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2) 바람, 돌담, 그리고 할망 / 정신지

▲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가끔 가는 교회는 하느님이 아니고 사람들 만나러 가는 거라고 하신다. / 사진 = 정신지 ⓒ제주의소리

마당의 금잔디가 하도 예뻐서,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대문을 들어섰다. 누가 살지 않을지도 모르고, 누군가 살지도 모를 것 같은 집.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허리가 매우 굽으신 작은 할망(할머니란 뜻의 제주어) 한 분이 마당 한편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신다. “잔디가 너무 예뻐서 그런데, 사진 좀 찍어도 돼요?” 하고 물으니 대답이 없으시다. 잘 안 들리나 보다 싶어서 큰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러자 할망은 예상 밖의 미소를 보이며 들어오라 손짓하신다. 얼떨결에 집으로 따라 들어가니, 다짜고짜 옷부터 갈아입으신다. 화려하게 레이스가 달린 청색 윗도리와 고급스러운 몸빼(일바지)로. 그리고는 아랫목 이불을 걷어 나를 그 위에 앉으라 하신다.


할망의 나이는 올해 83, 딸이 둘인데, 모두 서울에 사신단다. 서귀포에서 애월로 시집을 오셨는데, 아들을 못 낳자 집에서 쫓겨났다. 홀어머니로 딸 둘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쌀장사가 할망의 생업이었다. 제주에는 쌀이 많이 나지 않아서, 육지에서 쌀을 들여다가 장에 내다 팔면서 두 딸을 키웠다.

젊었을 때는 서울의 방직공장에서도 일하셨다. 60여년 전의 서울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서울은커녕, 일이 너무 많고 고돼서 그때는 공장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지내다 돌아 오셨다고 한다. 당시 일본강점기 때에는, 마을 단위로 젊은 아낙들을 모집해서 배를 타고 며칠씩 걸리는 육지에 일하러 보냈었다고. 하지만 지금 서울에 사는 두 딸은, 대학원까지 나온 고학력자에, 손주 손녀들도 제각각 결혼해서 잘살고 있노라며 흥겹게 이야기하신다.


딸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제주도에 내려온다. 외롭지 않냐고 묻자 할망은, “전화가 있어서 괜찮아. 목소리만 들어도 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눈에 다 보여.”라신다. 그러고 있자니, 벽 한 쪽에 연필로 크게 적힌 두 개의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저것이 바로, 시공을 초월해서 할망이 딸을 보기 위해 서울로 순간이동을 하는 일종의 비밀번호였던가!…

화제를 바꾸려고 텔레비젼을 같이 보고 있자니, 할망은 아까부터 농구를 보신다. “할머니 농구 좋아하시나 봐요.” 하니, 농구는 사람이 많이 나와서 보는 거라 하시고, 텔레비전 옆에 곱게 모셔져 있는 천주교 마리아상을 보며, "할머니는 하느님 믿으시나 봐요" 하니, 가끔 가는 교회는 하느님이 아니고 사람들 만나러 가는 거라고 하신다.

철없는 호기심으로 뱉어내는 나의 질문에 대한 할망의 대답에는, 숨기지 못하는 외로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할망의 외로움은 어딘가 모르게 자연스럽다.
꽃 같은 나이에 타지에 시집 와서는 곧 쫓겨나고, 그 후 딱 한 번 짝사랑을 하게 된 남자는 도박꾼이어서 연애할 염두도 못 내고 혼자서 끝내버렸다. 평생 혼자 살자 마음을 먹고도, 아들이 없다고 냉대 받으며 살아온 80평생의 가슴엔, 구멍이 나도 아주 단단하게 났을지도 모르는데,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요?” 라는 나의 우스꽝스러운 질문에 대뜸 할망은, “여자”라 답하신다. 왜 하필…


“여자에게는, 슬픈 일도 참아야 할 일도 많지만, 여자로 나야 아이도 낳고, 사는 보람이 있지”. 하시고는 나에게 물으셨다. “아가씨는 결혼했나?”, “아니요, 할 뻔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게 아직…” 그러자 쓴웃음 지으시며, “아이고게!” (어이구!) 하신다.

 

▲ 할머니의 손바닥에 자글자글한 주름은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할머니의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담겼다.  사진 = 정신지 ⓒ제주의소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엉터리이긴 하지만 지압을 좀 해 드렸다. 손때가 타서 반들반들 달아버린 나무기둥처럼, 할망의 몸은 차갑지만 매끄럽고, 가늘지만 단단하다. “좀 시원하세요?” 하며 등을 주무르던 손을 멈추고 할망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순간 할망이 소매로 눈물을 훔친다. 하지만 애써 안 우신 척하시는 할망. 나도 못 본채 했다.

 
“할머니 저 이제 갈게요. 사진 찍으러 왔다가 너무 오래 있었네” 하며 나오려는데, 할망은 그제야 “커피 한잔 마시고 가지” 하신다. 그래서 마신 잔칫집 커피, 그 깔끔한 부엌살림, 고운 금잔디 마당…


집을 나서며, “할머니 건강하세요.” 라는 말과 함께, “또 올게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끝끝내 건강하시라는 말만 전하고 집을 나서며 두세 번 뒤를 돌아 봤다. 현관문 사이로 내민 할망의 작은 얼굴과 자꾸만 내흔드시는 손짓이, 내 등을 뜨겁게 간질였다.


여든이 넘어 홀로 지내는 노인 중에 그 어느 한 분 외롭지 않은 분은 안 계시겠지만, 할망의 외로움은 강인함 속에 꼭꼭 묻혀 서럽게 드러나지 않는다. 도리어, 정작 할망과 대화를 나누며 외로웠던 것은 나다. 내 안에 있는 슬픔과 외로움에 모기장 같은 구멍이 뚫려있다면, 할망의 그것은 가히 제주도의 현무암 수준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도 단단하고 쓸모 있는.

 

▲ 정신지 / 2012년 일본 국립 홋카이도 대학 문학박사 수료.

할망은 외롭겠지만, 그 외로움을 굳이 애써 스스로 풀려 하지 않으셨기에, 필요에 따라 교회에 가시고 따스한 아랫목에 앉아 농구경기를 감상하신다. 그러다 가끔(어쩌면 생애 최초로), 나같이 별난 처자가 불쑥 나타나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해도, 그 어떤 물음에도 항시 대답이 준비된 성인군자처럼 곧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리고는, 커피 한잔 마시고 떠나는 내가, 그저 할망 인생의 수많은 손님 중에 한 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듯, 활짝 웃으며 나를 보내주셨다.

여자는 강하고, 어머니도 강하다. 하지만, 제주의 할망은 강함을 넘어서 ‘바람’과도 같고, 바람에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돌담’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 돌담, 그리고 할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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