈꾸는 앞으로 하고 싶은 정치는 뭔가.

“지지자들과도 이런 이야길 많이 했다. 이번 19대 국회가 굉장히 중요하다고...남북통일 문제 단초를 만들어내는 것, 국제관계에서 한반도의 위상을 제대로 세우는 것,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게 19대 국회의 굉장한 숙제라고 여겼다. 또한 검찰 개혁에 대한 고민,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해결도 하고 싶었다.
또 2014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면서 진보정치를 하겠다는 이들의 경우 경력관리나 기타 다양한 인적네트워크를 강화시키는 게 약하다. 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함께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분들이 지역에서 제대로 역할을 맡을 수 있게끔 도와주거나 함께하고 싶다. 사회적기업이나 연구소 포럼을 만들어 지속적인 정책의제를 만들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3년간 쌓은 전국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진보정치의 외연을 넓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나의 생각을 정리한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전국적으로 저에게 5300표를 줬고, 지지하고 응원해준 여러 당원들이 있고 내가 또 진보 정당의 혁신의 한 도구로 쓰여 진 측면이 있다면, 또 앞으로 쓰여 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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