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 40년만에 고향에 돌아 와 2010년 도지사선거에 나섰던 그는 제주를 배우기 위해, 제주미래 비전을 만들기 위해 지난 11개월 제주 160개 마을을 직접 돌았다. ⓒ 제주의소리

<이재홍이 만난사람> 11개월 제주 160개 마을 돈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 1975년 CBS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한 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하면서 편집부국장, 논설위원을 거쳐 사원 직선 대표이사 사장에 선출됐다. 2005년 사장 임기를 끝으로 30년 언론인 생활을 마쳤지만 그는 아직도 누군가를 만나면 수첩을 꺼내는 기록자로서의 습성은 흔들림 없다.

1987년엔 고 정윤형 교수, 소설가 현기영, 시인 김명식 강창일 의원 등 서울에 사는 제주출신 인사들과 함께 '제주사회문제협의회(제사협)'를 조직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제주현안을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제사협은 이후 제주4,3연구소와 '제주4.3 진상규명 명예회복 추진 범국민위원회' 를 결성해 4.3문제 해결에 주력해 왔다. 중심에 선 그는 4.3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2007년엔 서울지역 제주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제주금융포럼' 회장을 맡아 제주국제금융센터 설립도 모색했다. 

2009년 에너지재단 사무총장을 마치고 40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그리고 2010년 민주당 후보로 제주도지사 선거에 나섰으나 패배했다. 패배의 충격과 못지않게 스스로에게 놀란 건 지난 세월 비록 몸은 서울에 있었지만 가슴 속에 항상 제주를 담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너무나도 고향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반성의 출발일까, '제주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로 만납시다'란 취지를 걸고 제주포럼C를 만들었다. 제주를 위한 '변화(change)' '도전(challenge)' '소통(communication)'을 내걸었고, 100명의 전문가와 1만명 도민이 함께하는 제주미래비전 보고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 보고서는 영국 복지국가 기틀을 다진 '베버지리 보고서', 일본사회 변화를 이끈 오자와의 '일본 개조론'을 벤치마킹했다. 집단지성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보고서 일환으로 그는 제주를 걷기 시작했다. 제주 전역을 돌며 삶의 현장에서 제주의 속살을 만지며 제주다움을 통해 미래비전을 만들어갔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8월 시작한 '현장에서 길을 찾다'가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제주 172개 마을 중 160여개를 돌았고 24일 가파도를 끝으로 대장정 막을 내린다.

그는 지난 11개월 제주 현장을 직접 온 몸으로 부딪히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가 본 제주의 속살은 어땠는지, 그가 항상 말해 온 것처럼 '제주다움'으로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은 여전한지, 또 구체적 대안을 확인했는지 궁금했다.

<제주의소리>와 만난 고희범 대표는 제주도민들의 역동성과 변화의 의지는 놀랍고 감동적일 정도라고 말한다. 지난 11개월은 도민들의 변화의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강조한다. 또 '제주다움'으로도 충분히 우리들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지혜도 얻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금 제주가 제대로 된 길을 가는지에 대해선 단호히 ‘아니다’라고 부정했다. 지난 10년 제주를 지탱하고 이끌어 온 ‘제주국제자유도시’ 비전에 대해 "외국사람들 입은 옷이 멋있어 보여서 우리의 환경과 풍토, 관심에 맞는 옷은 벗어던지고 외국인 옷을 걸쳐 입은 모습"이라며 "국제자유도시도 우리에 맞는 모델이어야지 홍콩이나 싱가폴처럼 허상만 ㅤㅉㅗㅈ다가는 가랑이 찢어지고 완전히 만신창이 될 수 있다"며 국제자유도시 틀과 방향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이야기했다.

국제자유도시 10년으로 제주도민들이 잘 살기는커녕 오히려 예전보다 피폐해 졌으며, 자본의 논리, 중앙의 이해, 지방정부의 조급함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되레 난개발, 지역문화의 황폐화를 불러 왔다고 비판한다. 그는 제주의 길은 ‘제주다움’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풍력에 대해서도  “대기업들이 왜 제주 풍력에 눈독을 들이겠느냐. 그들은 그게 돈 되는 줄 알기 때문”이라며 “미래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지 아는 것이다. 왜 우리껄 우리가 못하느냐”고 반문했다. 

