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구덩이 같은 분화구, 세계적으로도 희귀

산굼부리는 마치 운석이 떨어져 만든 운석공처럼 가운데가 깊이 파인 형태를 띠고 있다.
산책로 주위는 개민들레꽃이 노랗게 수를 놓고 있었다.
초록을 과시하는 억새
산굼부리는 400종이 넘는 희귀식물이 서식하는 생태학적 보고이다.
가운데가 뻥 뚤린 용암 수형석이다.

<장태욱의 지질기행> 17 운석 구덩이 같은 분화구, 세계적으로도 희귀

▲ 산굼부리는 마치 운석이 떨어져 만든 운석공처럼 가운데가 깊이 파인 형태를 띠고 있다.
날씨가 덥기는 한데, 바닷물에 들어서기엔 아직 이르다. 이럴 때는 나무와 풀이 산소를 시원하게 내뱉는 산이나 들로 떠나면 좋다.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대기의 축복을 한껏 맛보기 위해 산굼부리를 찾았다.

산굼부리 입구에 들어서니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시장에 온 것처럼 주변이 시끌벅적했다. 입구에서 분화구 주변까지 산책로가 조성되었는데, 산책로 주위는 개민들레꽃이 노랗게 수를 놓고 있었다. 그리고 분화구 주변은 절정이 지난 보라색 수국은 영화로운 시절을 아쉬워하는 반면, 초록의 억새가 새롭게 건강미를 과시하고 있었다.

산굼부리,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분화구 

산굼부리는 산체의 규모가 동서로 850m, 남북으로 730m으로, 밖에서 바라보면 평범한 오름이다. 그럼에도 이 오름이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분화구의 구조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오름의 이름이 '굼부리(오름의 분화구를 칭하는 제주어)'인 것도 분화구의 독특한 모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산책로 주위는 개민들레꽃이 노랗게 수를 놓고 있었다.
▲ 초록을 과시하는 억새

 

우선, 산굼부리의 분화구는 거의 원의 형태에 가까운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제주도 대부분의 오름은 분화구 한쪽 면이 함몰되어, 분화구 둘레가 알파벳의 U자나 C자와 같은 형태를 띤다.

게다가 산굼부리 화구의 테두리는 지름 600m에 둘레가 2km에 이르는데, 마치 운석이 떨어져 만든 운석공처럼 가운데가 깊이 파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오름 주변의 고도는 해발 400m내외이고, 분화구 외륜 정상은 437m여서 평지와 정상간 높이 차가 40m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분화구의 바닥(해발 305m)은 분화구 정상으로부터 깊이가 132m에 이르고, 오름의 주변평지보다도 100m이상 낮은 위치에 놓여 있다. 산굼부리가 분화구의 깊이만으로는 백록담을 능가한다.

산굼부리는 분화구의 형태로 보아 전형적인 마르(marr, 폭렬화구)로 인식되었다. 학자들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마르란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단성화산 중에서 분화구의 기저면이 분출 전 지표면보다 낮은 위치에 형성된 경우를 지칭하는 용어다.

마르가 아니라 함몰화구일지도

그런데 산굼부리는 그 형성과정에서 의문점을 남겼다. 마르는 화산폭발 과정에서 생기기 때문에 화구 주변에는 화산분출물이 남게 되는데, 산굼부리 주변에는 폭발에 의한 화산쇄설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최근 학자들은 산굼부리 분화구가 폭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게 되었다. 점성이 낮은 마그마가 지하에서 올라오자 산굼부리 분화구 일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마그마가 지하에서 다른 곳으로 흘러가자 부풀어 올랐던 돔형이 함몰하여 산굼부리 분화구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 산굼부리는 400종이 넘는 희귀식물이 서식하는 생태학적 보고이다.

산굼부리 분화구는 크고 깊은 게 마치 절구통을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비가 많이 내리면 주변의 산정호수처럼 물이 고일만도 한데, 분화구 내부에는 물이 일체 고이지 않는다. 부풀어올랐던 마구마가 가라앉을 때에 분화구 내부에서 용암체가 쪼개지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기반암에 균열이 많아져서 그 틈으로 물을 빨리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 생태학적 보고

산굼부리 주변은 교래리 현무암으로 덮여있고, 산굼부리 지표의 지질은 10만년~20만년 사이의 연령을 가지는 산굼부리알칼리현무암에 해당한다. 산굼부리 분화구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믄 화산 지형일 뿐만 아니라, 400종이 넘는 희귀식물이 서식하는 생태학적 보고이기도 하다. 이런 가치들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263호(제주 산굼부리 분화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 가운데가 뻥 뚤린 용암 수형석이다.

한편, 산굼부리 관리사무소 옆에는 수군관(lava tree mould, 용암수형석)이 전시되어 있어서,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는 용암 유출 과정에서 용암이 나무의 밑둥을 덮은 채로 굳어서 굳어진 것인데, 나무 밑둥의 모양을 찍어낸 화석과도 같은 것이다.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