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할 길이 멀지만 늦지는 않았다
가야할 길이 멀지만 늦지는 않았다
  • 강은미 (-)
  • 승인 2012.06.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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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의 문학카페> 14 스탕달의 '적과 흑' 

   

교정에 산딸나무가 피었다. 몽올몽올 꽃봉오리가 맺히는 모습을 여러 날 지켜보았다. 비오는 날이 잦아서 꽃이 피기도 전에 봉오리가 떨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뭇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하지만 자연은 순리에 거스르지 않는 법, 6월의 햇살에 산딸나무 꽃이 뽀얀 웃음으로 활짝 피어 오가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아, 6월이구나! 하늘이 내린 백미白米, 두 손으로 듬뿍 받아 안고 비어가는 마음의 창고에다 차곡차곡 쟁여두고 싶다.

요즘 청소년 대상의 인문학 강좌가 여기저기서 한창이다. 필자도 그 중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오감훈련을 먼저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이곳에 오면서 본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 것도 본 게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눈을 감고 이곳까지 왔구나."고 혼잣말처럼 했더니, 그런 걸 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무엇이 우리 눈을 가로막고 있을까?"하고 다시 물음을 던지니, "공부 때문에요."라는 대답을 한다.

공부 때문에, 일 때문에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새가 부르는 노래를, 바람이 곁눈질하고 가는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게 누구나의 현실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는 걸까를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우리는 왜 공부하는 걸까?"하고 물었더니, 코웃음을 친다. 몰라서 묻는가, 그마저도 사치스런 질문이라는 뜻이다.

학생들에게 꿈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하나같이 의사, 검사, 변리사, 교사 등 등 '사'자 돌림으로 적어냈다. 그들에게 꿈은, 희망직업을 뜻하는 것이며 그것은 의사가 되고 검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 꿈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에 숨이 막혀온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데,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이 그것뿐인가. 그것만이 가치 있는 일인가.

이런 숨 막히는 천편일률적 사고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마치 출세 길이 군인이 되거나 성직자가 되는 길밖에 없었던 19세기 초, 프랑스 왕정복고 시대를 연상케 한다. 그러한 시대의 편향된 가치로 인해 한 개인의 욕망이 높은 곳으로만, 높은 곳으로만 향하다가 끝내 추락하게 되는 현실을 그린 작품이 있다. 바로 스탕달의「적과 흑」이다.

「적과 흑」은 1829년 실제로 프랑스에서 있었던 사회성이 강한 치정 사건, 라파르그 사건과 베르테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단순한 정치소설이나 연애소설이라기보다는 왕정복고라는 반동적인 정치형태의 사회에서 살았던 스탕달의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 소설이다. 여기서 '적'은 군대, '흑'은 성직자의 길을 암시한다.

이 작품이 쓰인 시기는 정국이 실정과 부정, 혼란으로 점철되면서 권력을 쥔 군인과 성직자들의 아귀다툼이 절정을 이루었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원성과 반발은 극도에 달했던 시기였다. 타고난 신분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국민들 사이에서 신분상승을 위한 욕구가 분출하고,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사건들도 심심찮게 발생하던 혼란의 시기였다.

베리에르라는 가상의 도시, 그곳에 가난하고 괴팍한 제재소 주인의 아들 쥘리엥 소렐이 있었다. 그는 집안환경과 달리 귀족적 용모를 타고 났으며 책읽기를 좋아하고,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베개 밑에 숨긴 채 출세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는 청년이었다. 쥘리엥은 돈과 명예만을 중시하는 이른바 귀족계급을 증오하면서도 자신의 출세를 생존의 목표로 삼고 성직자의 길을 갈구한다. 그러던 중에 그의 총명함과 라틴어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안 레날 시장은 그를 자기 집의 가정교사로 들인다.

그런데 시장의 부인인 레날 부인은 쥘리엥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아직 어린애 같은 시골 청년이 몹시 창백한 표정으로, 마치 지금까지 울고 있었던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레날 부인이 그에게 느낀 감정은 동정심이었다. 하지만 영특한 쥘리엥은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렸고, 그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은 그녀의 사랑을 거머쥐는 것으로부터 그 어떤 가능성을 감지하게 된다.

특정 계층에 대한 증오심으로 시작한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느새 뜨거운 사랑으로 변하였지만 둘의 관계는 발각되고 만다. 그래서 쥘리엥은 레날 부인을 떠나 브장송의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신학교 교장의 신임을 얻어 권력가인 라몰 후작의 비서로 들어가게 된다.
 
지역의 영향력 있는 귀족 드 라몰 후작은 곧 쥘리엥의 명석함을 알아보고 그를 신임한다. 쥘리엥은 사교계의 모임에 드나들면서 서서히 귀족의 풍모를 지니게 되고, 그것을 지켜보던 후작의 딸 마틸드는 쥘리엥에게 사랑을 느낀다. 마틸드는 다른 귀족들의 순응주의적인 모습에 비해 비천한 신분이지만 날카로운 지성, 자존심 강한 쥘리엥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쥘리엥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신분의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라몰 후작의 결혼 승낙을 기다린다.