 

▲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 ⓒ 제주의소리

  “11개월 160개 마을 주민들에게서 지혜를 배웠고 제주의 가능성을 봤다” 

- ‘현장에서 길을 찾다’ 프로젝트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데 어느 정도 돌았나.

“그에 앞서 취지를 설명하자면 앞으로 10년~20년 제주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겠느냐, 뭘 먹고 살아야겠는지, 신성장동력은 무엇이고 행복한 길은 무엇인지 이런 고민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런 걸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보자. 탁상에서 만드는 거 말고 진짜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걸 바탕으로 보고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런 기획 하에 전직 도지사 도의장 교육감 제주대 총장 상공회의소 회장을 모셔다 선험자로서 이들의 비전과 성과, 반성을 듣는 1부 ‘선배에게 길을 묻다’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지금 2부 현장을 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현장에서 길을 찾다’가 작년 8월 1일부터 진행 중이다. 6월 24일 가파도에서 마칠 예정이다. 일주일에 사흘 걷는데 11개월 걸었다.  3부는 ‘함께 찾는 제주미래’로 선험자들의 이야기와 현장 이야기를 합쳐서 전문가들이 세미나 토론회를 통해 보고서를 만들어 내게 된다.”

- 172개 마을 중 160개 마을을 걸었다면 현장에서 만난 분들만 수백명이 되는데, 주로 어떤 분들을 만나나.

“마을이장, 새마을 지도자 노인회장, 그리고 밭에서 일하는 분들도 가끔 만난다. 또 마을 유래나 역사에 대해 잘 아시는 원로분들도 만나고, 거기서 별나게 일하는 분들도 계시다. 안덕 화순 해양레저체험파크나 구좌읍 덕천리 이모네된장, 성산 신양에는 마을상가를 운영하는 경우 등 마을기업이나 사회적 기업 등을 만난다.”

- 160여개 마을을 돌고, 많은 이들을 만났을 텐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나.

“제주도를 배웠다, 많이 공부했다. 제주도민의 삶을 이해하고 제주도의 가능성을 봤다. 감동받은 일도 많다.”

- 제주에서 고등학교 졸업 하고 서울에 올라가서 생활한 후 40년만에 내려왔는데, 지난 40년의 공백이 컸을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나.

“그렇다. 2년 전 지방선거 1년 앞둬 40년 만에 내려왔다. 그동안 서울에 있으면서 제주와 관련된 일도 하고, 제주에 왔다 갔다 하고 제주사람들도 만나기도 했지만, 또 그 과정에서 제주 변화의 필요성,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설계에 대한 꿈이 출마를 결심하게 했는데, 정말로 내가 제주도를 모르고 있었다는 그런 반성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11개월에 걸친 장정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하귀1리 새우리, 신엄리 배추, 신천리 동애등에, 화순 발전소...변화 열정 놀랍다”

- 제주생활 3년 중 초기 1년은 도지사선거라는 목적의식적으로 살았다. 그 후 2년은 그에 비해 가볍게 보냈는데, 제주 속살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느낀 게 있다면.
 
“우선 제주도민들에게서 느껴지는 역동성, 변화에 대한 의지, 근면 성실성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자기 혼자 먹고살려는 노력도 있지만 마을이 달라져야겠다는 의지가 많이 엿보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하귀1리는 새우리(부추) 주산지다. 시도 때도 없이 매일 수확 한다. 나이든 분들까지 전부 한다. 그러니까 놀 시간이 없다. 하귀1리는 게이트볼장이 없는 마을이다.  쪽파나 풀마늘 재배하는 신도리는 새벽 4~5시부터 작업한다. 그 새벽에 불 안 켜지면 ‘저 집에 무슨 일 이신가’할 정도다. 신엄리는 30여년전 당시 20~30대 젊은이들이 돈 될 만한 작물로 수박을 찾았다. 씨만 심으면 열매가 날 줄 알았는데 안 그랬다. 그래서 육지에 가서 많이 배웠고 이제는 신엄 전체가 수박 주산지가 됐다. 성산 신천리는 동부농업기술센터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동애등에’를 얻어다 애벌레와 번데기를 이용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성공 여부는 수준 높은 기술을 들여오느냐에 달려있긴 하지만 대단하다. 이 모두가 자기네 환경, 기후와 토질에 맞는 농산물을 찾고 자신의 삶과 마을의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모습들을 본다.”

