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섣부른 개발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재연 말기를...

최근, 제주시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의 설계공모가 마무리되어 당선작이 언론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작년 10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은 두 개의 목표(방향)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도심활성화를 위한 도시공간의 재생을 향하고 있고, 또 하나는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한 새로운 문화자원의 개발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간 이 사업의 추이를 지켜본 필자는 세 가지의 관점에서 우려를 표명하고자 한다. 첫째는 제주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제주성의 ‘산지천’과 ‘칠성로’라는 ‘역사문화환경’에 관한 관점이고, 둘째는 도심재생을 위한 ‘구도심 활성화방안으로서의 적합성’에 관한 생각이며, 셋째는 도시개발 혹은 도시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한 측면이다.

정부에서 2003년 1월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후, 각 지자체에서 도시의 정체성과 문화를 표현, 생산하고 원활한 의사소통 및 창조적인 도시문화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도시정책을 모색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도시에 대한 생각을 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 지난 6월 4일 발표된 탐라문화광장  조감도
1. 역사문화 환경에 대해 고려했는가?

제주사람은 다 알고 있듯, 제주성(엄밀히는, 濟州邑城)은 선사시대의 탐라왕국 및 고려시대의 수부(首府)이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바대로 조선왕조시대부터 현재까지 제주의 읍치로서 600년 이상 지속된 제주의 중심도시이다. 이렇듯, 600년(혹은 2000년)의 역사성은 제주(탐라)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자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제주읍성의 전통적인 도로체계에 관한 연구논문을 통하여, 조선왕조시대의 제주성의 원형을 탐구한 바가 있다. 이 연구에서 특히, 칠성로와 산짓물에 대한 도시공간적 위상을 새롭게 하였다. 제주읍성의 중심도로로서, 성안 사람들의 생활용수로서, 제주읍성의 공간체계를 형성하는데 핵심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새삼 밝힌 바 있다. 제주읍성의 도로체계가 타 읍성과는 달리 독특한 2중구조이며, 그 원인이 ‘산짓물’과 ‘가락쿳물’에서 비롯되며, ‘칠성로’는 산짓물과 목관아를 연결하며 형성된 중심도로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산짓물을 중심으로 한 일대지역에 많은 역사유산들이 분포하게 된 것이다.

제주성의 중심적 역사문화유산인 산지천과 칠성로를 주요 대상지역으로 하는 개발사업이 탐라문화광장인 것이다. 탐라문화광장이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심재생사업이라면, 아직까지는 부족하기만 한 역사문화유산의 원형탐구를 포함하여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한 연구와 함께, 이를 어떻게 보존하며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모든 도시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이 도시정책의 핵심요소임을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지적은 더더욱 신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제주읍성의 도로체계 원형(필자의 논문에서 발췌)  . 청색 타원부분이 탐라문화광장 대상지역이다.
2. 도심활성화방안으로서 적합한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시의 도심기능(행정, 업무, 상업 등)을 담당하고 있던 이 지역이 지금처럼 활성화의 대상지역으로 전락할 정도로 쇠락한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게도 70~80년대의 신제주지역을 포함하여 90년대 후반부터의 연동신시가지, 노형지구, 삼화지구, 외도지구, 이도지구, 아라지구 등 기존시가지 외곽으로 확대된 신개발지역의 등장 때문이다.

이 지역의 도심기능들이 신개발지역으로 분산되고 주거시설마저 노후화하면서 오늘날의 이 지역은 도심으로서의 활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새로운 인구의 유입 없이 도시지역이 확대되는 일이 ‘도심 공동화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도시정책을 입안하면서 항상 경계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무분별한 외연확대(Sprawl)인 것이다. 하지만, 도시내부의 재정비를 통한 토지이용효율을 높이는 맥락적인 개발보다는, 농경지나 산지 등의 외곽지역을 새롭게 개발하는 경제적인 방법을 취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존 도심의 쇠퇴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도시사상가인 제인 제이콥스(J. Jacobs)도 ‘도심쇠퇴의 원인은 경제성만을 추구하는 상업적 개발에 있다’고 일찍이 지적한 바 있다.

위에서 거론한 도심공동화현상의 원인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상주인구의 증가와 함께 업무시설이나 상권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대안이어야 도심공동화현상을 지속적으로 억제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탐라문화광장 조성이 도심활성화방안으로서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3. 도시개발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려했는가?

1987년 제기된, 환경과 개발에 관한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의 개념은 근대주의 도시이론을 대체할 새로운 도시패러다임으로서, 각국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다양한 도시개발수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이 새로운 도시패러다임을 바탕으로 각국의 도시상황에 따라, 유럽연합(EU)과 일본의 ‘컴팩트시티(Compact City)’, 미국의 뉴어바니즘(New Urbanism)’과 스마트성장(Smart Growth), 영국의 ‘어번빌리지(Urban Village)’, 우리나라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등으로 정리한 도시개발수법들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내용은, 도시의 성장관리를 통하여 시가지확산을 억제함과 동시에, 도시내부의 고밀도개발을 통하여 현행 문제의 해결과 경제적 효율성 및 자연환경의 보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도시내부의 복합적인 토지이용, 대중교통의 이용촉진, 외곽 및 녹지의 개발 억제, 역사적 문화유산의 보전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에 기초한 많은 연구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제주에서도 이러한 도시패러다임을 반영하는 제주만의 도시개발수법을 바탕으로 제주시의 도시정책이 수립되고, 이에 따라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합당한 절차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시대에서 행해진 신개발 수준의 개발사업을 짧은 시간 안에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4.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에 대한 제언

이전에 우리는 제주시의 ‘앞바당’인 탑동지역을 매립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면서, 탑동매립이 제주시의 도시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심도 깊고 폭넓은 토론을 한 적도 없다. 탐라문화광장 조성이 탑동매립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지 신중하게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특히 역사문화유산은 지금 거주하는 지역주민만의 자산도 아니며 현재를 사는 우리들만의 자산도 아닌, 우리의 자손들도 똑같이 누리고 똑같이 개발방법을 고민해야 할 자산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의 우리가 섣부른 개발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제기한 문제점이나 의문점을 바탕으로 진정어린 제언을 하고 싶다.

▲ 양상호 제주국제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
그동안의 많은 노고와 투자를 짐작은 하지만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의 추진을 일시 중지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들과 도시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그리고 관련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진지한 검토과정을 통하여, 역사문화환경의 보존과 활용방안를 포함한 도심활성화의 큰 틀 안에서 이 사업의 위상이나 규모, 시기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러한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치는 일이 제주의 중심도시인 제주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바람직한 미래도시로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라 생각한다. / 양상호 제주국제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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