라몰 후작은 딸의 결혼을 완전히 허락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동안 쥘리엥에게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기병연대의 중위 자리를 얻어준다. 비로소 비천한 제재소 집 아들은 기사 쥘리엥 소렐 드 라베르네이로 승격하게 된 것이다. 성공이 눈앞에 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소속 연대로 가 있던 쥘리엥에게 돌연 마틸드로부터 급히 파리로 돌아오라는 전갈이 온다. 그것은 레날 부인의 고발 편지 때문에 후작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소식이었다.

레날 부인은 자기 고해 신부의 강권에 못 이겨 쥘리엥의 부도덕함을 고발하는 편지를 드 라몰 후작에게 보냈고 이를 알게 된 후작이 결혼 절대 반대를 선언하였다. 분노에 휩싸인 쥘리엥은 즉시 베리에르로 달려가 교회에서 미사에 참석한 옛 사랑 레날 부인에게 두 발의 권총을 쏜다. 즉시 체포 투옥된 그는 재판의 날을 기다린다.

마틸드는 매일같이 쥘리엥을 찾아 면회를 하고, 죽었다고 생각한 레날 부인도 쥘리엥의 ‘부주의한’ 행동을 용서한다는 탄원서를 배심원들에게 제출하여 재판이 쥘리엥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한다. 실제로 후작에게 보낸 편지도 레날 부인이 쓴 게 아니었고, 레날 부인의 신앙을 지배하고 있던 신부에 의해 조작된 음모였다.

쥘리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배심원 만장일치'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마틸드와 레날 부인은 상소할 것을 간절히 원하지만 쥘리엥은 죽음을 원한다.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막 머리가 잘리려 하는 이 순간처럼 시적(詩的)인 감상이 떠오른 적은 생전에 없었다.

한때 베리에르에서 레날 부인과 지낸 아름다운 추억이 한꺼번에 뒤얽혀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결국 쥘리엥은 사형에 처해졌고, 쥘리엥이 죽은 사흘 뒤, 레날 부인 역시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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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사람들은 대귀족의 비호 없이는 출세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자네 성격엔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려운 뭔가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자넨 출세를 하지 않으면 박해를 당하게 될 걸세. 자네에겐 중용이란 게 없거든. 자네가 앞으로 활동할 사교계에선 남의 존경을 받게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봉변을 당하든지 두 갈래 길밖엔 없다네.

(중략)

어쩌면 죽은 후에도 감각만은 남아있을지 몰라. 그렇다면 나는 베리에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마루에 있는 동굴에서 쉬고 싶어. <쉰다>는 말이 꼭 지금 내 심경을 표현하는 말이야. 벌써 여러 번 자네에게 말했지만 나는 밤중에 그 동굴 속에 숨어서 프랑스에서도 가장 비옥한 그 지방을 내려다보며 야망으로 가슴을 불태우곤 했거든...아무튼 나는 동굴이 그리워. 옳지! 브장송의 수도회 양반들은 돈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분들이니까. 자네가 잘만하면 내 시체를 살 수 있을 걸세…….

「적과 흑」은 1830년, 스탕달의 나이 47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스탕달은 고독하고 저항적인 소설가였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속박에 대한 반항정신과 반 종교사상이 이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소설은 고독한 독서를 통해 ‘행복한 소수’들을 결속시킨다.”는 그의 믿음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는 부르주아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였는데, 돈과 명예를 위해 그 어떤 것과도 결탁하는 부도덕성과 예술에 대한 몰이해와 몰취미를 천박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적과 흑」은 그 당시 권력자인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부도덕성과 천박함을 고발함과 동시에 한 개인이 시대적 조건을 부정하고 탈피하여 자아를 유감없이 실현하고자 했던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급류에 휩쓸려 끝 간 데 없이 추구하던 인간의 욕망은 끝내 추락하고 만다는 실존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쥘리엥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한 자크 라캉의 말을 환기하게 된다. 성공하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갖는 욕망이다. 인간은 자존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인이 되거나 성직자가 돼야만 성공이라고 하는 관념은 누구로부터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사회가 주입한 관념이며 사슬이다.

쥘리엥은 사회가 만들어낸 관념에 스스로 종속되고 말았고, 끊임없이 급류에 휩쓸리다 추락하고 말았다. 자기 스스로 창조한 관념이 아닌 것으로 하여 끊임없이 종용되고 종속되는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그 끝은 자명한 것이다.

이로부터 현 시대 우리 삶의 단면을 또한 본다. 성공에 대한 가치가 천편일률적으로 주입되고 있기에 자라나는 학생들마저 의사가 되고, 검사가 되어야만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열심히 책상머리에 앉아있지만 공부가 재미있거나 행복하지 않다. 주변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 누가 아파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과연 살아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레밍족'을 떠올리게 한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 또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항하여. 이들에게 생기를 찾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가 돌고, 가슴이 뛰고, 맥박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게 해야 한다. 거대한 강물이 흐를지라도 나무토막 하나 받치고 있으면 살아난다. 그 나무토막은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 추락하리라는 것을.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늦지는 않았다! /강은미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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