- 근면성실성은 모두 인정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그렇고 외부에서도 ‘제주도민들은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들을 한다. 변화 내용이 무엇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긴 하지만...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를 잘못 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현장에선 이미 변화가 시작 됐는지.

“변화에 대한 의지가 있고 그것이 곳곳에서 확인이 됐다. 그렇다고 어디서 위에서 갑자기 똑 떨어져서 그걸 그냥 받아온 게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마침내 성공하는 사례를 수없이 본다.

안덕 화순에 사는 젊은이 이야기도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내보내는 26도나 되는 어마어마한 배출수를 바다를 황폐화시키는 유해물질이라고 봤는데 ‘저 열을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자기가 근무하는 신라호텔에서 24도쯤 되는 정화조 열을 이용해 사계절 옥외풀장을 운영하는 걸 보고 친구인 히트펌프 기술자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때부터 기획서를 만들어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하우스 농사짓는데) 기름 하나도 안 들어가도 된다고 설명했는데 아무도 믿어주질 않아 자기 혼자서 망고 농사를  시작했다. 기름 값이 계속 오르다보니 감귤농사 하는 농민들은 약간 온도가 올라가면 얼른 보일러를 끄고,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 불을 때면서 눈치를 보는데, 이 친구는 ‘원 없이 불 땐다’고 한다. 보통 1000평 감귤하우스에서 1년에 1억 매출이 나오면 여기서 기름값 6천만원, 비료 자재비 2000만원 빼고 나면 2000만원 남는다. 그런데 이 친구는 원 없이 불 때고 1600만원 전기값만 낸다. 연료비가 6000만원대 1600만원이다. 이런 걸 보면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다.

애월리는 그 마을 전부가 취나물을 하는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들어왔다. 이곳 태생인 강계춘(66)씨가 25년 전 쯤에 공무원인 남편과 함께 노형동에 살고 있었는데 강씨 집에 세 들어 살던 '울릉도 아가씨' 어머니가 딸을 만나러 왔다가 강씨 어머니가 농사짓는단 이야기를 듣고는 취나물 종자 두어되를 보내왔다. 강씨는 어머니 김송정 할머니에게 갖다 줘 1400여평 밭에 씨를 뿌렸는데, 처음에 취나물을 어떻게 키우는지, 먹는지도 모르고 향이 좋아 약초인줄만 알았다. 이 취나물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종자를 얻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애월리를 다 먹여 살린다.”

 

▲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 고 대표는 제주 전 역을 돌면서 제주도민들의 역동성, 변화의 의지, 성실 근면은 놀라울 정도라고 말한다. 현장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 하는 고 대표 ⓒ사진제공=제주포럼C

- 그런걸 보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 평가에 인색해서 그렇지 제주도민들에겐 확실한 변화의 의지가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의지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강하다. 한경면 산양리 누가 감귤 농사지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냐. 여긴 흙이 붉은 점토질이다. 날씨가 좋지 않은 점을 역이용해 일부로 늦게 수확한다. 당도를 최고로 높여서 남쪽(서귀포) 수확물이 다 팔리고 난 후 파니 고가로 팔린다. 선과장도 크게 만들어 완전히 자동화하고 산양감귤 브랜드로 판다.”

“온 재산 들여 만들어 놨더니 이젠 학생 수 적자고 없애겠다고? 그럼 땅 돌려줘야지!”

- 강한 변화 의지, 역동성을 봐 왔다는 이야기를 해 주는데, 그에 못지않게 아쉬운 점 안타까운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을에 생긴 갈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참 안타까운 건 마을목장이다. 마을목장이란 게 마을에서 땅 내놓고, 군유지도 받아다 관리하면서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해 온 어마어마한 땅이다. 마을 목장은 조합으로 관리하는데 어떤 마을은 마을목장을 마을회로 소유를 넘겨서 거기서 온갖 사업들을 다한다. 가시리 수망리는 이 어마어마한 마을목장에서 온갖 수익 사업을 펼친다. 수망리는 60세 넘은 할머니에게 생활비 보조금을 주고 학교 학비까지 마을에서 대 줄 정도다. 그러나 반대로 마을목장이 조합원이 팔아서 접어버린 마을도 있다. 마을에 재산이 없는 것이다. 마을목장 소유권 문제를 두고 아직도 갈등을 빚고 있는 마을도 있다. 그런 게 참 안타깝다.”

