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의 숨, 쉼> 아들, 딸에게 건네는 당부

아이들이 어린 시절, 열심히 책을 읽어주었던 이유는 물론 유아기 정서함양과 창의성 계발을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런 대의명분의 이면에는 훗날 학습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속셈이 있었음을 고백하겠다.

어쨌든 나는 틈만 나면 책을 읽어주려 했고 또 스스로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그러면 아이들도 이 어미를 따라 책을 좋아하게 될 것임을 확신했다. 그런데 삶은 짜여진 각본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확신은 절망으로 질주했다. 책 읽는 어미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 이상한 종족으로 분류되었고 아이들은 책의 향기 보다는 디지털 노마드 대열에 합류하길 희망했다.

물론 이 어미, 최선을 다해 책의 향기를 느끼게 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와 좌절로 마무리되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내 수준으로 학생들이라면 꼭 알아야 할 상식을 당연히 모르는 아이들로 성장했다.

가령, 이상한 종족인 어미는 학력고사(수능과 비슷한 말) 끝난 후 처음 산 책이 당나라 최고 시인 두보 시집이었다. 이 추억담을 들으며 아이들이 “두보가 누구에요” 라고 하면 다행이고 “두보가 뭐에요” 라고 말해도 놀라지 않는 담대한 심장을 가져야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 두보(712 ~ 770). <사진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갈무리>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던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 널리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다. 장편의 고체시(古體詩)는 주로 사회성을 발휘하였으므로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린다.
[출처] 두보 [杜甫 ] | 네이버 백과사전  베이징 쿵먀오 전청의 두보 초상화


 

 

그렇게 스스로 정신무장을 했다고 자부했건만, 어느 날 기어코 또 한마디 하고 말았다.

때는 책 읽기 딱 좋은 한가한 일요일 오후, 우리 아들이 열심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현란한 영상과 빠른 독수리 타법이 시야에 들어오니 한 마디 안할 수 없다. 왜? 나는 아들의 신체와 정신의 성장을 도와야하는 엄마이기에.

“ 언제까지 게임만 할래?”
“ 우... 우리반 아이들 거의 다 해요. 이것 보세요 우리반 길드”
(아, 그러고 보니 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하부 조직 이름이 길드였구나)
“ 너 길드가 뭔지 알아”
“몰라요”( 내 언젠가 요즘 청소년들의 ‘몰라요’를 꼭 심층분석 하고야 말겠다)
“ 길드가 중세 유럽에서 생겨난 상인들의 조직인 것 몰라”
“ 제가 어떻게 그걸 알아요?”
“ 그런데 왜 게임에서 길드는 조직 하냐?”
“ 그냥 하면 되요. 뜻 몰라도 되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내가 홧병이 나거나, 아들이 내 폭언에 시달리므로 일단 후퇴.

이런 소소한 사건들이 수시로 오가면서 세월은 잘 흘러갔고,
그 사이 나는 여전히 책을 보고 아들과 딸은 각종 스마트 기기로 보는 웹툰에 열광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딸이 내게 묻는다.
“ 엄마, 엄마가 얘기하던 그 강림인가.. 웹툰에 나완”

 

▲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 되고 있는 웹툰 '신과 함께'. <사진=웹툰 내용 갈무리>

무슨 소리인가 싶어 봤더니, 주호민이라는 젊은 친구가 신화(대부분 제주 신화) 캐릭터를 소재로 ‘ 신과 함께’라는 웹툰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었다.

내가 수시로 얘기해주던 문전신이나 강림차사 이야기를 용케 딸이 기억해낸 것이다.
“ 너 여기 나온 얘기.. 엄마에게 있는 제주신화 책에 다 있는데.. 볼래?”
“ 아니”

신과 함께는 대한민국의 만화가 주호민이 네이버 웹툰에 연재하는 만화이다. 신과 함께는 한국의 민속 신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만화이다.

 

이러니 난 우리 아들, 딸에게 정서도 함양하며 학습에도 도움이 되는 책읽기를 감히 바라지는 않겠다.

하지만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 살짝 자아정체성 찾기로 갈등하는 아들을 보니, 정말 난 사심 없이 아들 ,딸에게 책읽기를 권하고 싶다. 

아이들이 책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게임, 영화, 웹툰들이 사실은 모두 ‘ 이야기 '에서 나왔고 이야기는 일정량의 교양 독서를 거처야 진정한 즐거움의 깊이에 이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기본 세계사를 알면 길드를 알 수 있고 제주 신화 책을 읽으면 이야기 원형이 어떻게 웹툰으로 재구성되는 지를 볼 수 있다. 그러면 단순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와 교감하게 되고 아이들의 정신세계는 확 넓어질 것이다. 그러면 자아정체성을 찾기도 훨씬 쉬워지는데.

“ 아들, 딸.
 책 읽기는 의외로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에요. 너희들이 책을 열심히 읽으면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생각해보세요. 손해 보는 사람은  무조건 복종자를 원하는 빅브러더( 조지 오웰의 1984 보세요) 이익 보는 사람은 당연히 바로 자기 자신. 책을 읽으면 삶의 방향 잡을 수 있어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제발, 책 읽으세요 “

▲ 조지 오웰의 '1984' 책 표지.

다시 내 이야기로 마무리.

난 지금도 도서관 서가에 가면 가슴이 쿵쾅 뛴다. 예쁜 책들이 줄지어 서서 나를 향해 손짓하면 도대체 어디로 먼저 손을 뻗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 한다.

그러면 누군가 물을 것 같다. 그렇게 책을 읽는다고 떡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물론 책은 일용할 양식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은 양식을 얻기 위한 방법, 이왕이면 맛있게 먹는 법,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안내해준다.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몇 년전 보았던 자끄 드와이용 감독의 프랑스 영화 ‘뽀네뜨’의 명대사 가운데 하나가 ‘행복은 학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책을 읽을 것이고, 이 아름다운 길에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그리고 자신을 찾는 여행 중인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자, 방학이 코앞이다. 남아도는 시간 뭘 할까 고민하지 말고 책 좀 읽어라. 시원한 도서관에서. /홍경희

           
▲ 홍경희(바람섬). ⓒ제주의소리
글쓴이 바람섬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바라건대 청춘 이후의 내 삶은 독서와 요가로 채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아들 딸의 강력한 사춘기 에너지를 갱년기 에너지로 힘겹게 맞서며 하루하루살아가고 있다. 좋은 부모 만나 서울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고향에 돌아와 10년 언론사에서 일했다. 그 후 이제까지 제주교재사를 운영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행복한 교육으로 가는 작은 다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재 교구를 판매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숨, 쉼>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전직 기자 출신의 ‘바람섬(홍경희)’과 10년 전 제주로 결혼이민(?) 온 아동문학 작가 ‘산길(김희정)’이 주거니 받거니 제주와 제주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앞으로 이들은 <숨, 쉼>을 통해 빠르게만 달려가는 세상, 숨만큼이나 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해줄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