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브라’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하사커족 청년 ⓒ양기혁
우루무치 시장의 풍경 ⓒ양기혁
우루무치 시장의 풍경 ⓒ양기혁
천산의 하사커족 여인들 ⓒ양기혁
ⓒ양기혁
티벳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중국 청년, 까오펑 ⓒ양기혁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14 티벳으로 여행떠난 청년과의 조우 그리고 천산

인파 속을 걸어가 번화가 고층건물들 뒤편의 뽀얀 연기가 자욱히 피어오르고 시끌벅적한 시장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 안은 양꼬치 굽는 매캐한 연기 속에 노점상들과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잘게 잘라서 파는 수박 한 조각을 사서 먹고, 화덕에 구운 빵도 하나 샀는데, 빵 이름을 물어보니 ‘넝’이라고 한다.

▲ 우루무치 시장의 풍경 ⓒ양기혁

 

▲ 우루무치 시장의 풍경 ⓒ양기혁

그런데 양꼬치나 빵을 굽는 사람들, 수레 가득 수박을 싣고 온 노점상들 대부분이 생김새가 한족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위구르 인들이었다. 그들은 중국어가 아닌 위구르 말을 사용하는데, 내 질문에 대답하는 그들의 중국어 발음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점의 간판이나 도로표지판 같은 것들도 중국어와 위구르 어가 같이 표시되고 있었다. 대로변의 화려한 고층빌딩 뒤편 허름한 골목에서 노점을 하고 빵을 굽는 이들에게서 이곳 원주민인 위구르인들의 현재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시장골목을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약 파는 곳이 보여 감기약을 좀 사고, 휴지가 얼마 남지 않아 비닐포장된 휴지도 하나 샀다. 방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아직 초저녁이었지만 감기약을 몇알 삼키고 침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몸살을 하는 것처럼 몸이 몹시 무겁고 기력이 없다. 창문을 넘어오는 아이들의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반복하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소리를 들으며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몸을 일으키는데 한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머리를 짧게 깎고, 검게 그을린 얼굴이 무척 강인한 인상을주는 청년이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눴다.

“니하오.”
“니하오. 워스한궈런. 워이거런정짜이리요우.(안녕하십니까, 저는 한국인입니다. 혼자 여행 중입니다.)”

나는 수첩을 그에게 내밀며 이름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까오펑(高峰)’ 그가 수첩에 이름을 쓰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밍티엔 니취날( 내일은 어디 갑니까)?”
“밍티엔 워취 티엔샨티엔츠, 호우티엔 줘훼이지 취쓰촨청뚜.(내일은 천산천지에 가고 모레
비행기 타고 쓰촨성 청뚜로 갑니다.)”
“밍티엔 워 야오 취티벳, 시짱 라싸(내일 저는 티벳(라싸)에 갈 예정입니다.)”

티벳에 간다고? 여기서 티벳에 어떻게 가지? 궁금하여 그에게 물었다.

“총우루무치 다오 라싸 전머 저우(우루무치에서 라싸까지 어떻게 갑니까)?”
그가 빙그레 미소를 띠며 옆에 세워둔 자전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쯔싱처(자전거).”
“둬창스지엔(얼마나 걸립니까)?”
“치스티엔(七十天, 70일).”

‘70일간의 티벳으로의 여행’. 그는 살아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을 지닌 타클라마칸 사막을 달리고, 카라코람 산맥과 쿤룬산맥 사이의 고갯길을 넘어 티벳고원을 지나는 험난한 여행을 내일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수이지아오 짜이날(어디서 잠을 잡니까)?”
“다부펀 뤼관(대부분 여관).”

▲ 티벳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중국 청년, 까오펑 ⓒ양기혁

그리고 가끔은 텐트를 치고 잘 때도 있다고 한다. 그 사막과 고원에도 마을이 있고 나그네가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는 것이다. 나는 둔황에서 산 중국지도를 꺼내 그가 어떤 경로로 티벳 라싸까지 가는지 지도에 표시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표시한 경로는 다음과 같다.

‘우루무치에서 남동쪽으로 투루판 인근의 톡순에 간 다음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쿠얼라를 지나 룬타이까지 간다. 그리고 남쪽으로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하여 민펑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서쪽으로 타지키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에 가까운 예청까지 간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인도 국경 쪽으로 가다 다시 남동쪽으로 카라코람 고개를 넘어 인도와 네팔 국경 인근의 야루짱부 강(雅魯藏布江)을 따라 이어진 길을 달려 라싸에 도착하게 된다.’

지도를 들고 가까이 다가선 그에게선 술냄새가 풍겨왔다. 이제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각자 침대로 들어갔고 ‘까오펑’은 방의 불을 껐다.나는 9시까지 여행사 앞으로 가야 했고, 까오펑은 10시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까오펑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서 자전거 옆에 포즈를 취한 그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자전거 옆에 선 그에게선 야심만만한 젊은 중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그가 나에게 말했다.

“쇼우지 화이러(휴대폰이 고장났습니다).”

그는 나에게 최근에 나오는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수리하러 가야겠다고 한다. 그와의 짧은 만남을 이제 정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니더 쯔싱처 뤼싱, 이루순펑(자전거 여행이 순조롭게 잘 되길 바랍니다).”