- 오래전부터 농촌문제 중 하나가 초등학교 폐교 문제다. 다니면서 이 문제도 많이 거론되고 고민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농촌마다 초등학교 폐교 걱정 안하는 곳이 없다. 초등학교란 게 마을에서 땅 있는 사람 땅 내놓고, 땅 없는 사람 돈 내놓고, 돈도 없는 사람은 몸 내놔서 운동장 만들고, 교실 지을 돈이 없어서 미역 공동판매해서 수익금으로 교실도 지어 학교를 기부채납 했다. 공동체 상징이자 정신적 중심인데, 학생 숫자 적다고 통폐합 해버린다. 마을에 어떤 정신적 중심, 정신적 고향이 사라지는 아픔들을 동네마다 겪고 있다.”

- 교육당국이나 일부에서 농촌지역 초등학교 통폐합문제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 아니냐고 한다.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거다.  

“마을에선 이런 이야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 가르치려고 재산 다 내놓고 우리가 땅 파고 등짐 져 나르며 학교 만들었다. 학교 폐교되는 것도 억울한데 그 땅이 왜 교육청 땅이냐 우리 땅이다. 땅이라도 돌려주라’고 한다. 맞는 이야기다. 법상 기부체납한 거니까 교육청 땅이 된 거다. 어떤 곳에선 학교에서 ‘아이들 실습용으로 감귤밭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감귤밭 사주고 나무 심어주고 기부했는데 그것도 교육청 땅이다. 이 문제는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없으니 아이들이 없고, 아이들이 없으니 학교가 폐교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통폐합기준이 제주도교육청은 본교 60명에 분교 20명이다. 그런데 이 기준이 지방마다 다르다. 아예 이런 기준이 없는 곳도 있다. 충남은 주민들이 원해야 통폐합 한다. 단 19명이 있어도 본교로 있는 거다.”

- 그렇게 되면 돈,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데 교육청에선 부담스럽다고 한다.

“단순히 계량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의 의지, 그 지역의 형편을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준으로 재검토해야한다. 마을학교 살리기 위해 온갖 예를 쓰는 곳이 많다. 납읍리같은 경우는 10억을 모아서 공동주택을 지어 임대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안간힘을 쓰며 마을을 지키려고 하는데 마을에 그런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 농촌 살리기와 학교 살리기를 같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농촌 문제가 나왔으니 땅 문제도 심각하다. 젊은 사람 중에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이 없어 못 짓는 경우가 많다. 무농사를 주로 짓는 성산엔 한 5년 전부터 육지 상인들이 대거 몰려와 50만평 100만평씩 땅을 싹쓸이 해 무농사를 짓는다. 이들이 임대료를 엄청 올려놔버렸다. 예전엔 나이든 분들이 농사를 못 지으니 자기 친척에게 그냥 쓰라고도 하고, 평당 200백원 주고서 쓰기도 했는데 이들이 와서 평당 2500원에서 3천원까지 올려버렸다. 이러다 보니 마을공동체가 무너지고, 청년들이 농사를 지으려 해도 지을 수가 없다. 땅은 땅대로 문제다. 대농 농사꾼들이 생산량 높이려고 농약 비료 엄청 써버린다. 생산량은 늘어날지 몰라도 땅은 황폐화된다. 이 상인들이 제주에서만 한 게 아니라 강원도 고창 제주도로 돌아다닌다. 강원도 고랭지 채소는 이미 생산량이 떨어졌다. 이제 고창을 거쳐 제주까지 오고 있다.”

 

▲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 ⓒ 제주의소리

- 혹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를 느끼지 않는가.
 
“마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원이 들어가는데 지원 형식이 하드웨어쪽으로만 쏠리고 소프트웨어엔 없다. 커뮤니티센터 등 건물을 많이 짓는데 정작 콘텐츠나 프로그램에는 지원이 안 되니 처음에 1~2년 버티다 건물만 덩그러니 남는 경우가 생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인건비 지출은 못 하게 하니, 이런 것들에 대해 제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땅 임대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법에 의해 상인들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됐다. 상인들이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면 가격을 얼마든지 올려버린다. 상인들이 농사짓는 건 금지 돼 있는데 그럼에도 공공연히 하는 거다.”

