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칼럼> 지금 모델론 제주미래를 밝힐 수 없다

 예정대로라면, 행정체제개편 도민설명회가 20일 추자도를 끝으로 마무리합니다. 도민들은 어떤 의견들을 전달했을까. 개인적으로 우리 동네 설명회에 참석했던 소감을 기고합니다.

 # 다녀온 소감은 한마디로 공포영화를 본 느낌.

6월 11일, 우리동네에서 행정체제개편 주민설명회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간을 내서 다녀온 소감은 한마디로 ‘공포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왜 공포영화를 떠올렸을까. 그것은...... 현재 제시된 행정체제개편안이 2005년의 담론과 비슷한 구조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온갖 악전고투 끝에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 다시 공포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공포영화의 기본 구조처럼.    

 # 문제1. 도지사-도의원의 권한을 당사자인 본인들에게 결정하게 하는 구조?

현장에서 배포한 팸플릿의 절차를 참고하면, 행정체제개편 관련 도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8월말 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에서 최종대안을 (도지사에게) 제시하고, 9월에 최종안에 대해 도의회 동의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한다.

1,2,3안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모두 도지사의 권한이 축소되는 것이고, 3안의 경우는 도의회(도의원)의 권한이 축소됨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도지사-도의원 본인의 권한 범위를 본인들이 결정하도록 하는 구조이다. 형식적·논리적으로 잘못 설정된 의사결정 구조에 따라 진행하기보다는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 문제2.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선택할만한 선택지가 없다는 점.
 
현재 제시된 행정체제개편 모형은 1안 시장직선, 2안 읍면동 자치강화, 3안 시장직선 및 기초의회 구성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세 가지 안은 도민들의 관심과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행정의 비용과 효율성 문제를 따져보자고 도민들의 불만을 제기했던 것이 아니다. 행정체제개편 논의는 ‘권력 견제와 권력 배분을 통한 자치 실현’을 목적으로 출발했음을 절대 잊으면 안된다.
이를 근거로 했을 경우 1안은, 권력 배분은 가능하지만, 권력 견제 방안이 빠져 있다.
                                        2안은, 권력 배분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권력 견제가 안된다.
                                        3안은, 권력 배분과 권력 견제 모두 가능하다.

권력을 견제할 수 없는 자치는 무의미하고,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자치 또한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정답은 나와 있다. 3안이다.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특별자치도 지위문제가 걸려 있고,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도민들에게는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도민들이 선택할만한 선택지도 내놓지 못한 셈이다.
 
 # 문제 3. 2005년에 이어서 또다시 덫에 빠지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논의의 명칭은 ‘행정체제개편∼’이다. 이는 ‘행정’을 중심축으로 놓고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의회’ 또는 ‘의회 존폐’ 사항은 전체 논의 속에서 행정체제 개편(2005년에는 행정계층구조)의 종속변수 또는 하위 개념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진행되는 논의의 중대한 인식의 덫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자치도 이전과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원래는 시·군을 없애면서 단층제로 가자는 구상이었는데, 결국 행정시는 존속하고 기초의회는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행정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은 방만한 공무원의 문제도 아니고, 여러 계층에 걸쳐 있는 절차의 문제도 아니고, 결국 의회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이는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행정체제개편’을 하면서 어정쩡하게 ‘의회’를 끼워서 논해선 안된다. ‘행정-의회체제개편’이라고 명칭을 바꿔서 똑같은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 행정이 아닌 “의회개선” 및 “의회강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현재 도지사가 제왕적이라면, 도의원은 지역구의 소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또한 도지사를 견제해야할 결정적인 순간에 도의회는 무능함으로 도민들을 실망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 견제와 권력 배분을 통한 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의회를 바로 세우는 방법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정말 훌륭한 인물들이 도의원이 될 수 있도록, 그 훌륭한 도의원들이 특정 정당의 거수기가 되지 않도록, 권력을 감시하고, 도민의 총의를 수렴할 수 있도록, 도민 갈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새롭고 다양한 방안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려면, 새로운 실험이 필요.
 
현재 나온 세 가지 모형은 관련분야 대한민국 최고의 5명 행정학자들이 내놓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추가될 새로운 모델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를 더하고 보완할 수 있는 ‘학제간연구’가 지금 필요한 것은 아닐까.

현재의 제도·체제를 넘어서 양원제 활용, 시-도의원 겸직, 옴부즈만제도 도입 등의 형식들과 새로운 의원선출방식, 비례대표 확대 등 다양한 형태와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영국의 경우처럼 한 국가안에서 서로 다른 의회선거제도를 사용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고, 보다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내용과 관련해서는 대한민국의 훌륭한 정치학자, 사회학자, 법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된다.   

 # 결론적으로...

행정-의회체제 개편을 놓고 다시 원점에서 모든 것을 논의했으면 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했으면 한다. 이도저도 아닌 혼란의 덫 속으로 다시 빠져들기는 싫다.

선택지를 만드는 단계부터, 처음부터 도민들이 함께 하고, 선택 모형은 종합적인 결과를 담고 있어야 한다. 복합적이고 어려운 작업을 하되, 모든 것을 담아내는 단순한 모형을 만들어서 가장 쉽게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일, 이게 학자와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행정체제의 단점들을 상쇄할만큼 달라져야 하고, 특별자치도의 지위도 가져야 한다.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모형을 생각해내야 한다.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지금의 모형안을 가지고 제주의 미래를 선택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신정(서귀포시민 동홍동 거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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