그는 나에게 웃어 보이고는 나갔고, 나도 곧 겉옷만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밤새 감기는 좋아지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콧물이 자주 나오고 기침도 더 심해졌다. 공원 옆 여행사는 이제야 막 문을 열고는 들어서는 나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되도 떠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다른 여행객은 아무도 없다. 시간 여유가 있는 것 같아 옆의 공원구경을 좀 하겠다고 말하고는 여행사를 나왔다.

공원은 마치 거대한 야외 체육관인 것처럼 사람들로 가득했고 저마다 무리를 지어서 혹은 혼자서 운동에 열심이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단체로 에어로빅 같은 매우 빠른 율동을 하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쿵푸와 같은 아주 느린 동작을 하는 노인들이 있고, 그냥 공원에 난 길을 뛰거나 걷는 사람들도 좁은 길에 가득해서 걸어 다니기도 불편할 정도였다. 뒤로 걷는 사람도 있고, 나무가 우거진 외진 곳에선 큰소리로 계속하여 웃음을 터뜨리는 여인도 있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여행사 직원이 달려왔다. 버스가 도착해서 빨리 가야 한다며 앞장서 뛰기 시작했다. 여행사 앞에 세워진 버스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는데, 시내의 여러 호텔이나 여행사를 돌면서 투어 여행객들을 모집해서 같이 가는 것으로 보였다.

버스는 곧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천산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했다.

천산산맥(天山山脈)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동서로 뻗어 있는데 북쪽을 천산북로, 남쪽을 천산남로라 하여 예부터 실크로드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천지는 천산산맥에서 우루무치 동쪽에 있는 해발 5,445m인 보거다산의 중턱 1980m에 있는 산정호수라고 한다. 한라산 정상과 비슷한 높이이다.

가이드는 버스가 달리는 내내 마이크를 잡고 투어의 내용을 설명하고, 천산 입구 주차장에서 먹을 점심 식사를 밥으로 할 것인지 면으로 할 것인지 개인별로 신청을 받아 수첩에 적고, 가끔 우스갯소리도 빼먹지 않고 몇 마디 하면서 분위기를 북돋워갔다.

그녀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미판(밥)과 미엔(面,면)은 알 수 있어서 점심 식사는 면으로 하기로 했다.

버스는 투어의 첫 코스로 이곳 산악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인 하사커(카자흐)족의 거주지에 멈췄다. 관광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한 천막으로 들어가서, 약간의 다과를 차린 탁자에 둘러앉았고, 민속의상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 환영인사를 하고 기타처럼 생긴 ‘돔브라’라는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 ‘돔브라’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하사커족 청년 ⓒ양기혁

 

▲ 천산의 하사커족 여인들 ⓒ양기혁

첫 곡이 끝나고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되자 관광객들 중에 한 중년 여인이 앞으로 나가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그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인 듯 모두가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며 서로가 앞으로 나가서 춤을 추라고 권하였다.

청년이 노래를 끝내고 나가자 다시 민속의상을 갖춰 입은 두 여인이 들어와 그들의 민속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서 함께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오랜 옛날 유목생활을 하며 용맹을 떨치던 천산에 사는 소수민족인 하사커족은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그들의 전통 노래와 춤을 팔며 생활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해서 서 있는데 뒤에 있던 하사커족 여인이 내 옆으로 와서 포즈를 취해 같이 사진을 찍었다. 다음으로 버스가 멈춰 선 곳은 한약재를 파는 곳이었는데, 관광객들을 한 군데 모아서 약재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서 진열대가 있는 안으로 들어갔다.

중국어로 하는 그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체 모를 한약재들이 들어 있는 진열장 안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여직원들의 흰 가운은 구겨지고 때에 절어 있어서 지저분해 보였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천지 입구에서 멈추고, 천지 전용버스인 듯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가파른 경사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지로 올라가기 전 입구의 주차장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밥은 채소를 섞어 볶아 나왔고 면은 삶은 면에 채소 볶은 것을 얹어 나왔다. 면은 좀 텁텁한 맛이었지만 먹을 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천지로 올라가는데 연결 교통편이 준비가 안 됐는지 천지까지 멀지 않으니 걸어서 간다고 한다. 상당한 높이로 올라와 있어서 공기가 싸늘했다. 마스크를 꺼내 썼는데도 콧물이 계속 흘러 나왔다. 휴지는 이미 다 써버리고 어제 새로 산 휴지는 열어보니 여성 생리대였다.

중국어를 몰라도 앞뒤로 살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감기 기운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 왔다.

▲ ⓒ양기혁

천산은 온통 소나무로 가득 차 있다. 소나무 외엔 다른 식물이라곤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마침내 천지에 도착했다. 멀리 천산산맥의 하얀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앞쪽에 가까이 있는 봉우리들은 천산의 소나무 숲이 햇빛에 그늘져 짙은 검정색으로 보였다. 천지는 얇게 얼음이 얼어 있는 듯 하얀 빛을 내면서 드넓은 호수를 펼쳐 보였다. <제주의소리>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노자는 어쩌면, 필자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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