국제자유도시로 좋아진 거? “없어”...지난 10년 우리 삶 오히려 피폐해져  

- 지난 1년 가까이 직접 돌아다니며 봤던 길과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 즉 제주특별자치도-제주국제자유도시로 대결되는 길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시군이 폐지됐는데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군시절 이야기하는 주민들이 엄청 많다. 다 그 얘기를 한다. ‘시군시절 그때가 좋았다’. ‘행정시장은 도의 과장만큼도 힘이 없고, 그러다보니 (행정)시는 도에 미루기만 하고, 도는 마을 문제에는 관심도 없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말한다. 국제자유도시만 해도 자본 사람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하기 좋은 조건 만드는 것이다. 이게 도민의 이익이 되고 행복 할 것이라고 믿으며 시작됐는데 제주도민 중 국제자유도시가 우리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달라진 게 없다. 실제로 2010년도 1인당 지역총소득 제주도가 1750만원, 전국평균이 2400만원이다. 제주는 전국 평균의 76%에 불과하다. 2005년보다 3%p 더 떨어져다. 국제자유도시가 결국은 자본의 논리, 중앙의 이해, 지방정부의 조급함 이런 것들이 이유가 돼서 난개발, 지역문화의 황폐화를 불러온 게 아닌가. 주민들의 소득과 행복과는 관계없이 오히려 역작용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 혹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지는 않는가. 국제자유도시란 길 자체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길은 잘 뽑아놨는데 지도자들이 똑바로 가지 못하고 갈지자로 가는 건지.

“그것은 마치 외국 사람들이 입는 옷이 멋있어보여서 우리 기후와 환경, 환경, 풍토, 관습에 맞는 옷을 벗어던지고 외국 사람들 입는 옷을 얻어 걸쳐 입은 것 같다. 국제자유도시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제주다움에서 우리 길을 찾아야하지 않겠나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 우리가 국제자유도시란 길을 10년 동안 걸어왔는데, 그럼 지난 10년 걸어온 길이 잘못된 길, 걷지 말아야 할 길을 걸어온 셈이냐.

“다시 한 번 생각해야한다. 국제자유도시모델도 우리에게 맞는 모델이어야 하지, 홍콩 싱가폴 이런 이야기해선 안된다. (설령 국제자유도시로) 간다고 해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면밀하게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우리 길이 어떤 것인지 다시 정립해야 한다. 허상 ㅤㅉㅗㅈ아 가다 가랑이 찢어지고 완전히 만신창이 되면 늦는 거다. 지금이라도 빨리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의 국제자유도시 틀과 방향이 맞는지...”

 

▲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 ⓒ 제주의소리

- 그렇다면 고 대표가 생각하는 제주의 길은 무엇인가. 제주다움은 무엇인가.

“가령 제주에 관광하러 오는 사람들이 뭘 보러 오는 가부터 시작하자. 제주도 천혜 환경, 독특한 관습과 문화...이런데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서울시민들이 꿈꾸는 게 ‘제주도같은 공기를 만들자는 것’ 아닌가. (서울)시내버스에 붙여 다니는 게 그거다. 육지 사람들 자기네 길도 있는데 올레길을 왜 걷나. 올레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상당히 크다. 우리가 매일 걸어 다니던 길인데 남들이 막 다녀, 그래서 우리도 걸어보니 ‘좋네, 이거 우리 맨 날 삼동 타 먹으러 댕기던 길 아니라게.’ 새롭게 제주가 갖고 있는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신도2리에 가면 마을사람들이 바닷가 길을 해안도로로 내 아스팔트로 포장하고, 집 앞까지 바닷물이 찰랑찰랑하던 그 돌멩이들을 뚝 쌓듯 덮어버린 걸 아주 원통해 한다. 제주도에만 있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그걸 인식하는 것, 그 다음에 제주도민에게 직접 이익이 되는 길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 제주도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올레.틈새농업,풍력,,,대기업이 왜 제주에 눈독들이냐! 그게 돈 되는 줄 그들은 안다” 

- 올레로 상징되는 제주 가치의 재인식, 재발견은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진다. 그러나 실제 이걸로 먹고사는 문제까지 갈 수 있는 건지는 아직 의문이다. 자신감이 없기도 하지만.

