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의료정책 인정하고 새판을 짜는 계기로 삼아야"

최근 제주 특별 자치도 의료개방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어느 치과의사와 친분이 있는 이가 제주를 방문하면서 그 치과에 들러 사랑니를 뽑았는데 진료비를 몇 천원 밖에 청구하지 않으니까 "왜 아는 사람이라고 진료비를 받지 않느냐"고 성화를 부린 일이 있다면서 미국 같았으면 아마 3000불은 청구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 끝에 만약 의료개방과 민간 의료 보험이 도입 되고 의료기관의 영리법인이 허용된다면 지금은 싼 값에 진료를 받고 있지만 우리도 미국처럼 엄청난 의료비를 지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지금 우리나라는 의료 개방 문제 이전에 엄청난 의료 시스템의 왜곡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출발점은 국민의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민간병원을 통한 공공의료의 확보를 위해 시작되었지만 시작부터 잘못 엉켜있는 지금의 정부주도 통제가격 중심의 의료 보험 수가 시스템과 의료보험 요양기관 강제지정 제도도 이런 의료 시스템의 왜곡현상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사랑니'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니 하나 뽑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랑니를 뽑다가 생명을 잃는 사람도 보았고 어려운 경우에는 몇 시간 씩 싱강이를 하고도 뽑지 못해 종합 병원으로 이송하여 수술을 통해 사랑니를 제거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치과의사의 수고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수가를 정부가 설정해 놓고 그 가격을 강요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강제 보험 지정 병원 시스템 하에서는 물론 환자에게 인술을 베풀면서 의료행위를 돈으로 환산하지 않으면서 진료를 하는 의사도 아주 없진 않겠지만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는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많이 국민이 받아야 할 정말 위급하고 필요한 진료를 통해 확보하지 못하는 병원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대학병원은 '특진료'라는 명목을 만들어 비용을 보충하도록 정부가 눈감아 주고 있고 민간병원에서는 스스로 비 보험 분야를 창출하여 국민들에게 덤 태기를 씌우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현 주소라 할 수 있다.

의료정책에 대한 정부의 개입정도는 그 나라의 사회경제적인 배경에서 결정되므로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보건의료분야는 다른 산업에 비해 정부가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는데 특히 정부정책과 규제는 병원을 둘러싼 외부 환경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의료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의 정당성과 개입정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계속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으며, 의료정책도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은 후 의료 정책화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약분업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공급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중심의 공급체계이다. 국내 의료공급의 병상기준으로 88.3%, 외래환자 기준 92.6% 그리고 입원환자의 89.6%가 민간의료기관에서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간의료기관의 공급비율은 의료서비스의 공급을 시장주의에 맡기고 있는 미국(공공부문비율 : 33.2%)이나 국가주도형의 일본(공공부문비율: 35.8%)에 비해서 ⅓ 수준이며, EC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러한 민간중심의 공급체계 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국내 의료보험정책은 정부주도하의 의료급여와 국민건강보험의 이원화된 체계로 통제가격중심(control payment)시스템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민간의료시장의 시장 경쟁적 요소는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그 결과 경영과 수입 유지를 위하여 의료기관들은 비 급여 진료를 계속 확대시켜 나갔고, 이로 인해 의료시장의 왜곡현상을 불러와 전문적인 자기의 의료분야 진료와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진료 행위를 통해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병원 수입을 어느 분야든 의료외적인 각종 의료 기기 사용과 질환과 관계없는 분야에 대한 진료 확대를 시도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개인의료기관에서의 진료 전문성이 약화되어 실질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정말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의료 분야임에도 정상적인 전문분야 의료행위만을 해서는 수입이 형편없이 줄어들고 있는 흉부외과 나 외과 산부인과 전문분야에는 전문의 지망생이 줄어들고 있어 일정 기간 후에는 외국의사 도입과 해외진료가 필수적인 사안이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런 의료 수가에 대한 국가 통제가격중심 체제가 오히려 환자본인의 의료비 부담 뿐 만 아니라 의료 보험료 부담을 높이게 되어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의료할인제도로 전락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므로 지금 같은 싼 수가가 공공 의료를 보장하는 길도 아니며 의료의 질을 담보하는 방법도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의 통제 중심의 의료 체계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인터넷에 공개한 2004년도 청와대 정책보고 자료에 의하면 ‘보건의료 체계의 개혁’을 위해서 공공에 의한 의료보장과 시장경쟁을 통한 의료 서비스의 수준 향상을 위하여 노력한다고 명시하여 민간부분의 시장 경쟁적 요소를 도입하려는 정책변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그 동안 의도적으로(?) 무시해 온 민간부문의 시장 경쟁적인 요소를 통한 의료시스템의 질적 개선의지를 나타낸 최초의 중앙정부의 공문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의료의 시장 경쟁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민간 보험의 도입과 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의료 영리 법인 허용문제 그리고 대법원에서 합헌 판결이 나긴 했지만 의료보험 요양기관 강제 지정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연구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민간의료 보험 도입을 막고 의료 요양기관 강제 지정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공공의료를 보장하는 길도 아니며 피상적으로는 싸고 질 좋은 의료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 같아도 정말 필요한 분야의 인적 인프라 질은 떨어지게 만들고 있으며 종국적으로 국민에게 경제적인 손해를 가져 올 뿐만 아니라 의료의 왜곡 현상을 통하여 의료적인 측면에서도 국민에게 오히려 피해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의료 영리법인 허용 문제도 의과대학에 병원 경영학이 도입되는 마당에 말이 비영리 법인이지 개인 의원이던 병원이던 인술의 이름으로 국민의 건강만을 위하여 전혀 영리 추구를 하고 있지 않는 엄밀한 의미의 비영리 의료기관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는 국민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지금까지의 잘못된 의료 정책 방향을 솔직히 인정하고 한국 의료의 새판을 짜기 위해서는 나무와 숲을 동시에 생각하는 거시적인 안목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라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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