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신 백주 '붉은 별 이과두주' ⓒ양기혁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11 일본인 친구와 야시장 나들이

방의 불을 끄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일요일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하고 모래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온다. 호텔 앞에 늘어선 식당 중에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소주를 한잔하고 싶었지만 소주가 없으니 대신 비슷하게 생긴 중국 백주(白酒) 조그만 병 하나와, 안주로 메뉴판에서 수육처럼 보이는 것으로 주문했다.

‘뤼로우’라고 했다. 양로우(羊肉, 양고기), 니우로우(牛肉, 소고기), 주로우(猪肉, 돼지고기), 지로우(닭고기)는 알겠는데, 뤼로우는 뭔가? 메뉴판을 들고온 사장은 영어로 당키(donkey)라고 말하고, 다시 스몰 호스(small horse)라고 보충 설명을 해 준다. 당나귀를 말하는 것이다. 김치와 비슷한 쓰촨파오차이(四川泡菜)를 한 접시 더 시켰다.

몇 해 전 제주도 승마장에 말 타러 다닐 때, 승마회원들과 몇 번 말고기를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말고기와 맛이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고기위에 얹어진 채소는‘샹차이(香菜)’라고 하는데 보통의 한국 사람들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중국음식 에서 흔히 맡게 되는 그 향이었다.

바이주를 술잔에 따라 당나귀고기 안주에 몇 모금 마셨는데, 아무래도 술이 너무 독한 것 같았다. 나는 그제서야 술병의 라벨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새삼스럽게 놀랐다. 라벨에 쓰여 있는 알콜 도수는‘五十六度’였다.

여종업원을 부르자 가까이 있던 사장이 왔다. 나는 술병의 알콜도수를 가리키며 그에게 외쳤다.

“타이까오(太高)!”

술이 너무 독하다는 말에 그도 바이주는 독한 술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맥주를 한 병 갖다 달라고 청했다. 맥주에 바이주를 조금씩 덜어서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유행처럼 맥주와 소주를 섞어‘소맥’을 만들어 마셨는데, 이것은 바이지우(白酒)에피지우를 섞었으니, ‘바이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내가 마신 백주 '붉은 별 이과두주' ⓒ양기혁

술기운이 올라서 그랬는지 머나먼 한국에 있는 아내와 친구에게도휴대폰으로 둔황에 와 있는 나의 모습을 전했다. 당나귀고기와 쓰촨파오차이는 거의 남기고, 반쯤 먹은 바이주는 뚜 껑을 잘 닫아서 주머니에 챙기고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근처 가게에서 혹시 다이스케가 일어났으면 같이 한잔할 생각으로 캔맥주와 과자, 내일 아침 식사로 컵라면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이스케는 이미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탁자 위에 짐을 잔뜩 꺼내놓고 뭔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도 오늘 모래바람 속에 종일 돌아다닌터라 샤워를 하고, 신었던 양말도 빨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배낭 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들을 꺼냈다.

1홉짜리 플라스틱병에 든 한라산 소주, 참치샐러드 통조림, 한 끼용 포장김치. 포장김치는 며칠새 공기가 가득 들어간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다이스케에게 한국 제주도 술이라면서 한잔 권했다. 그는 지금 목 상태가 안 좋아서 조금 맛만 보겠다고 한다. 우리는 같이 건배를 하고 서로의 얘기를 했다.

그는 46세로 일본 요코하마에 산다고 했다. 얼마 전 직장을 잃었고, 지금 중국 여행은 일주일째인데 6월까지 아마도 앞으로 두 달간 중국 여행을 할 생각이라고 한다. 내가 결혼을 했느냐고 물어보자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진 지 좀 됐다고 한다.

어쩐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다니는 그에게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할 때 느꼈던 애절함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짙게 배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체로 일본사람들의 영어발음이 좋지 않은데 그의 영어가 유창하고 발음도 좋다고 칭찬하자,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terrible!”하고 외쳤다. 일본인의 영어발음이 ‘테러블’하다는 것이다.