“올레가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올레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제주도는 겨울철에 짓는 틈새농업으로 상당히 돈을 번다. 겨울철엔 제주도가 전국의 비타민C를 공급한다. 제주 밖에 못한다. 풍력도 마찬가지다. 왜 대기업이 눈독을 들이느냐. 풍력의 위력을 아는 것이다. 그게 돈이 되는 줄 그들은 안다. 미래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지 아는 것이다 우리가 그걸 하자. 대한민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제주에만 있는 자원을 우리가 찾자는 것이다. 왜 못하나.”

- 최근 제주 관광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제주공항에 가보면 제주도민이 비행기를 못 탈정도로 꽉 찬다. 그런데 주민소득은 뚝뚝 떨어진다. 돈은 분명히 제주도에 들어오는 것 같은데 제주도민 주머니에는 돈이 없다. 풍력도 마찬가지다. 자원은 많고 그 자원을 활용한 돈들이 들어오지만 정작 우리에겐 돈이 없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 산업구조에서 63%에 이르는 포지션이 대단히 큰 게 관광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마을에서 만난 분들이 이런 말을 한다. ‘관광객 100만 시대 되면 먹고살기 좋아진 다. 학교에서 관광객 보면 손 흔들라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1000만 시대가 됐는데 달라진 게 뭐있냐 오히려 삶이 퍽퍽해졌다’고들 한다. 관광이 제주도민들에게 경제적인 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느냐 물었더니 73% 이상이 ’노‘라고 대답했다는 여론조사를 기억한다. 우선 관광으로 제주도가 먹고살려고 하면 관광업체 종사자부터 잘 살아야할 것 아닌가. 엊그제 제주대 교수가 조사한 걸 보니 관광업체 종사자 6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이 사람들 평균 연봉이 1500~2000만원,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건 관광업체 난립에 의한 과당경쟁과 출혈운영, 그래서 송객 수수료에 목매달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 이게 제주관광 이미지를 해칠 뿐만 아니라 관광업 자체가 제주의 동력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양의 문제가 아닌 질의 문제다. 또 하나는 제주관광이 인바운딩 받아서 하청구조처럼 싸구려로 떼 온 걸 먹고 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관광이 우리에게 정말 득이 되나‘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힘만 들지, 관광이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소득에 영향을 미친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요즘 풍력문제도 많이 나오지 않나. 우리의 자원을 대기업에게 주는...죽 쒀서 남 주는 꼴 아니냐는 문제가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돈이 없어서, 자본이 없는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가령 저 사업이 돈이 된다, 그걸 증명할 수 있으면 돈을 빌릴 수 있다. 풍력은 돈 버는 걸로 밝혀졌다. 앞으로 기름 값 계속 올라오고, 풍력발전 값도 계속 올라갈 것이다. 게다가 탄소배출권까지 판다. 대기업이 왜 혈안이 될까. 기를 쓰고 들어오려고 할까. 그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이 없다고 하면 펀딩하거나 빌릴 수 있다. 못할 이유가 없다. 삼다수 개발 돈 없으니까 대기업에다 허가해주고 17.5% 돈을 집어넣을 테니 지분을 달라고 하면 지금 시점에선 ‘어리석다’라고 생각할꺼다. 풍력도 마찬가지다. 돈 많이 필요하다. 3메가와트짜리 하나 하는데 80억, 해상풍력은 130억이니 큰돈이다. 그런데 이게 무조건 돈 버는 건데 답답하다. 돈이 벌리는 사업을 왜 안하느냐. 풍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자신감이 없어서인 것 같다.”

 “해군기지 공사 강행하면, 강정주민 제주도민 정부 모두 다 불행해 진다”

- 여러 가지 길 중에 도민사회 논란이 끊이지 않는 길이 이른바 해군기지 길이다. 지난 5년동안 길을 걸어왔는데 되돌아보니 5년째 계속 제자리만 빙빙 돌고 있다. 이 길이 아니었구나라는데는 모두 다 동의하는데 그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길을 찾아야 하나.

“제자리 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화돼 버렸다.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했다. 여기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책임이 더 크다고 물을 필요가 없이 우선 제일 큰 책임은 정부와 해군이다. 공사를 이렇게 무작정 밀어붙이는 법이 어디 있느냐. 그리고 여태까지 거짓말만 해왔다. 민군복합항? 이젠 대놓고 해군기지라고 한다. 도민들을 다 속였다. 그 다음, 제주해군기지가 정말로 제주도에 필요한지 중앙정부가 도민들을 상대로 성실하게 설득해본 적도 없다. 해군기지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해군 장성 자리 하나 만들어주는 것이냐, 아니면 미군의 대중국 미사일방어체제에 포함되는 것이냐 다 그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하자가 없다. 이것도 군사기밀이겠지. 거기에는 바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해군기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공군기지 들어오게 되는데 결국 오키나와와 똑같은 모양이 되지 않겠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 고희범 제주포럼C 대표 ⓒ 제주의소리

- 어떻게 하면 좋겠나. 그래도 문제는 풀어야 하는데.