그는 영어공부를 위해서 런던에서 3년을 살았으며, 지금은 영어가 직장생활이나 자유로운 여행에 매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오래전 젊은 20대 시절에 부산에서 음식점 서빙 같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국에 대해서 좀 알고 있으며, 한국 친구가 좀 있는데, 서울주변에 산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한글 글자가 하나 있다면서 내 수첩에 ‘아’라고 썼다. 내가 거기에 한 획을 더하여 그에게 보여주 며‘야’라고 했더니 그가 따라서 발음한다. 그리고 다시 받침‘ㅇ’을 써서‘양’이라고 하자 그가 또 따라서 발음했다.

“This is my family name.”

내가 그의 수첩에 써준 내 이름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이제 아는 한글이 두 개 더 늘었다.

다이스케는 시장기를 느꼈는지 야시장에 가봐야겠다고 한다. 나도 가보고 싶으니 함께 가자고 해서 우리는 같이 호텔을 나섰다. 어두워진 거리는 인적이 끊어지고, 상점들의 불빛만 희미하게 비치는데, 짙은 안개가 도시를 감싼 것처럼 모래안개가 휩쓸고 지나간다.

다이스케는 즐거운 회상에 잠긴 듯 계속하여 오래전 부산에서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들려주려고 애썼다. 막걸리 먹었던 일, 보신탕을 먹었던 일, 소주를 너무 많이 먹어서 정신을 잃었던 일 등. 그러나 많은 것을 몸짓으로 표현해야 했고, 그의 말의 대부분을 나는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주는 정도의 반응만을 보낼 수 있었다.

거리에 인적이 없는 데 비해서 시장 안은 꽤 사람들이 북적였고, 식당들이 불을 밝히고 있어서 활기차 보였다. 다이스케는 낮에 보아둔 한국식당이 있다면서 구석진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자리에 앉자 다가온 청년에게 나는 중국어로 몇 마디 물었다. 그는 한국사람이 아니고 중국인으로, 식당주인이었는데, 지린(吉林)에서 한국음식을 배웠다고했다.

그의 무뚝뚝한 태도와 분위기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다이스케는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고 해서 그곳을 나왔다. 우리는 좀더 넓고 밝은 분위기의 식당에서 양고기 요리를 시켰다. 그는 내가 중국어를 아주 잘한다고 치켜세웠고, 나는 그저 초보수준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내가 그의 머리 스타일과 차림이 1970년대 히피를 연상시킨다고 말하자 그는 미소를 띠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처음 먹는 양고기인데 맛이 괜찮고 먹을 만했지만 나는 고기 몇 점과 국물을 조금 먹었을 뿐 거의 먹지 못하고 있는데, 그는 배가 고팠는지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음식값 40원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뒤따라나온 그는 손에든 20원을 나에게 내밀었다. 내가 웃으며 저녁식사를 사고 싶다고 하자 그는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인사까지 하였다. 우리는 다시 모자를 눌러쓰고, 옷깃을 여미며 모래바람 속으로 돌진했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몹시 피곤했다. 어제 거의 잠을 못 이룬데다, 오늘은 종일 관광지를 다니고 바이주와 한라산 소주의 취기도 있었다. 그가 침대에 오르는 것을 보고 말했다.

“Are you sleep now?”
다이스케가 나를 돌아보며 확인하듯이 물어본다.
“Do you sleep now?”
“Yes.”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고, 다이스케는 벽의 전등 스위치를 내렸다. 어둠 속에 누워서 뭔가 내가 잘못 얘기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Are you sleep now?”라니, 일반동사의 의문형이 ‘Do’로 시작하는 것은 영어를 처음 시작할 때 배우는 것인데, 영어를 책으로 오래 공부해도 실전회화에선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노자는 어쩌면, 필자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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