“대선 국면이 상당히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민 사회에서 염려하는 것 중에 기왕에 공사가 진행됐는데, 땅은 보상금도 다 받았는데 저 땅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걱정들도 하지만, 내 생각은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백지화까지도 포함한 개념이다. 지금 이 상태로 공사를 강행한다면 강정주민 제주도민 정부 모두 다 불행한 일이 된다. 제주도의 미래를 생각할 때 정말로 밀어붙인다고 돼선 안 될 문제다. 공사 진행 지금까진 많이 안 됐다. 구럼비 일부가 부서졌지만 제주 해군기지의 문제가 구럼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손 놓을 일은 아니다.”

-  6월말이면 우근민 도정 전반기를 찍는다. 이제 2년이 흘렀고, 앞으로 2년이 남았다. 2년전 지방선거 경쟁자여서 부담스럽겠지만 지난 2년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아주 조심스럽다. 도지사 역할이라는 게 도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도민의 행복을 위해서 길잡이와 방패막이 돼주고, 제주 미래를 설계한다고 할 때 참 아쉬운 점이 많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하는데, 더 어렵게 만들고 꼬이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몇 가지 생각나는 걸 말하자면 인사가 만사인데 지사가 혼자 다 할 수는 없고 뜻이 같고 철학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 참모로 배치해서 일을 같이 한다. 당연하다. 그런데 마을을 돌면서 매번 들은 이야기인데 ‘인사가 뭐하는 것이냐’ 한다. 선거공신 챙기고, 자기 사람 챙긴다고 한다. 시골 어르신들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우근민 도정 인사는 문제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7대경관도 마찬가지다. 반대 목소리가 있었지만 확 짓눌러서 무리하게 진행하고 감사원 감사 받게 됐다.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기정사실화 된 것처럼 대대적으로 인증식 행사하겠다고 그런다. 도민들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할 일을 싸우듯 처리하니 답답하고 안타깝다. 에너지공사도 마찬가지다. 제주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파먹으려고만, 남 종노릇이나 하려고 한다. 제주도민의 공공적 자산인 ‘바람’은 도지사 게 아니다. 잘 모르면 의논이라도 하라고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는다. 해군기지는 ‘윈-윈’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해놓고 여기까지 왔다. 공사중지명령을 위한 공청회 행정절차 밟아놓고선 왜 안하느냐, 사람을 왜 이렇게 괴롭힐까. 요즘은 또 그린시티가 떠오르고 있다.  의심받을 일을 왜 할까. 참 답답한 것 투성이다.”

- 앞으로 남은 2년, 후반기 도정에 대한 조언을 해 준다면.

“앞으로 2년 남았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다. 자기 사람 챙기는 거 그만하고 도민들 챙기는 일에 신경 쓰면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많은 도민들이 기대를 했고, 그 분의 행정경험, 경력이 평가돼 도지사가 됐는데, 마지막 봉사할 기회라고 공언했는데 앞으로 남은 2년 마무리 좀 잘 했으면 좋겠다. 힘들고 어려운 도민들 끌어안고 어루만지는데 2년은 충분하다.”

- 성급하지만 고 대표가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인가. 지방선거의 꿈은 여전한가?

“지난 지방선거 때 내가 가졌던 꿈과 기대가 아직 안 이뤄져서…제주도민의 이익, 행복을 위한 길을 도민과 함께 가고 싶은 열망이 있다.”

-이번 11개월 제주를 걸으면서 그 길이 좀 보이기 시작했나.

“요새 내가 ‘얼굴 좋아 보인다, 건강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가 생각하기엔 내가 행복해서 그런 것 같은데, 마을길을 다니며 제주의 미래, 그분들이 내게 전해주는 역동성 의지 이런 것들이 나를 북돋았고 그런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 아닌가.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가 되면 얼굴이 상할 텐데 오히려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니 그분들로부터 에너지도 받고 정신적인 격려도 받는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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